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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3월 23일 17시 24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3월 23일 17시 24분 KST

파랑새를 쫓는 이 시대의 우리들에게

파랑새를 쫓는 이 시대의 우리들에게

huffpost

이른 새벽 시간에도 광역버스 정류장에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긴 줄이 만들어진다. 아직은 어스름한 새벽녘 바람에 약간의 싸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첫차를 타고 학교를 갔던 적도 많았는데, 가끔 돌이켜 보면 지금은 되살릴 수도 없는 열정 가득했던 젊은 날이었던 것 같다. 정신없는 하루를 살다 보니 한 달, 반년, 일 년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나가버린 듯해서 허무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한 그런 상반되는 마음이 교차한다.

일을 하며 학교를 다니는 것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직접 경험을 해보며 알아가는 듯하다. 일련의 과정에서 소소한 기쁨을 찾고 애써 의미를 찾으며 매일이 감사하기는 하지만,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세월이 야속하지 않을 수 없다.

박지선

나는 이제 와서 약간의 성실함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지만, 나와는 다르게 오래전부터 여유 없는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예상보다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서, 그 전에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러면 또 그 이전에는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앞만 보며 맹목적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사회가 부여한 가치를 쫓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제까지는 경험해보지 않았던 미래의 그 ‘무엇’을 위해 현재를 고통스럽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 명확하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 단지 외부에서 가치를 부여한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한 것처럼 보인다.

막연한 희망과 기대를 안고 살아가다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그 순간에 마주하게 됐을 때 우리는 예상했던 만족스러움이나 행복감은 느끼지도 못하고, 도리어 공허함이나 허무함만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이는 당연한 결과인데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모를 수밖에 없는 환상 속 세계인 듯하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달래는데 일가견이 있는 우리들

고통스러운 현재. 우리는 스스로에게 타당한 이유를 부여하며 오늘 하루도 덤덤하게 버티고 만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 왔던 환상 속 세계, 고등학교 시절에는 좋은 대학만 가면 이런 절박한 고통은 끝이 날 것이라고 여겼지만, 좋은 대학을 가봐도 그 안에서 또다시 경쟁을 하게 될 것이고, 오히려 내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장소에 불가할 뿐이다. 더 잘난 아이들은 더 빛이 나는 스펙들을 하나씩 쌓아가고 있으며, 어디에서도 지원을 받지 못하는 나는 고작 할 수 있는 것이 영어점수를 높이거나 몇 개의 자격증을 따는 것뿐이다. 이때 사람들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며, 또 다른 미래에 기대를 걸어두게 된다. ‘이후에는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을 거야’라는 착각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고통스러움에 대한 타당한 이유가 없으면 우리는 더 무너질 것 같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이때 더 끔찍한 현실은 더 이상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될 수가 없을 때, 스스로 자학을 하며 세상을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힘들어도 나중에는 괜찮아질 거야.”

미래의 배신

지금 우리는 밥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 사람들과 대화 나누는 시간들까지 포기해가며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오롯이 앞만 보며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면 무엇이 남아있을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과거의 행복을 무시한 채 살았더니 지금 행복한 삶을 누리며 살고 있는가? 아니면, 매 순간 지금을 행복하게 살아왔더니 현재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이 행복하지 않으면 미래에도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도 알고 있을 것이다.

아주 거창한 ‘무엇’인가가 있어야 행복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너무나 가까운 곳에 우리가 살아야 할 의미,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이유가 있는데, 지금은 그 소중함과 크기를 모르기 때문에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만 연연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내가 살아갈 이유, 내 삶의 의미

지난 여름 출근 길에 고속도로에서 브레이크가 고장 나는 바람에 죽을뻔한 경험을 실제로 한 적이 있다. 차가 점차 밀리기 시작해서 속도를 줄이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속도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앞에 있는 차들과 점차 가까워지는 것이다. 너무 깜짝 놀라 우선은 기어를 P(parking)에 두고 차를 가까스로 멈췄다. 잠시 후, 차를 다시 움직이기 위해 기어를 D(drive)에 놓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또다시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이었다. 직감적으로 이상함을 느낀 나는 사이드 브레이크까지 잠근 후,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하나씩 일을 처리해나갔다.

아버지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나는 울 수밖에 없었다. 처음 겪는 일뿐만 아니라 생존과도 바로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에 내 감정은 쉬이 가라앉지 못 했다.

일을 무사히 처리한 후에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갑자기 브레이크 작동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이렇게 죽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영화나 책에서 보는 것처럼 내 인생이 영화 필름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나는 딱 한 가지만 떠올랐다.

“아침에 잘 하고 나왔었나?”

그 생각이 유일무이하게 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고 썩 괜찮게 행복한 모습으로 헤어진 것 같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힘들게 유지해갔던 대학원을 졸업 못한 아쉬움, 돈을 많이 벌지 못하거나 성공하지 못한 아쉬움, 사지 못한 물건에 대한 아쉬움 등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지금 행복이 다른 곳에 없다. 그냥 우리 가족이 내 옆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힘이 생기고 살아갈 이유가 되는 것 같다.

아마 각자가 지금 떠오르는 그 소중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과 매 순간 소중하게 보낸다면 단연코 지금을 행복한 시간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하루를 행복하게 만든다면, 내일도, 한 달 뒤에도, 일 년 뒤에도, 더 먼 훗날에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 필자의 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