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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3월 21일 10시 28분 KST

청년 빚 80%가 학자금 대출…반전 없는 ‘적자 청춘’

적자 청춘

 

‘헬조선’을 살아가는 한국 사회 청년들에겐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는 질문들입니다. 일을 구하는 것이, 머물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또 평생의 배우자를 맞이하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할까요?

<한겨레>는 독립적 경제 주체로 이행하는 시기, 즉 ‘이행기’에 놓여 있는 청년들의 삶을 한 달치 영수증을 통해 살펴봤습니다. 누구보다 ‘노오력’하지만 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이들의 영수증에 대해 우리는 쉽게 ‘그뤠-잇’과 ‘스튜-핏’을 외칠 수 있을까요?

‘1900만원.’


2016년 서울의 한 사립대학을 졸업한 최소원(가명·28)씨가 학교에 다니는 동안 한국장학재단에서 대출한 금액을 모두 합친 액수다. “등록금은 총 6학기 대출받았고, 생활비 대출을 한번(100만원) 받으니까 그 정도 되더라고요.”

‘1900만원’은 대학생인 최씨에게 도무지 풀 수 없는 ‘족쇄’처럼 느껴졌다. 최씨는 대학 1~2학년 동안 근로장학과 과외를 ‘빡세게’ 병행하면서 900만원을 갚았지만, 다음 학기가 되자 학자금 대출로 빚은 도로 쌓였다. 고학년에 올라갈수록 취업 준비와 학점 관리 등으로 ‘아르바이트 전선’에서도 멀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빨리 갚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학생 신분에서는 모을 수 있는 돈이 한계가 있잖아요. 어느 순간 ‘내가 어떻게 해도 이 돈은 못 갚겠구나. 그냥 나중에 취직하면 갚자’라고 생각하면서 포기한 거죠.”

취업 뒤엔 극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2016년 대학을 졸업한 뒤 한 비영리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최씨는 요즘 ‘취직하면 갚자’라던 말이 얼마나 철없던 소리였는지 체감하고 있다. 최씨가 받고 있는 세전 160만원대의 월급으로는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도 벅찬 탓이다. 상환 뒤 남은 대출금 1000만원은 그대로인데, 지난해 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시중 은행에서 대신 대출해주느라 최씨 명의의 빚은 1500여만원으로 더 늘었다. “부모님 병원비처럼 예상치 못한 지출이 있으면 부담이 커요. 매달 월급 받아서 겨우 전달에 쓴 카드값 막기 급급해요. 적금이라도 들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실제론 꿈도 못 꾸죠.”

최씨의 삶은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가 공개한 ‘이행기청년 금융지원 모형 개발 연구’ 보고서(이행기청년 보고서)에서 분석한 평균적인 청년들의 삶과 닮아 있다. 센터가 분석한 만 20~34살 미혼 청년 136명의 재무구조를 보면, 생애 처음으로 경험하는 빚은 대부분 학자금 대출인 것으로 나타났다. 학자금 대출을 안고 학교를 떠났고, 취직을 준비하면서는 생활비로 인한 빚이 쌓였다. 설령 취직이 된다 하더라도 저임금·불안정 일자리를 전전해 빚을 제대로 갚지 못하는 모습은 이미 청년들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 빚은 학교에서 시작됐다

‘취업준비생’인 노수정(가명·29)씨는 최근 실업급여 신청을 준비 중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에서 2년간의 계약 기간이 끝난 뒤 다시 실업자가 됐기 때문이다. 노씨가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받은 월급은 세후 160만원 정도였다. “원래 시민단체 같은 엔지오 활동에 관심이 많았는데, 2년간 너무 적은 급여로 생활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일반 기업에 취직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씨는 계약직으로 일하는 동안 월급 가운데 절반인 80만원을 부모님께 드렸다. 학자금 대출을 대신 갚아주시는 부모님께 상환금 명목으로 드리는 돈이었다. “대학 다닐 때 8학기 모두 학자금 대출을 받았거든요. 졸업하니까 학자금 대출만 2500만원 정도 되더라고요. 간접적으로라도 갚고 싶어서 부모님 용돈 겸 80만원씩 드렸어요.”

부모님이 아직 경제 활동을 하고 부모님 집에 얹혀살 수 있는 덕에 대출금 상환 부담을 그나마 덜 수 있었다는 노씨는 아직도 진로 고민을 하고 있다. “대학원에 들어가 전공을 더 깊게 공부해보고 싶기도 한데, 대출금이나 집안 형편을 보면 쉽사리 선택하기가 어려워요. 따지고 보면 다 돈 때문인 거죠.”

이행기청년 보고서를 보면, 청년 10명 가운데 6명은 빚을 안고 있다. 평균 부채는 1064만원. 이 가운데 650만원(55.5%)이 한국장학재단을 비롯한 공공기관에서 빌린 대출이었다. 대부분 학자금 대출이란 의미다. 그 뒤로 신용카드(11.8%), 신용 대출(7.4%), 담보 대출(6.7%) 차례였고, 마이너스통장과 대부업체도 각각 전체 빚의 3.7%(49만원)와 2.2%(14만원)를 차지했다.

노씨처럼 부모님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저임금 일자리에 허덕이며 ‘현생’(현실의 삶)에 치이면 대출금 상환은커녕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도 급급해 빚이 늘게 된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15~29살) 부가조사’를 보면, 청년층이 첫 일자리에 취업할 당시 임금은 100만~150만원 미만이 37.5%로 가장 많았고, 150만~200만원 미만이 29.6%로 그 뒤를 이었다.
서울의 한 스타트업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김소윤(가명·27)씨의 한달 수입은 세후 124만원이다. “학자금 대출 500만원에, 생활비 대출 400만원 합해서 한국장학재단 대출만 900만원이 있어요. 원금 상환은 못 하고 있어요. 일정 월급 이상이 되어야 상환할 수 있는데, 상환 기준 자체에서 미달하더라고요. 한달에 이자만 1만5000원씩 내고 있어요.” 김씨는 “그나마 국립대학이라 등록금이 싼 편이었다”고 말했다.

 

 

■ 구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빚도 늘었다

취업 준비에 치이는 ‘혐생’(혐오스러운 인생)에서는 생활비도 ‘대출’이다. 한국장학재단 통계를 보면, 전체 대출액 가운데 생활비 대출액은 2010년 3177억원에서 2016년 6107억원으로 7년 사이 두배 가까이 늘었다. 대학생, 그리고 대학에서 직장으로 이행하는 ‘구직 기간’ 동안 생활비 부담이 빚으로 쌓인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통계다.

아르바이트와 피아노 레슨으로 한달 60만원을 벌면서 1년째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한세진(가명·26)씨도 생활비가 가장 걱정이다. “취업 준비 때문에 벌 수 있는 돈에 한계가 있으니까 생활비가 너무 빠듯해요. 돈 때문에 사고 싶은 책을 못 살 때 가장 속상하고요.” 한씨가 안고 있는 빚은 1300만원인데, 학자금 대출 1000만원을 제외한 300만원은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하면서 생활비로 인해 쌓인 카드빚이다. “신용카드로 생활비를 쓰다가, 못 갚을 때마다 ‘리볼빙 서비스’(사용 대금의 일부를 대출로 전환하는 서비스)로 돌렸거든요. 그렇게 하다 보니 빚이 300만원까지 늘었어요. 지금은 금리가 낮은 햇살론 대출을 받아서 일단 카드빚을 막아둔 상태예요.”

대학을 가지 않은 고졸 청년에게도 구직 준비는 힘겹다. 오전엔 서울 청담동 쌀국수집에서, 저녁엔 흑석동 치킨집에서 각각 5시간, 8시간씩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이지영(가명·22)씨는 지난해 12월 신용 대출로 50만원을 빌렸다. 피부관리사 학원비를 보태기 위해서였다. “나이도 어리고 빚이 생기는 건 부담스러운데, 당장 학원비 낼 돈이 없어서요. 학원비 말고 따로 내야 하는 모델료나 실습비로도 한달에 25만원 정도 들었어요.” 이씨는 다행히 피부관리사 자격증을 땄지만, 당분간 취직은 미뤘다고 했다. “피부관리실 세곳 면접을 봐서 모두 합격했는데 직장이랑 집이 너무 멀어서 포기했어요. 당장 독립할 돈이 없어서 일단 아르바이트로 돈을 좀 모으고, 다른 미용 관련 자격증도 딴 다음에 취직하려고요.”

빚을 떠안은 채 일자리로 향하는 취업준비생들의 직업 이행기는 그야말로 고난의 시간이다. 구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생활비 부담이 쌓이지만, 신용이 없어 제1금융권 대출 접근이 쉽지 않아 상대적으로 고금리의 악성 대출로 내몰리기 쉬운 탓이다. 이행기청년 보고서를 보면, 취업준비생의 월평균 소득은 75만원, 저축을 포함한 지출은 94만원으로 평균 19만원이 적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빚은 한국장학재단 등 공공기관 대출 441만원 외에도 마이너스통장 333만원, 신용카드 57만원 등 평균 831만원에 달했다.

청년연대은행 ‘토닥’의 스카(활동명) 상근활동가는 “가족의 도움이 없다면 청년들은 학자금이나 생활비를 부채로 얻어 충당할 수밖에 없는 게 한국 사회 구조”라며 “빚으로 인해 심리적인 압박을 안고 구직 활동을 시작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자신의 적성을 살필 기회 없이 ‘묻지마 취업’에 내몰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 빚은 빛의 속도로 불었다

학자금 대출로 처음 안게 된 빚은 기타 대출로 확장한다. 이행기청년 보고서를 보면, 대학 졸업 직후인 만 25~29살의 경우 평균 학자금 대출이 전체 부채의 대부분인 79.6%를 차지하다, 만 30~34살의 경우 그 비중이 32.2%로 줄었다. 반면 담보 대출의 비중이 51.9%로 절반 이상을, 신용 대출도 6.9%로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영섭 내지갑연구소 소장은 “정부 통계를 살펴보면 청년부채는 다른 세대보다 양적으로 가파르게 늘고 있고, 대부업체·작업대출·휴대폰깡 등 대출의 질도 나빠지는 양상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비영리기관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이수혁(가명·37)씨도 ‘어찌어찌 살다 보니’ 빚이 불었다고 했다. 취업 뒤 학자금 대출 2500만원 중 1800만원을 갚았지만, 대학원에 진학한 뒤 생활비를 대느라 마이너스통장을 쓰면서 700만원의 빚이 새로 생겼다. 3월초 결혼한 이씨는 신혼집으로 쓸 월세 보증금 때문에 버팀목대출 2100만원을 새로 받았다. 이씨는 “월급 200만원에서 절반 정도는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 절반은 거의 빚 갚는 데 쓰고 있다”며 “간신히 빚을 갚아나가며 생활을 하는 상황이라 결혼은 겨우 했지만 출산과 육아는 불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한영섭 소장은 “청년들의 직업 이행기가 늦어진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소득은 없고 지출만 있는 기간이 늘어난다는 것인데, 이럴 경우 주거를 비롯한 생활비가 대출과 부채로 이어지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된다”며 “청년을 위한 복지제도나 사회적 안전망은 부족하고, 취업 준비나 주거를 위한 비용은 매우 높고, 취직을 하더라도저임금 일자리에 내몰리는 상황이 청년부채를 늘리는 근본 원인”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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