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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검은 돈' 묻어놓은 러시아 올리가르히들이 떨고 있다

런던은 오랫동안 이들에게 '천국'이었다.

  • 허완
  • 입력 2018.03.16 22:57
  • 수정 2018.03.16 23:01
ⓒJack Taylor via Getty Images

영국 소도시에서 발생한 이중스파이 독살 시도 의혹 사건을 둘러싸고 영국과 러시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영국주재 러시아 외교관을 대거 추방하는 한편, 추가 조치를 예고했다. 

1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런던에 ‘검은 돈’을 쌓아놓고 있는 러시아 신흥재벌 올리가르히가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다우닝스트리트 10번지(영국 총리 집무실)에서 몇 블록만 가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이너서클 멤버들이 소유한 화려한 자택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NYT는 런던이 올리가르히들의 재산 은닉처로 각광받아 온 사실을 소개하며 이렇게 적었다.

보도에 따르면, 영국 총리 집무실 근처에는 이고르 슈발로프 러시아 제1부총리 소유 기업 명의로 된 1600만달러(171억원)짜리 아파트가 있다.

영국 왕실 윌리엄 왕세손과 캐서린 미들턴 부부가 거주하는 켄싱턴궁 맞은편 ‘켄싱턴 팰리스 가든스’는 런던 최고 부촌으로 꼽힌다. 이곳에는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소유한 저택이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인 그는 잉글랜드 프로축구팀 첼시FC의 구단주로도 잘 알려져 있다. 

 

ⓒDominic Lipinski - PA Images via Getty Images

 

런던 신흥재벌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영국으로 자금을 옮기기 시작했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같은 조세회피처에 등록된 유령기업을 동원해 부동산을 사들인 것. 러시아 권력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재산을 빼내 런던으로 이주한 이들도 있고, 푸틴의 비호 아래 런던으로 자산을 빼돌린 경우도 있다. 

올리가르히들에게 런던은 합법적인 재산 은닉처로써 꽤 매력적인 곳이었다.

영국은 영국에 거주하는 범죄자를 인도하라는 러시아 정부의 요청을 거부하고 있으며, 영국 기관들은 부유한 해외 구매자들에게 관대한 편이었다. 부동산 등 자산 매입 자금 출처를 확인하도록 한 절차를 제대로 적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유럽개혁센터 외교정책 디렉터 이안 본드는 ”이것은 돈세탁 시스템의 취약한 부분이었다”고 말했다. ”수상한 해외 자산에 대해 충분히 질문이 제기되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들은 실제 소유자에 대해 해야 할 질문을 하지 않거나 아예 전혀 하지 않았다.”  

ⓒBloomberg via Getty Images

 

2015년 도이체방크가 러시아중앙은행, 영국중앙은행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부터 1290억달러(약 137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비밀스러운 해외 거래를 거쳐 영국으로 유입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NYT는 전했다. 이 중 상당수는 러시아에서 온 것이었다. 

자금이 몰려들면서 이들은 ‘런던그라드(Londongrad)‘로 알려진 모임을 형성하며 그 크기와 영향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일례로 2003년 아브라모비치는 첼시FC를 인수했고, KGB 출신 올리가르히 알렉산드르 레베데프는 자신의 아들과 함께 런던에서 오래된 일간지 중 하나인 ‘이브닝 스탠더드’의 지배주주가 됐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이들이 집권 여당인 보수당에 막대한 자금을 후원하며 영국 정치계에도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시작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Handout . / Reuters

 

그러나 상황이 달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날 메이 총리는 ”영국인과 주민들의 삶과 재산을 위협하는 데 쓰였다는 증거가 발견되면 러시아 국가 재산을 동결시키겠다”고 밝혔다. ”중대한 범죄와 비리를 저지른 엘리트들”을 수사당국이 추적할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 나라에 이런 사람들, 또는 그들의 돈이 있을 자리는 없다.”

메이 총리는 영국판 ‘마그니츠키 인권법’을 채택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마그니츠키법은 인권 침해 범죄를 자행한 인물들의 비자 발급을 중단하고 이들의 자산을 동결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제재법안이다.

미국에서 시행중인 이 법안은 러시아 정부의 부패 의혹을 추적하다가 체포된 세르게이 마그니츠키가 옥중에서 의문사 한 사건 관련자들을 겨냥하고 있다. 영국에서 비슷한 법안이 도입될 경우, 불법 행위가 드러난 러시아인들을 타깃으로 삼는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영국 정부는 자국 내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소유한 불법자산을 추적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의심스러운 인물로 지목되면 부동산 구입자금이 합법적 출처라는 점을 법정에서 입증해야 하며, 불법 행위에 연루된 자금으로 판명되면 정부가 자산을 동결하고 점유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Bloomberg via Getty Images

 

또 보리스 존슨 외무장관은 푸틴 측근 중 영국에 거주중인 인물들이 ‘반(反)부패’ 조치의 타깃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푸틴을 둘러싼 러시아 정부 관계자 및 기업인들에게는 꽤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미국 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 클리프 쿠프챈 회장은 ”애스턴(마틴)과 벤틀리와 호화 주택들을 빼앗고 그들의 자산을 동결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더 신경을 쓰게될 것”이라고 NYT에 말했다. 엄청난 변화는 아니더라도, 꿈쩍도 하지 않는 러시아의 현재 태도가 자국 엘리트 층의 동요로 일부 변할 수 있다는 것.

 일각에서는 러시아 부호들에 대한 자금 동결이 러시아에 사업적 이해관계를 보유한 영국 기업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NYT는 전했다. 일례로 영국 최대 석유기업 BP는 러시아 거대 에너지국영기업 로스네프트의 지분 19.75%를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가 ‘보복’할 경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반(反)푸틴, 반(反)부패 운동을 벌여온 영국 활동가 및 탐사보도 기자들은 영국에 거주하는 러시아 올리가르히에 대해 강력한 단속을 벌일 것을 오랫동안 요청해왔다. 

ⓒMikhail Svetlov via Getty Images

 

올리가르히들의 내부를 추적한 탐사 기록이 담긴 책 ‘런던그라드 : 돈을 들고 러시아에서 온 사람들’ 공동저자인 마크 홀링스워스는 NYT에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초호화 백화점) 해롯 인근 지역, (부촌) 이튼 스퀘어나 벨그레이브 스퀘어를 사랑한다. 물론 그들은 그곳에 살지 않는다. 돈을 보관해두고, 인정과 명성을 얻는 게 목적일 뿐이다. 영국 주류사회에서 인정 받는 것이다.” 

다만 회의적인 시각도 여전히 있다. 영국 정부가 더욱 과감한 조치를 취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다.

반푸틴 운동을 이끌고 있는 로만 보리소비치는 러시아 재벌들의 자산 동결까지는 할 생각이 없다는 점이 메이 총리의 연설에서 드러난다고 NYT에 말했다.

″이제 정부는 모든 무기(대응수단)를 쓸 수 있게 됐다. 총리는 이 중 어떤 것이든 쓸 수 있지만 이것들을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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