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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MB, 대선 승리 뒤 가회동 전셋돈 반환 독촉”

이명박 전 대통령의 오랜 측근이었던 정두언 전 의원을 인터뷰했다.

ⓒ한겨레21/박승화

정두언 전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오랜 측근이었다. 정 전 의원과 이 전 대통령의 인연은 2001년 말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선거를 준비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전 대통령의 설득으로 ‘MB 캠프’에 합류한 그는 선거에서 승리한 뒤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일했다. 이후 2004년 총선에서 제17대 국회의원(서대문구 을)으로 당선된 뒤 내리 3선을 했다. 2007년 12월 제18대 대선에서는 MB 캠프에서 핵심 전략을 짜며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던 그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점점 대통령과 멀어졌다. 이후 그는 이명박 정권에 대해 ‘패밀리 비즈니스’ ‘권력의 사유화’ 등의 표현을 써가며 누구보다 강하게 비판했다. 그런 그를 일부에선 ‘권력 투쟁을 한다’며 혹평했다.

최근 정 전 의원이 다시 뉴스의 중심으로 급부상했다. 2007년 대선 때 벌어졌다는 ‘경천동지할 3가지’ 사건을 언급하면서다. 이 가운데 하나는 이미 보도됐다. 김윤옥 여사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재미사업가로부터 3만달러가 든 명품 가방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나머지 두 가지에 대해 그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한겨레21은 정 전 의원을 만나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봐온 이명박 전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일은 잘하지만 정치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명박 정권의 실패에 대해서는 “형님(이상득 전 의원)이 이 정권을 망쳤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3월20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했다.

 

“정치 이해도 낮은 사람”

이명박 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가.

비범한 사람인 건 확실하다. 일을 정말 잘하고 용량이 굉장히 크다. 혼자서 100명 몫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달성한다는 점에서 실리적이기도 하다. 그를 (서울시장 시절) ‘컴도저’라고 했다. 컴퓨터와 불도저의 합성어다. 아주 명석하게 밀어붙이기를 잘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의외로 세심한 사람이다. 서울시장 시절 버스체계를 개편할 때 버스 색깔, 번호판의 크기와 모양까지 회의해서 결정했다. 그게 추진력의 비결이었다. 역설적이지만, 밀어붙인다는 건 결국 세밀하게 꼼꼼히 챙긴다는 뜻이다. 지금 하는 얘기지만, 그에겐 윤리나 도덕 같은 것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는 국가관이나 역사관도 없다. 우리(측근)와 얘기할 때, 한 번도 역사 얘기를 한 적이 없다.

‘정두언 회고록’(2016년 <허프포스트코리아>에 연재됐다)을 보면, 국가관·역사관뿐 아니라 ‘정치의식’도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경영은 과정보다 목표가 중요하지만, 정치는 과정과 절차가 중요하다. 많은 이해관계를 조정하려면 타협도 해야 하고 반대쪽 입장을 배려해 설득도 해야 한다. 이 전 대통령은 그런 정치의 특성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다. 기업 회장을 할 때는 한마디 하면 밑에서 일사불란하게 따른다. 그런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기업식으로 정치를 하면 권위주의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민심 이반이다.

이 전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어땠나.

유능한 사람보다 ‘내 말을 잘 듣는 사람’ ‘하라는 대로 하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권력은 나눌수록 커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나누면 작아진다고 생각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쟁쟁한 경쟁자들을 끌어들여 최강의 내각을 만들고 결국 강력한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이 사람은 ‘스타’를 용납하지 않는다. 자기 혼자 빛나야지, 누가 자기 밑에서 빛나면 안 된다. 용렬한 거다.

이 전 대통령에게 가장 크게 실망한 것은 언제였나.

(2007년) 대선이 끝나고 형님(이상득 전 의원) 주변 사람들을 중용하기 시작할 때부터다. 이상한 사람들을 데려와 썼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이전에) 돈을 받는 등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을 데려온 거였다. 사람 쓰는 걸 보면 그의 앞날을 알 수 있다. 당시 내가 만든 말이 ‘이 정부는 정권을 잡은 게 아니라 이권을 잡았다’는 것이었다. 국정운영을 ‘패밀리 비즈니스’처럼 하고, ‘권력을 사유화’한다는 표현도 내가 만들었다. ‘형님’이 이명박 정권을 망친 핵심이라고 그때 느꼈다. 그래서 (2008년 총선에서) 형님이 불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형 이상득은 양날의 칼”

이상득 전 의원은 이 전 대통령에게 어떤 사람이었나.

형님이지만, 아버지이자 스승이자 후원자이자 또 한편으로 불편한 존재였다. 자신이 가는 길을 도와주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길을 막기도 한 ‘양날의 칼’이었다. 결국, 필요악이 돼버렸다.

ⓒ뉴스1

형님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궂은일을 모두 대신했다. 특히 돈 문제. 대통령 후보가 그런 일을 직접 할 수는 없지 않나. 이 전 대통령이 정치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조언하는 구실도 했다. 거기서 끝났으면 되는데 나중에 그 권력을 나눠가지려 했다.

이 전 대통령은 형님의 요구를 다 받아줬나.

다 받아줬다.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이 다 형님 사람이었다. 대통령의 가족을 담당하는 청와대 가족 담당 비서관에 형님의 비서 출신인 장다사로를 앉혔다. 청와대 돈줄을 쥐는 자리인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이 된 이도 형님의 부하였다. 인사 주무르는 역할을 맡긴 것도 형님의 보좌관이던 박영준(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이후 지식경제부 차관)이었다. 요직에 다 형님 사람을 박아놓은 거다. 

정치자금을 모을 때 불법적 요소가 많았나.

돈 문제는 내가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모른다. 어쨌든 돈은 형님한테 모여 김백준(이 전 대통령의 집사·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게 가는 거였다. 돈 모으는 역할을 한 사람이 천신일(전 세중나모여행 회장)·최시중(전 방송통신위원장·이상득 의원 친구)·이팔성(전 우리금융 회장)이었다. 좀 분한 게 뭐냐면, 이명박 정부는 역대 정부 중 가장 강력한 정부가 될 수 있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남 신세 안 지고 대선을 치를 수 있었다. 그런데 돈이 많으면서, 왜 그렇게 많은 돈을 받아 썼는지…. 결국 빚을 지면 (돈을 빌려준) 사람을 데려다 써야 하고, 그가 요구하는 청탁을 들어줘야 한다. 모든 정부의 실패는 대선 과정에서 잉태된다. 대선 과정에서 돈을 적법한 범위 내에서 쓸 수 없으니 돈 문제는 믿을 만한 친·인척이 관리할 수밖에 없다. 친·인척이 실세가 되고 호가호위하는 사태, 국정 농단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유일하게 돈 문제에서 자유로운 정권이 될 수 있었는데, 누구보다 더 심하게 돈에 집착해버렸다. 답답하고 한심하다.

이 전 대통령에게 돈은 어떤 의미였나.

이 전 대통령뿐 아니라 우리 아버지 세대에게 돈은 신앙이었다. 우리 어머니·아버지에게도 돈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그나마 없는 사람들의 돈에 대한 집착은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 있으면서도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의) 돈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대선 기간에 이 전 대통령은 서울 가회동에서 전세를 살았다. 그 집 주인이 서울 인사동에서 음식점을 했다. (대선 승리 뒤) 청와대에 들어갔는데 전셋돈이 금방 안 나왔다. 그랬더니 김백준씨를 통해 그 전셋돈을 빨리 빼달라고 얼마나 독촉했는지, 그 사장이 나만 보면 그 얘기를 했다. (전세 살던 사람이 대통령이 됐는데) 그 전셋돈을 떼먹기라도 하겠나.

ⓒAFP via Getty Images

 

“지금 MB 곁엔 아무도 안 남아”

이 전 대통령과 틀어진 결정적 계기가 2008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이 가진 ‘MB파일’을 요청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MB파일’은 뭔가.

안 봤으니 내용은 모른다. 처음에 나는 그 파일이 엉터리라 생각해 달라고 했다. 이제 와 보니, 그것은 (진실을 담고 있는) 제대로 된 파일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이 전 대통령이) 그렇게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았을까. 당시 나는 서울 도곡동 땅이나 ‘BBK 사건’과 관련해 (이 전 대통령이) 억울하게 오해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순진했던 거다. 이 전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파일을 확보하려던 건데, 이 전 대통령은 그걸 위험하게 생각했다. 내가 알면 안 되는 내용이었던 거다.

‘정두언 회고록’을 보면, 도곡동 땅에 대해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고 썼다. 도곡동 땅은 누구의 것이라고 생각하나.

이 전 대통령 게 맞는 것 같다. 아니면 이 전 대통령과 이상득 전 의원, 두 사람 소유일 수도 있다. 이 전 의원도 관련 있는 것 같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막바지 때 일이다. 우리(MB 캠프)가 도곡동 땅 문제를 공격하던 (박근혜 경선캠프의) 서청원·이혜훈·유승민 의원을 고소했다. 그러다 거꾸로 우리가 도곡동 땅 수사를 받는 형편이 돼버렸다. 사실 확인을 해야 하니까. 그때 이 전 의원이 고소 취하를 강하게 주장했는데 그 모습을 보며 수상하다고 생각했다. 고소 취하는 이 전 대통령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일이었다. 결국, 내가 이 전 대통령을 설득해서 고소 취하를 철회시켰다. 그때 이 전 의원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에게 불리한 일인데, 왜 그렇게 성화를 부렸는지. 그래서 ‘이 전 의원도 관련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이제야 드는 것이다.

최근 검찰 조사 과정에서 김희중(전 청와대 제1부속실 실장), 김백준 등 이 전 대통령의 측근이 대거 그에게 등을 돌렸다. 왜 그랬을까.

결국 이 전 대통령이 다 지시해서 한 거다. 그걸 자기네가 알아서 했다고 말하면 다 뒤집어쓰는 건데, 그 정도로 충성심을 가진 사람은 없다.

지금 곁에 누가 남았나.

없다고 봐야 한다. 지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이 전 대통령을 잘 모르는 이들이다. 측근이라 하면 속을 다 털어놓고 얘기할 정도여야 한다.

김윤옥 여사가 대선 때 돈이 든 명품 가방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두언 전 의원의 서명이 들어간 각서도 공개됐다. 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각서를 쓴 것은 맞다. (김윤옥 여사가) 가방을 돌려줬는데 돌려준 시점이 너무 늦었다. 2개월 정도 걸렸다. 돌려줬더라도 문제가 된다. 바로 돌려줬어야 한다. 판례를 보면, 5일 정도 후에 돌려준 것도 받은 것으로 친다. 가방 안에 미화 3만달러가 들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돌려줬는데 그 돈이 원래 주인에게 돌아갔는지는 불확실하다. 배달 사고가 난 것 같다.

 

“갈 당이 없어… 봉사하며 살 예정”

 앞으로 정치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어떤 삶을 살 계획인가.

정치를 하려야 할 수가 없다. 갈 당이 없다. 앞으로 방송일을 하면서 자원봉사하며 살아갈 예정이다. 상담 자격증을 2개 땄다. 다문화, 청소년 상담을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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