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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아브라모비치는 결국 첼시를 떠나게 될까?

최근 영국 정부는 그의 비자 갱신을 거부했다.

  • 허완
  • 입력 2018.06.04 18:07
  • 수정 2018.06.04 18:15
리버풀의 엘-하지 디우프(왼쪽)과 첼시의 프랭크 램파드. 2003년 5월11일.
리버풀의 엘-하지 디우프(왼쪽)과 첼시의 프랭크 램파드. 2003년 5월11일. ⓒMatthew Ashton - EMPICS via Getty Images

2003년 5월 12일, 영국 런던 스탬퍼드 브리지에서는 첼시와 리버풀의 2002-2003 시즌 마지막 경기가 열렸다. 이 경기는 두 팀 모두에게 중요했다. 두 팀은 똑같이 승점 64점을 기록 중이었다. 이기는 팀이 리그 4위, 지는 팀이 리그 5위가 될 것이었다. 골득실에서 제법 앞서있던 첼시는 비기기만 해도 됐다.

그 때나 지금이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4위와 5위는 꽤 큰 차이가 있다. 1위부터 4위까지는 다음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 나갈 수 있다. 5위 팀은 그보다 한 단계 급이 떨어지는 유로파리그에 진출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급’은 곧 ‘돈’이기도 했다. BBC는 당시 이 경기를 “2000만파운드(약 300억원)짜리 경기”로 불렀다. 이기는 팀에게는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이 보장해주는 거액의 수입이 주어질 것이었다.

지금처럼 TV중계권료 수입이 구단의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던 그 시절, 챔피언스리그 진출은 상위권 구단들에게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그러나 특히 더 다급했던 쪽을 꼽자면 그건 의심의 여지 없이 홈팀 첼시였다.

 

‘1조5000억원짜리 골’

첼시는 2300만 파운드를 6주 내에 갚아야 했다. 그러나 갚을 방법은 없었다. 이미 다음 시즌 TV중계권료 수입을 담보로 잡은 상태였다. 당시 첼시 구단 CEO였던 트레버 버치는 경기 전 선수들에게 직접 당부했다. ”이 경기에서 패하면 너희들은 물론 구단에도 엄청난 경제적 타격이 있을 것이다.” 

선제골은 리버풀의 몫이었다. 전반 11분, 수비수 사미 히피아가 대니 머피의 프리킥을 헤더골로 연결시켰다. 그러나 리드는 오래가지 못했다. 2분 뒤, 마르셀 드사이의 헤더가 리버풀 골키퍼 예지 두덱의 오른쪽 골포스트를 맞고 리버풀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002-03 시즌 38라운드 경기에서 첼시 예스퍼 크론캬르가 역전골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고 있다. 2003년 5월11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002-03 시즌 38라운드 경기에서 첼시 예스퍼 크론캬르가 역전골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고 있다. 2003년 5월11일. ⓒMatthew Ashton - EMPICS via Getty Images

 

4만여명의 홈팀 팬들이 기다리던 결승골은 덴마크 출신 윙어 예스퍼 그론캬르에게서 나왔다. 26분, 리버풀 페널티박스 오른쪽에서 공을 이어 받은 그는 오른쪽 동료에게 패스하는 척 하더니 왼쪽으로 공을 툭 차넣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왼발로 절묘하게 감아찬 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그림 같은 골이었다.

그론캬르는 8년 뒤 인디펜던트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 모두는 경기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나는 우리 재정 상황에 대한 이야기들을 기억한다.” 이 매체는 이 골을 “10억파운드(약 1조5000억원)짜리 골”로 불렀다. 

가까스로 일단 위기를 넘기게 된 첼시 앞에 홀연히 구세주가 나타났다. 로만 아브라모비치였다. 그 전까지는 누구도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석유와 가스 업계에서 큰 돈을 번 러시아 억만장자라고 했다. 그는 첼시를 사고 싶어 했다. 그리고 ‘최대한 신속하게’ 사고 싶어 했다.

시즌이 끝난 후,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협상을 위한 미팅이 열렸다. 미팅은 15분 만에 끝났다. 1억4000만파운드(약 2100억원) 규모의 계약이 그 자리에서 성사된 것이다. 아브라모비치는 ”이 위대한 클럽의 더 큰 잠재력에 비춰볼 때 우리에게는 더 많은 것을 달성하기 위한 자원과 야망이 있다”는 포부를 밝혔다

 

″시베리아에서 온 수상쩍은 거물”

올리가르히(oligarch)는 옛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 등장한 신흥재벌들을 지칭하는 단어다. 이들은 수많은 국영기업이 민영화되는 과정에서 부를 쌓았다. 헐값에 인수한 알짜회사를 매각하면서 막대한 차익을 남겼다. 부패, 정치권력과의 결탁이 횡행했다. 이들이야말로 ‘자유시장’의 최대 수혜자였다. 

아브라모비치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조치로 민간사업의 길이 열리자 재빨리 기회를 포착했다. 값싼 러시아 석유를 사들여 해외에 팔아 수익을 냈다. 그의 나이 25세 때의 일이다. 러시아 정부가 국영기업 소유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며 무상배포한 바우처를 사들여 에너지기업 주식으로 바꾸기도 했다.

2016-17 시즌 선덜랜드와 첼시의 경기 종료 직후 첼시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기뻐하는 모습. 2017년 5월21일.
2016-17 시즌 선덜랜드와 첼시의 경기 종료 직후 첼시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기뻐하는 모습. 2017년 5월21일. ⓒBEN STANSALL via Getty Images

 

2004년 가디언은 아브라모비치의 프로필을 정리한 장문의 기사에서 ”러시아의 궁핍은 아브라모비치가 주식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적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느 올리가르히들과 마찬가지로 독점 국영기업이 민영화되는 과정에서 막대한 부를 거머쥐었다. 그 사례 중 하나는 다음과 같았다.

(...) 1995년 12월, 노야브리스크와 옴스크에 위치한 네 개의 석유 탐사, 시추, 정유, 유통 기업이 경매에 부쳐졌다. 이 업체들은 하나의 기업으로 합쳐져 시브네프트(Sibneft)가 될 것이었다. (중략) 옐친 대통령은 크렘린 내부자인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와 가까운 회사 NKF가 경매에 나온 시브네프트 지분 51%을 운영하도록 허가했다. 그러나 러시아를 비판해왔던 사람들은 가장 높은 금액을 써낸 유넥심뱅크가 51% 지분 응찰액으로 2억3000만파운드를 써냈음에도 이 매각을 담당했던 FNK, 즉 NKF가 이름만 바꾼 게 명백했던 이 회사가 3억3700만파운드짜리 자산을 불과 1억1700만파운드(약 1760억원)에 낙찰받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FNK를 상대로 한 법적 소송이 제기됐으나 유넥심뱅크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불만을 거둬들인 후 소송은 철회됐다.

그런 다음 FNK에는 베레조프스키의 또다른 계열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의 새로운 파트너, 로만 아브라모비치라는 이름의 29세의 오일 트레이더와 연관된 회사였다. (가디언 2004년 5월8일)

보리스 옐친의 뒤를 이어 블라디미르 푸틴이 권좌에 올랐다. 푸틴은 올리가르히 ‘개혁’에 나섰다. 아브라모비치는 발빠르게 처신했다. 그는 푸틴을 등에 업고 자신의 사업 파트너였던 베레조프스키의 시브네프트 지분을 포함해 그의 재산을 헐값에 넘겨 받았다. 재계 거물 베레조프스키는 도망치듯 영국으로 떠나야 했다. 

아브라모비치는 차곡차곡 매입한 시브네프트 지분 72.7%를 2005년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가즈프롬에 매각했다. 매각금액은 130억달러(약 13조9000억원)였다. 당시 러시아 역사상 최대규모의 인수합병이었다. 불투명한 경매 등으로 확보한 주식으로 10년 만에 엄청난 차익을 실현한 것. 이건 여러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당시 영국 언론은 아브라모비치의 등장을 경계했다. 그는 ”더러운 오일 계약들”로 부를 축적한 ”시베리아에서 온 수상쩍은 거물(Shadowy tycoon)”로 묘사됐다. 그러나 축구팬들은 그의 돈이 어디에서 왔는지 묻지 않았다. 첼시를 유럽축구 최정상으로 이끌기 위해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약속은 복음과도 같았다. 

약속대로 그는 압도적인 규모의 돈을 선수 이적료와 주급에 쏟아부었다. 중상위권을 오르내리던 첼시는 곧바로 유럽축구의 중심에 올라섰다. 수많은 우승컵이 뒤따랐다. 그가 지금까지 첼시에 투입한 돈은 11억7000만파운드(약 1조6800억원)로 추정된다. ‘돈으로 우승컵을 살 수는 없다’는 조롱 섞인 예측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아브라모비치는 왜 첼시를 인수했을까?

아브라모비치의 첼시는 잉글랜드 축구를, 나아가서는 유럽 축구의 지형을 바꿨다. 맨체스터시티에는 아랍에미리트 왕실의 돈이, 바다 건너 파리생제르망에는카타르 정부의 오일머니가 쏟아져 들어왔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억만장자들도 앞다퉈 유럽의 축구 구단을 사들였다. 유럽축구 ‘슈퍼리치 오너’ 시대의 시작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축구 구단 인수는 돈 되는 장사가 아니다. TV중계권료와 대회 우승상금, 프랜차이즈 제품 판매 등으로 올린 막대한 수입 꼭 그만큼의 돈이 매년 기록을 새로 쓰는 선수 영입 이적료, 덩달아 치솟는 주급, 훈련 시설 업그레이드 같은 투자 비용으로 나간다. 돈의 전쟁에서 패배하면 밀려나는 건 순식간이다.   

첼시 팬들이 내건 배너.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이름을 딴 것이다.
첼시 팬들이 내건 배너.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이름을 딴 것이다. ⓒMatthew Ashton via Getty Images

 

아브라모비치가 첼시를 인수한 이유를 두고는 해석이 분분하다. 가장 낭만적인 버전은 이렇다. 2003년 4월 영국 올드트래포드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맨체스터유나이티드 대 레알마드리드 경기를 보러 갔다가 그가 덜컥 축구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 그리고서는 그 해 여름 첼시를 인수했다는 줄거리다. 

덜 낭만적인 버전에 따르자면, 이건 서구 사회에서 ”소프트 파워”를 확보하려는 노력 중 하나였다. 맨체스터메트로폴리탄대 강사 폴 브래너건의 설명이다. 그는 2014 소치동계올림픽, 2018 월드컵 유치 등을 언급하며 이 모든 행위가 ”세계의 주목을 끌기 위한” 러시아의 광범위한 전략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다소 냉혹한 버전의 설명도 있다. 아브라모비치가 첼시 덕분에 ‘신분 세탁‘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런던에서 반(反)푸틴 운동을 벌여온 블라디미르 아슈르코프는 아브라모비치가 첼시 인수를 통해 소련 붕괴 직후의 혼란 속에서 부를 축적한 ‘수상쩍은 올리가르히’라는 이미지를 단숨에 씻어냈다고 지적했다.

2003년 6월, 첼시 매각 소식을 알리는 TV 뉴스 화면. 화면 속 남성은 첼시의 구단주였던 켄 베이츠.
2003년 6월, 첼시 매각 소식을 알리는 TV 뉴스 화면. 화면 속 남성은 첼시의 구단주였던 켄 베이츠. ⓒJohn Ingledew via Getty Images

 

첼시의 성공 덕분에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올리가르히 중 하나가 됐다. 그는 런던의 부촌 켄싱턴 팰리스 가든에 저택을 마련했고, 자신의 보잉 767 전용기를 타고 수시로 런던을 드나들었다. TV 중계화면에는 그가 스탬퍼드 브리지 귀빈석에 앉아있는 모습이 종종 잡혔다. 그는 그렇게 영국 사회에서 ‘시민권’을 얻었다.

아브라모비치에게 첼시는 일종의 보험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푸틴의 최측근 올리가르히로 꼽히며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푸틴 이후의 운명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 누리고 있는 특혜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권력의 향배에 따라 ‘줄타기’에 실패해 몰락해 간 수많은 올리가르히들이 그 증거다. 

아브라모비치의 사업 동료였던 베레조프스키도 그 중 하나다. 그는 영국 망명 이후 푸틴의 공개 비판자가 됐다. 아브라모비치와는 거액의 소송도 벌였다. 그는 망명 10년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자살로 발표됐으나 의문은 끊이지 않았다. KGB를 계승하는 연방보안국(FSB)에 의한 암살시도는 알려진 것만 두 번이었다.  

베레조프스키의 친구였던 알렉산드르 골드파브 리트비넨코정의재단(*) 이사장은 런던으로 몰려드는 러시아 올리가르히들의 돈을 ”영국 대중과 영국 주류 사회로의 입장권”으로 규정했다. 그들은 검은 돈에 대한 ”최대한의 정당성”을 얻으려 했을 뿐만 아니라, 안전한 재산 은닉처의 기반을 확보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아브라모비치는 꽤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가 구단주로 부임한 이래 첼시가 들어올린 15개의 우승 트로피는 어쩌면 그저 작은 보너스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 러시아 정부의 소행으로 드러난 악명 높은 ‘방사능 홍차’ 독살 사건 희생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의 이름을 딴 재단. 골드파브는 리트비넨코의 친구이기도 했다.

 

영국 정부의 ‘변심’

아브라모비치에게는 ‘Tier 1’ 투자자 비자가 발급됐다. 2008년부터 2015년 사이 700여명의 올리가르히들에게 이 비자가 주어졌다. 올리가르히들은 영국에 공장을 짓지 않았다. 대신 주로 언제든 되팔 수 있는 부동산에 돈을 묻어뒀다. 애초 영국 정부는 이들의 돈이 어디에서 왔는지 염격히 따져묻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이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다. 3월초 영국 소도시에서 발생한 이중스파이 독살 시도 사건의 배후로 러시아 정부가 지목되면서다. 영국 정부는 러시아 외교관을 대거 추방했고, 러시아 올리가르히들이 런던에 묻어둔 ‘검은 돈’을 타깃으로 삼으려 한다. 야당은 단호한 조치를 요구하며 정부를 거듭 압박하고 있다.  

ⓒJohn Sibley / Reuters

 

이런 상황에서 최근 아브라모비치의 영국 비자 갱신이 거부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강화된 비자 발급 규정이 꼽힌다. 2015년, 영국 정부는 투자금이 불법적인 돈으로 의심될 경우 비자 발급을 거부하는 새 규정을 도입했다. 반면 영국 정부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뒤늦게 행동에 나섰다는 평가도 있다. 

아브라모비치의 반응은 꽤 직설적이었다. 첼시 구단 측은 ”현재의 좋지 않은 투자 환경” 때문에 경기장 재개발 프로젝트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관중석 규모를 4만여석에서 6만석으로 늘리는 이 야심찬 계획에는 5억파운드(약 7150억원)가 투자될 예정이었다. 15년 동안 이어져 온 둘의 관계에 먹구름이 끼게 된 것이다.  

아브라모비치는 영국 비자 신청을 철회하고 이스라엘 국적을 취득했다. 이스라엘 여권으로 최대 6개월 까지는 무비자로 영국에 체류할 수 있게 됐지만, 취업은 허가되지 않는다. 그의 측근들은 비자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투자를 집행하기 어렵다는 말을 언론에 흘리고 있다. 그가 구단을 매각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아브라모비치는 결국 첼시를 떠나게 될까? 예측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상당수 팬들은 그가 계속 구단주로 남아 투자를 계속해주기를, 더 많은 우승 트로피를 가져다주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반면 전 첼시 CEO 트레버 버치는 ”(아브라모비치의)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구단) 안팎으로 엄청난 우려가 있다. 그러나 구단은 충분히 팔릴 수 있다. TV 중계권료 수입이 올라가는 상황에서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가치가 30억파운드 이상으로 평가된다면, 첼시는 15억파운드 정도는 될 것이고, (매물로서) 매우 매력적일 것이다.”  

 

* 참고문헌 : The Billionaires Club : The unstoppable rise of football’s super-rich owners (James Montague,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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