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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3월 31일 14시 10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3월 31일 14시 10분 KST

유재석이라는 시절을 떠나보내며

유재석은 선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시대를 거스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불편했다. 아마 무한도전이 평창올림픽을 홍보하기 위해 스키점프대에 올랐을 때였던 것 같다. 그는 한참을 낑낑대며 최선을 다해 올랐다. 오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밑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끌어주는 그는 멋진 리더처럼 보였다.

MBC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다독거렸다. 이적의 ‘같이 걸을까’가 배경음악으로 깔렸다. 충분히 괜찮은 그림이었다. 그런데 그게 별로 감동적이지 않았다.

그건 유재석의 잘못이 아니다. 시절이 바뀌었고 내가 그 시절에 민감해서였다. 유재석이 멋있게 사람들을 다독거리던 그때, 갑자기 떠올랐다. 취업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죽어라 야근하고 휴일도 없이 일하느라 온몸이 상해가던 그때 ”니가 잘해야 회사가 산다. 잘 해보자”고 어깨를 토닥이던 상사가. 나는 유재석이 동료들에게 손을 내밀었던 그때도, 언제나 그랬듯 ‘시청자와 웃음’을 떠올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해내야 한다. 그래야 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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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을 넘기고 나서부터는 유재석에게 ‘잔소리하는 상사’ 캐릭터가 생겼다. 물론 그들은 훌륭했고 유재석도 캐릭터를 잘 소화했다. 언젠가부터 의사결정을 할 때면 멤버들은 ‘어차피 재석이가 다 결정한다 우리는 거들기만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간혹 유재석이 선심 쓰듯, 혹은 멤버들이 떼를 써서 ‘메인 MC’가 바뀌기라도 하면 멤버들은 쩔쩔맸고 유재석은 이를 지켜보다가 결국 나섰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무한도전에서 진행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던 멤버는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어색함 하나 없이 프로그램을 잘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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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이 안쓰러웠다. 길은 ‘무한상사‘안에서 인턴의 신분이었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쭈뼛거리며 상사들의 눈치를 봤다. 그는 ‘무한상사‘라는 상황 밖에서도 좀처럼 기를 펴지 못했다. 나는 그가 심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연민도 느껴졌다. 기 센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매번 무언가 과중한 목표를 해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 그가 꼈다. 멤버로 영입된 길은 ‘게스트‘였던 길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어려운 과업이 주어졌고, 그걸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보였다. 자연스러운 길은 없었다. 길이 시시껄렁한 농담이라도 하면 온갖 핀잔을 들어야 했고 자막에는 어김없이 ‘무리수‘라고 박혔다. 썰렁한 농담도 유재석이 하면 잘 살렸다. 이건 ‘재능‘의 문제만이 아니라 ‘스피커’의 문제로도 보였다. 그건 유재석 혼자만 만든 분위기가 아니다. 무한도전이 전반적으로 그런 분위기였다.

무한도전이 하나하나 성공을 쟁취할수록 유재석을 정점으로 한 권위의 체계는 강력해졌다. 물론 유재석은 부드러운 리더십, 그리고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보였다. 그리고 이같은 행보는 유재석의 권위를 유지시켜주었다. 모두가 그를, 그들을 지켜봤다. 그리고 기대를 충족시키듯 유재석은 매번 열심이었다. 이따금 그를 바라볼 때 그가 ‘고행‘을 한다고 생각했다. 가장 고생하는 길을 택했다. 기회만 있으면 뛰었다. 게임에서 이기고도 ‘재밌는 그림‘을 만드는 기회였다며 낡고 좁은 차를 선택했다. 그는 언젠가 담배도 끊고 헬스를 다니기 시작했다. 시청자들에게 ‘좋은 그림’을 안겨주기 위해서다.

그는 목표를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갔다. 구성원들의 실패를 강하게 질책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두지도 않았다. 그는 각자의 방식을 존중하는 대신 자신의 방식을 강하게 밀고 나갔다. 그건 그대로 먹혔다. 하지만 구성원은 지쳤다. 애초에 오래갈 수 없는 방식이었다. 무한도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버티는 것 말고는 할수 있는게 없었다. 사고를 치고 프로그램을 나갔던 멤버들은 무도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그들이 심경을 직접 밝히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무도가 ‘영광‘이자 동시에 ‘지옥’이었겠다는 추측을 조심스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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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재석보다는 길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삐걱거렸다. 강요하는 것 같았다. 그 선하고 멋있는 얼굴로 ‘네 삶은 틀렸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리 열심히 사는 사람도 재능있는 사람도 아니다. 어느새 무한도전은 ‘평균 이하‘로 주목받는 게 아니라 ‘최고의 예능프로그램’으로 주목받았다. 버텨내지 못하면 끝장이라는 모습이 멤버들에게서 읽혔다. 좋은 직장에서 높은 연봉을 받고 밤 11시까지 일하며 매번 때려치우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친구가 떠올랐다. 그때부터 무한도전은 내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들에게서 현실이 자꾸 읽혔다. 어쩌면 멤버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는 것은 필연적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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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은 선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시대를 거스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시절 안에 있었기에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시절 안에서 선한 사람이었고 또 유능한 사람이었다. 나누어 말하자면 그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시절 안에 갇혀있었다.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할 그 시절이다.

노력이라는 신화는 박살이 났다. 적어도 내 세대는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정언에 배신당했다. 어쩌면 그것은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성공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나는 평범하게 사는 삶이 나태하다고 배웠지만 어느 순간부터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버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도무지 실패가 괜찮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무한도전과 유재석은 어느 순간부터 내게 그렇게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결심했다. 우리는 이 시절을 떠나보내야 한다. 모두가 미친 듯이 피니시라인으로 달려가야 하는 세상을 보내고 이제는 각자의 보폭으로 살아낼 수 있게끔 만드는 세상을 꿈꾸어야 한다.

지난번 대선, 누가 봐도 문재인의 당선이 확실시되던 그때 나는 그렇게 말했다. 언젠가 문재인의 시절도 낡은 것으로서 떠나보내야 한다고. 그게 세상의 진보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유재석에게도 같은 마음이다. 이제 우리는 성공한 삶의 모델로서의 유재석을 떠나보내야 할 것 같다. 유재석이라는 가장 선한 모습으로 포장된 한 그 시절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