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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리뷰를 쓰기 위한 3가지 조건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전에 다니던 잡지사에서 리뷰 코너를 만들 때다. 왠지 잡지는 리뷰가 있어야 될 것 같으니 만들었던 것도 같다. 근데 이왕 한다면 좀 특별하고 싶었다. 내가 일하던 곳은 전자상거래 전문지. 단순하게 생각하면 사고 파는 것에 대한 잡지이며, 리뷰의 소재는 사고 파는 물건이다. 그럼 샵매거진의 리뷰라면 그 물건의 사용 경험이 아닌 구매 경험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에 닿았다.

대부분 독자는 기자가 그 물건을 사지 않고 리뷰를 쓴다는 사실을 대강 알고 있다. 블로그 맛집 후기처럼 모두가 알아서 걸러 보는 게 리뷰 기사다. 좋은 상품이라는 말과 그래서 이 상품을 사야 한다는 말은 완전히 다르니까. 적어도 내가 쓰는 리뷰는 후자, ‘그래서 이 상품을 사야 한다’를 훨씬 중요한 가치로 여겨야 했다.

네이버 블로그 맛집 후기를 볼 때 우리는 반쯤 걸러 듣는 필터가 자동으로 발동한다
네이버 블로그 맛집 후기를 볼 때 우리는 반쯤 걸러 듣는 필터가 자동으로 발동한다 ⓒNAVER

구매 경험에 대한 리뷰는 화자가 전면에 드러나야 했다. 이 상품을 산 이유를 밝히는 것은,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화자의 나이・성격・취향・환경 등을 알려주면서 이 물건을 왜 사야 했는지 말하는 것이다. 일종의 정당화. 이를 통해 ‘이런 사람은 이 물건을 사야 한다’는 메세지를 자연스럽게 담을 수 있었다. 이러면 광고 기사로 활용하기도 좋다.

위 기획을 적용하면 어떤 구조가 잡힌다. 리뷰가 인물(기자), 갈등(문제적 상황), 극복(리뷰 상품)이라는 서사의 요소가 담긴 글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내러티브를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종이 잡지의 특성에도 알맞고 리뷰 제품이 좀 짜쳐도 글빨로 커버칠 수 있어서 좋다(...). 지속가능성이야말로 특장점이다. 리뷰할 물건에 따라 똑같은 플롯에 인물과 갈등만 바꿔 끼우면 되니까.

″기자가 새로 이사한 집은 산 중턱 비탈길에 세워져 등본상 지하로 표기된다(B01호). 그래서인지 집이 습하다. 엄청 습하다. 아침에 보면 벽이랑 창문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다. 기자는 지하에도 살아보고 고시텔에도 있어봐서 아는데 집이 습하면 삶이 우울해진다. 축축하고 눅눅하고 꿉꿉한 느낌에 온종일 기분이 다운된다. 돈벌레도 나올 것 같고 곰팡이도 필 것 같다(경험담). 그래도 환기를 잘해주면 좀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좀처럼 나아지질 않는 것 같다. 알고 보니 올겨울은 실외 습도가 80~90%까지 올라가는 습한 겨울이라고. 집이 습하면 수건이 안 마른다. 이 눅눅하고 퀴퀴한 수건으로 말끔히 씻은 내 몸을 닦아야만 한다. 이게 제일 짜증 난다. 차라리 샤워를 안 하고 싶다.

그래서 전기건조대를 샀다.”

이것은 예전에 직접 쓴 전기 빨래건조대 리뷰 중 일부다. 이 건조대는 봉에 열선이 깔려서 전선을 꽂으면 뜨거워진다. 매력적인 상품이지만 아무래도 필수품은 아니고 가전제품 특성 상 수요층이 다소 적다. 앞선 기획이 없었다면 이 제품으로 기사 흐름을 잡기 힘들었을지 모르는데, 당시 난 반지하 월셋집으로 이사한 직후라 내가 처한 상황이 곧 건조대가 필요한 이유가 됐다. 꿉꿉한 촉감과 퀴퀴한 냄새로 한겨울 빨래가 두려운 자취생에게 추천하는 물건이다

위 리뷰의 인물, 갈등, 극복을 정리해보자.

 

  • 인물(화자): 반지하 월셋집 자취남
  • 갈등(니즈): 실내 습도가 높아서 빨래가 잘 마르지 않음
  • 극복(물건): 영국산 전기 빨래건조대 구매

 

갈등과 극복의 연관성이 낮은 것 같으면 약을 좀 치면 좋다. 난 ‘특히 수건이 마르지 않음. 덜 마른 수건으로 몸을 닦으면 찝찝해서 다시 샤워하고 싶어짐. 악순환의 반복. 제습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섬유가 상함’과 같은 갈등을 추가해 전기 건조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레이저 거리 측정기 리뷰, 헤어드라이어 리뷰 역시 이 기획에 맞춰 쓴 리뷰다.

 

좋은 기획의 조건 3가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세 가지다.

첫 번째. 매체 특성에 맞춘 기획이야말로 차별화한 콘텐츠 기획이다. 본 기획은 무엇보다 매체 중심적으로 고민한 결과다. 동시에 이런 콘텐츠가 늘어날수록 매체의 브랜드는 강력해진다. 특히, 종이 잡지는 ‘브랜드‘가 ‘좋은 기사’에 우선한다. 책을 사줘야 기사가 읽히니까.

두 번째. 지속가능한 기획일수록 좋다. 단발성 기획은 아무리 획기적이라도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 새 콘텐츠 제작을 위해서 매번 처음부터 기획을 다시 잡을 순 없다. 콘텐츠 제작자에게 시간은 금보다 값지다. 매체에서 질보다 양이 중요할 때는 의외로 매우 많다.

세 번째. 구조적으로, 체계적으로 기획하자. 놀라운 아이디어나 매력적인 소재가 떠오르는 경험은 상상만큼 많지 않다. 오히려 굉장히 적다. 무엇보다 내가 핸들링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이런 방법에 의존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위 기획은 사실 매체의 성격과 특성, 리뷰를 대하는 독자의 특성, 지속가능한 코너를 만들자는 목표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만든 빈 틀이다. 어쩌면 모든 기획은 좋은 틀을 만드는 것이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마지막이다. 이런 기획은 돈 잘 버는 매체 만드는 것과 큰 연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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