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8년 03월 26일 10시 0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3월 26일 10시 07분 KST

“총기에 더는 침묵하지 않겠다” 워싱턴 뒤덮은 80만 함성

80만명이 참가한 워싱턴 ‘우리 생명을 위한 행진’ 현장을 찾아가봤다.

The Washington Post via Getty Images

“더는 침묵하지 않겠다.”

미국 워싱턴 정치 중심지, 의회와 백악관을 잇는 ‘펜실베이니아 에비뉴’ 2.5㎞ 거리에는 플로리다주 더글라스 고교 총기난사 사건을 더이상 반복해선 안된다는 수십만 집회 참가자들의 외침으로 가득찼다. 미국 대통령이 의회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백악관까지 퍼레이드를 펼치는 바로 그 거리다. 총기사고에 따른 수없는 아이들의 희생에도 ‘가만히 있으라’며 학생들에게 침묵을 강요해온 의회와 백악관의 정치인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였다.

24일(현지시각) 낮 12시로 예정된 ‘우리 생명을 위한 행진’ 행사장에 30분 일찍 도착했지만, 행사장 안쪽으로 더 깊숙히 들어가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로 움직이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아예 일찌감치 간이화장실 천장 위, 나무 위, 국기 게양대 등 ‘명당’을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The Washington Post via Getty Images

그동안 미국에서 취재했던 어떤 행사나 집회보다도 사람들이 많았다. 집회 대열의 끝을 볼수는 없었지만, 어림 감각으로도 지난해 1월20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25만명·언론 추산), 다음날인 21일 ‘반 트럼프 시위’인 여성행진(50만명·주최 쪽 추산)보다 많아 보였다.

워싱턴에서만 주최 쪽 추산으로 80만명이 참가했다고 나왔다고 <엔비시>(NBC) 방송은 전했다. <에이피>(AP) 통신은 이번 행진이 1960~1970년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던 시위 이후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청년 시위라고 전했다. 인파가 많다보니 휴대전화도 연결되지 않았고, 사람을 찾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지난 2월14일 플로리다 파크랜드 마저리스톤맨더글라스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으로 17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미국에서 늘상 반복되는 총기사고의 하나쯤으로 묻힐 뻔했다. 하지만 6분20초의 공포와 아수라장에서 살아남은 학생들은 더이상 가만있지 않았다.

생존 학생들은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총기규제의 허술함과 미래세대의 공포감, 정치인들의 무책임감을 알리며 집회와 시위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반향은 컸다. 동맹휴업이 조직되고, 총기규제를 옹호하는 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총기난사 발생 40여일만에 이날 워싱턴을 포함해 뉴욕, 필라델피아,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주요 도시의 800여 곳에서 동시에 대규모 집회를 조직해냈다.

워싱턴 행사에 참가한 더글라스 고교 생존학생들은 직접 연설에 나서 총기규제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캐러런 캐스키는 “유권자들은 공격형 살상무기 판매 금지를 원한다. 광범위한 신원조회를 원한다”며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뜻을 대변하든지 아니면 꺼져라”고 말해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데이비드 호그는 “이 문제를 모든 주, 모든 선거로 가져가자”고 제안했다. 엠마 곤살레스는 연설 전에 총기난사 시간이었던 6분20초동안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의 상징인 마틴 루터 킹 목사의 9살짜리 손녀 욜란다 르네 킹도 연설에 동참했다. 욜란다는 킹 목사의 50주기를 2주가량 앞둔 이날 할아버지의 1963년 명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를 인용해 “우리 할아버지는 그의 네 자녀가 피부색이 아닌 인품으로 평가받기를 꿈꿨다”며 “나에게도 총기 없는 세상이 돼야 한다는 꿈이 있다”고 말해 환호를 받았다.

플로리다 고교 총기난사 사건 이후 학생들의 두려움은 깊고도 깊었다. 매릴랜드주 블레어 고교 11학년생이라고 밝힌 그레이스 리치매치는 남차친구와 함께 “다음은 내차례?”라는 글귀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집회에 참가했다. 리치매치는 “내가 집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학교에 가야한다는 것을, 우리의 그런 목소리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학교에서 몇명이 왔는지는 모르지만, 많은 친구들이 이번 행사에 온다고 했다”며 “우리가 의회를 통해 상황을 바꾸러면 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겨레/이용인
매릴랜드주 블레어 고교 11학년생이라고 밝힌 그레이스 리치매치(오른쪽)가 남차친구와 함께 “다음은 내차례?”라는 글귀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서 있다. 휴잇은 “내가 집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학교에 가야한다는 것을, 우리의 그런 목소리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ê³  말했다.

버지니아주의 ‘제임스 허버트 블레이크’ 고교 12학년생인 대나 휴이트도 “플로리다 총기사건 일주일 뒤 우리 학교도 점심시간에 강당으로 대피하는 소동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휴이트는 “총기나 총기사건과 관련없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나를 포함해 친구들은 누군가가 학교를 공격하려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며 “충격은 크지 않았지만 두렵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는 “나는 교사”라고 적은 손팻말을 든 사람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자신의 이름을 ‘바비’라고만 밝힌 매릴랜드 지역 학교의 교사는 총기참사를 막기 위해 교사들에게 총기사용 훈련을 시키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을 일축했다. 바비는 “나도 총기를 갖고 있지만 학교로는 결코 가지고 오지 않을 것이다. 끔찍한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지 아무도 모르지 않냐”며 “내가 잘못해서 아이들을 다치게라도 하면 죄책감으로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겨레/이용인
버지니아주의 ‘제임스 허버트 블레이크’ 고교 12학년생인 대나 휴이트는 “플로리다 총기사건 일주일 뒤 우리 학교도 점심시간에 강당으로 대피하는 소동이 있었다”ê³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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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 참석한 꼬마 아이가 “나는 미래 유권자”라는 손팻말을 들고 서 있다.

집회 참석자들의 손팻말 자체가 이들의 절규였다. “두번 다시는 안돼” “한명의 아이가 이 땅에 있는 모든 총들보다 더 귀중하다” “나는 교사다, 명사수가 아니다” “우리의 팔은 무기가 아니라 허그(포옹)을 위한 것” “총기협회 퇴출”,“엿먹어라, 총기협회”,“사랑은 더 많이, 총기는 더 적게” 등 갖가지 표현이 등장했다.

지난 1999년 4월 콜로라도 주 컬럼바인 고교 총격 참사로 13명이 사망한 이후 지난 20년간 200여명의 학생이 학교 총격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워싱턴 포스트> 분석에 따르면 이 기간 193개 학교에서 18만7천명의 학생이 총격 사건을 경험했다. 지난 2012년 코네티텃 주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도 총기난사 사건으로 28명이 사망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한겨레/이용인
자신의 이름을 ‘바비’라고만 밝힌 매릴랜드 지역 학교의 교사는 총기참사를 막기 위해 교사들에게 총기사용 훈련을 시키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내가 잘못해서 아이들을 다치게라도 하면 죄책감으로 살 수 없을 것 같다”ê³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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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명을 위한 행진’ 행사에 참가한 자원봉사자들이 음식을 나눠주고 있다. 18살 이하 참석자들에게는 무료로 음식과 음료를 제공했다.

하지만, 자신을 캐슬린(63)이라고만 밝힌 은퇴한 직장인은 “이번만은”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는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사고는 학생들이 너무 어려 대응하는 방법을 몰랐다”며 “이번엔 총격을 당한 고등학생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이 참으로 똑똑하다. 오는 11월 중간선거가 있지 않냐”며 희망을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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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참석자들이 행사 모습을 더 잘보기 위해 나무 위나 국기 게양대 위에 올라가 있다.

실제 이날 참가자들의 인종, 나이, 정치 성향은 어느 집회보다도 다양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도 총기규제 찬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높고 높은 장벽인 총기협회와 정치인들의 ‘검은 유착’을 이번에는 뛰어넘었을지 누구도 예단할 수 없지만, 총기규제를 위한 열망과 동력은 어느때보다 강해보였다. 침묵을 깨고 가만있지 않은 아이들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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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대학생이라고 밝힌 집회 참가자가 연설을 들으며 눈물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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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참석자들이 각종 손팻말을 들고 중앙 무대 쪽을 쳐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