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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3월 25일 10시 53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3월 25일 10시 54분 KST

모두의 것이 된 ‘사리원’…“변호사 좋은 일만 한듯”

‘사리원면옥’과 ‘사리원불고기’는 2년 반 넘게 법적 소송을 벌여 왔다

사리원면옥·대전MBC

▶ 대전의 냉면맛집과 서울의 불고기맛집이 가게 이름을 두고 법정 다툼을 벌였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변호사들도 동원됐습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서로 다른 주력 상품을 파는 맛집들이 왜 싸우게 됐을까요. 결국 승자는 누구일까요.

사리원은 북한의 지명이다. 현재 황해북도의 도청 소재지다. 원(院)은 조선시대에 공적 업무를 위해 지방을 이동하던 관리나 상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숙소를 말한다. 당연히 교통의 요지일 수밖에 없고 번화한 지역이다. 남한의 장호원, 조치원, 이태원이 같은 유래로 이름 붙여진 곳이다.

사리원이 지리적 명칭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사리원이 북한 황해도에 있는 도시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거나 사리원이 지리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리원? 사리+원? 사리? 국수사리? 국수나 냉면 파는 집 아냐?”라고. 서울 사는 누군가는 “불고기집 아니냐?”고.

사리원면옥과 사리원불고기의 법정 다툼은 여기서 시작됐다. 사리원은 누구나 알 만한 지역 이름일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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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이름에서 ‘사리원’을 빼달라”

2015년 8월 사리원불고기 라성윤 대표는 내용증명 우편을 한통 받았다. “사리원불고기가 상표권을 침해했으니 가게 이름을 바꾸라”는 내용이었다. 라 대표는 그날을 “날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고 기억한다. 그는 1992년께 서울 도곡동에서 ‘사리원’이란 이름으로 식당을 시작했다. 서울에만 8곳, 경기도 수원에 1곳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불고기를 주메뉴로 냉면도 함께 팔았다. 

이 내용증명을 보낸 사람은 대전을 기반으로 사리원면옥을 운영하는 김래현 대표였다. 사리원면옥은 김씨의 증조할머니가 1951년부터 운영한 식당이었다. 당시 대전 지역에 3곳, 서울에 1곳의 식당(현재는 5곳)을 운영 중이었다. 냉면이 주메뉴였지만 만두, 불고기도 함께 판다. 2000년대 중반 식당 경영권을 물려받은 김 대표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하면서 영역을 확장하는 중이었다.

김 대표가 “우리 상표를 쓰지 말아달라”고 하는 근거는 특허청에 등록된 ‘사리원면옥’이라는 상표(등록번호 32574호)였다. 김 대표의 아버지와 할머니는 1996년 특허청에 상표를 출원해 등록을 마쳤다. 사리원이란 단어가 들어간 첫 상표 등록이었다. 김 대표는 이를 근거로 “사리원면옥이나 사리원불고기나 주로 ‘사리원’으로 불리는 등 두 식당의 상표는 동일하거나 유사하다. 냉면과 불고기는 한식으로 음식의 카테고리가 같고 한 음식점에서 제공되는 실정이다. 사실상 같은 서비스업종이므로 결국 사리원불고기는 (먼저 상표 등록한) 사리원면옥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라 대표는 억울했다. 그는 사리원을 누구나 쓸 수 있는 명칭으로 알고 있었다. “1992년 개업할 즈음에 상표 등록을 알아본 적이 있다. 당시 변리사들에게 알아본 바로는 ‘사리원’이란 명칭이 많은 사람들이 알 만한 지명이어서 상표 등록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미 1988년에 비슷한 상표가 등록을 거부당한 적도 있었고 그 이후에도 거절되는 사례들이 있어서 ‘안 되는 건가 보다’라고 쉽게 생각했다.” 소송과 맞소송이 이어졌다. 라 대표는 내용증명에 맞서 2015년 9월 김 대표가 보유한 상표의 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는 소송을 냈다. 김 대표도 상표의 권리를 인정해 달라는 맞소송을 냈다. 이어 2016년 3월 라 대표를 상대로 상표권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당장 상표권 침해로 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니 우선 사리원불고기 쪽이 ‘사리원’이란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요구였다. 라 대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사리원면옥이 1996년에 등록한 상표를 무효로 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현저한 지리적 명칭은 상표로 등록할 수 없다”는 상표법 조항에 따라 사리원면옥의 상표 등록을 취소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소송이 한창이던 지난해 5월 라 대표는 김 대표의 아버지와 할머니가 어떻게 사리원면옥의 상표를 등록했는지 의아해 특허청에 문의한 바 있다. 특허청은 “당시 특허청의 ‘상표심사기준’에 ‘이미 등기된 개인의 상호는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더라도 상표 등록이 가능하다’는 조항이 있었다. 사리원면옥은 이에 해당돼 등록 결정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이 조항은 2001년 상표심사기준에서 삭제됐다.

소송이 진행되는 중에 김 대표가 제기한 상표권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라 대표는 간판을 바꿔 달아야 했다. 사리원을 사리현으로 바꾸거나 간판에서 사리원의 마지막 글자 ‘원’을 떼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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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원은 ‘현저한’ 지명일까, 아닐까

등록 취소 소송과 양쪽이 낸 상표권리 확인 소송까지 세 사건이 특허심판원에 제기됐다. 특허사건은 특허심판원(1심)-특허법원(2심)-대법원(3심)으로 진행된다.

세 사건을 관통하는 쟁점은 사리원이 상표법이 규정하는 ‘현저한 지리적 명칭’인지, 그래서 상표 등록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여부였다. 상표법에서 말하는 ‘현저한’이란 말은 ‘일반적인 수요자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이란 뜻이다. 상표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지명이라면 상표로서 구분되는 능력(식별력)이 없어 무효일 수 있다는 취지였다. 이렇게 널리 알려진 지역 이름을 특정 개인이 독점할 수 없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항이었다.

대법원은 2012년 코카콜라가 판매하는 캔커피 ‘조지아’(GEORGIA)의 상표 등록을 거부했다. “아시아 북서부 국가인 그루지야의 영문 명칭 또는 미국 남동부 주의 명칭으로서 일반 수요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서울식당’ ‘양평해장국’ ‘지리산오골계’ 등을 어느 특정인이 독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결론을 얻기 위해 라 대표 쪽은 법정에서 ‘사리원은 누구나 아는 동네’라는 논리를 펼치는 데 공을 들였다.

“사리원은 조선시대부터 교통의 요지로 널리 알려졌고 1947년 시로 승격되고 1954년 북한 황해북도의 도청 소재지가 된” 누구나 알 만한 지리적 명칭이라고 주장했다. 사리원은 예전부터 냉면, 국수 같은 음식이 유명한 지역이라 국내에 ‘사리원’이라는 식당이 여럿 존재하고 사리원 출신으로 남쪽에 사는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300만명에 이르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무엇보다 그동안 사리원이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라며 상표 등록을 거절한 특허청의 심사 사례들이 제시됐다.

같은 역사적 사실을 해석하는 김 대표 쪽 주장은 달랐다.

“사리원이 시로 승격된 1947년은 광복 이후 실질적으로 남북이 분단된 이후이며, 황해북도 도청 소재지로 지정된 1954년은 한국전쟁 이후 남북 교류가 완전히 차단된 때”였다는 주장을 폈다. 사리원면옥이 상표 등록된 1996년은 남북 분단 이후 50년이 지난 시점이라는 점도 강조됐다. 분단된 지 50년이 넘은 북한의 지명이라 많은 사람들이 알 만한 지역이라고 보는 건 무리라는 주장이었다.

양쪽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각각 설문조사도 벌였다. 라 대표 쪽은 2016년 12월, 40살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사리원이라는 명칭을 어떤 명칭으로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 결과 응답자의 26.8%가 사리원을 지명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황해도 지역의 지명으로 알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15.8%였다. 

김 대표 쪽이 같은 해 11월에 20~79살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그 비율이 더 낮았다. 응답자의 16.5%가 사리원을 지명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고, 3.7%가 황해도의 지명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결국 1, 2심은 김 대표가 운영하는 사리원면옥의 손을 들어줬다. △사리원이 초중고 교과서에 언급되고 신문 기사 등에 등장하지만 이 사정들이 ‘현저하다’는 근거로는 부족하고 △사리원을 지명으로 인식한다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이 낮은 점 등이 근거였다. 또한 상표 등록 당시인 1996년의 수치를 측정할 순 없지만, 인터넷이 현재보다 덜 발달된 1996년엔 사리원을 지명으로 인식한 응답자의 비율이 더 낮을 것이라는 점도 근거로 작용했다.

패소한 라 대표는 변호사를 찾았다. 그동안 특허법인 변리사들에게 사건을 맡겼던 그는 “상대는 대포를 쏘는데 딱총으로 싸우느냐”는 주변의 조언을 듣고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대법관 출신 신영철 변호사를 비롯해 법무법인 광장의 변호사들에게 상고심을 맡겼다.

김 대표도 가만있지 않았다. 2심을 김앤장에 맡겼던 김 대표는 상고심에선 대법관 출신 손지열 변호사를 합류시키는 등 ‘전력’을 보강했다. 김 대표는 “집안에 안 좋은 일이 겹쳐 갑작스레 경영을 물려받았다. 교직을 그만두고 12년 동안 새로 키우다시피 한 가업이라 애착이 클 수밖에 없었는데 돈만 밝히고 갑질하는 사람처럼 묘사한 악의적인 기사들 때문에 속상했다”고 말했다.

지난 2월13일 선고된 대법원 판단은 1, 2심과 달랐다. 대법원 3부(재판장 김창석·주심 김재형)는 “현저한 지리적 명칭 여부의 판단 기준이 되는 시점은 상표 등록 여부를 결정하는 시기”임을 전제한 뒤 “교과서, 언론 보도, 설문조사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판단 기준에 따라 대법원은 “사리원은 조선 시대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고 일제 강점기 이후에도 북한의 대표적인 도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며 “1996년 당시를 기준으로 본다면 사리원은 일반 수요자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고 판결했다. 원심이 판단 근거로 삼았던 2016년 설문조사 결과는 “상표 등록 결정일로부터 20년이나 지난 후에 이루어져 일반 수요자의 인식을 반영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라 대표는 다시 ‘사리원불고기’ 간판을 달았다. 

“그 사리원이 아니더라”

대법원은 “현저한 지리적 명칭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에둘러 말했지만 이번 판결로 사리원은 누구나 쓸 수 있는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 되었다. 

판결을 검토한 김영두 변리사는 “20년이 지난 설문조사를 주된 근거로 판단한 원심과 달리 교과서나 신문 등 여러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볼 때 사리원은 현저한 지리적 지명이 맞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현저한) 지리적 명칭을 특정 개인이 독점하면 공익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입법 취지가 고려된 판결”이라고 덧붙였다.

대법원 판결의 취지는 22일 열린 파기환송심에서도 확인됐다. 김 대표 쪽은 “1996년도 당시 수요자의 인식을 가늠해볼 수 있도록 40대 이상으로 한정된 응답자를 대상으로 양쪽이 합의한 설문조사를 시행하자”며 감정 신청을 했지만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은 다음달 12일 열린다.

현재 김 대표와 라 대표 모두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친 상태”라고 말했다. 양쪽 모두 소송을 전후해 “너희 사리원인 줄 알고 갔는데 다른 사리원이었다”는 말을 듣는 등 웃지 못할 일도 많았다고 했다. 라 대표는 “특허청 심사관에 따라 제각각인 심사 기준 때문에 너무 큰 혼란이 발생했고 피해를 입었다”며 “양쪽 모두 변호사 좋은 일만 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