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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동산의 급행표, 그리고 카카오 택시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는 없다

오래 전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M. Sandel)이 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What Money Can’t Buy)’라는 책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시장의 논리가 적용되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거라는 환상을 갖고 있습니다.  철학자인 샌델(Sandel)은 이와 같은 경제학자들의 잘못된 믿음에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에 가격을 붙여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사회가 되는 것이 정말로 바람직한 일일까요. 예를 들어 사람의 신장, 간, 췌장, 안구에 가격표를 붙여 마음대로 사고 팔게 만들면 어떨까요? 또한 옛날의 노예제처럼 사람 그 자체를 거래의 대상으로 삼으면 어떻고요?

그 책에서 샌델(Sandel)은 가격을 붙여 거래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될 여러 가지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놀이동산의 급행표입니다. 놀이동산에 갔는데 롤러코스터 앞에 긴 줄이 늘어서 2시간이나 기다려야 내 차례가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급행표를 산 사람은 줄을 서지도 않고 맨 앞에서 끼어들 수 있다는 겁니다.

ⓒMartin Barraud via Getty Images

2시간을 기다린 여러분들 앞에 방금 거기에 온 한 사람이 끼어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 되겠습니까? 끼어들 권리를 정당하게 돈 주고 샀으니 시비거리가 될 이유가 없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놀이동산이 아니고 병원의 응급실이 그런 시스템으로 운영된다면 어떻겠습니까?

병원의 응급실에 VIP 전용 창구를 따로 만들어 비싼 돈을 낸 사람만 우선적으로 처치해 주는 상황을 상상해 보십시오. 돈 많은 사람들이 비싼 돈을 내고 좋은 서비스를 받는 게 배가 아파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시스템하에서 우리 같은 서민들이 이용하는 보통의 응급실 서비스는 틀림없이 악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런 결과가 빚어질 것은 뻔한 일 아니겠습니까?

며칠 전 카카오 택시가 즉시 배차나 우선 배차에 유료 서비스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발표를 듣는 순간 나는 샌델(Sandel)의 놀이동산 급행표를 머리에 떠올렸습니다. 택시를 남보다 앞서 잡을 수 있는 권리에 가격을 붙여 사고 판다는 아이디어니까요.

업체에서는 급하게 택시를 이용해야 할 사람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니 좋은 일 아니냐고 말합니다. 나 역시 정말로 급할 때는 ‘따블‘이나 ‘따따블’을 내더라도 택시를 잡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택시 우선 배정의 유로화는 택시요금에 웃돈을 붙이는 것을 시스템화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제도가 정착되면서 무슨 결과가 일어날지 상상해 보십시오. 웃돈을 내지 않고 택시 잡기는 점차 힘들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모두가 웃돈을 내고 택시를 잡게 되면 실질적으로 택시 요금이 오른 것이나 마찬가지인 결과가 빚어집니다.

만약 우선 배정을 위해 지불한 웃돈이 택시 운전자에게 모두 돌아간다면 나는 그나마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택시를 타면서 늘 그들의 어려운 삶에 대해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들은 터라 그들의 주머니를 조금이라도 두둑하게 만들어 준다는 데 굳이 꼬장을 부릴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아니고 업체도 그 중 상당 부분을 이윤으로 가져가려고 하는가 봅니다. 그 발표가 나오자 그 업체의 주식 가격이 반짝 오른 것을 보면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요.

만약 공식적으로 모든 택시 요금에 5천원을 할증해 받는다면 택시 잡기가 지금보다 훨씬 더 수월해질 겁니다. 구태여 카카오 택시 서비스를 유료화하지 않더라도 그 방법으로 택시 잡는 어려움을 해소시킬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쪽이 더욱 공평한 시스템이라고 믿습니다. 어려운 살림의 택시 운전자들에게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장점도 있구요. 

그런데 왜 그런 요금의 인상을 선뜻 실전에 옮기기 못할까요? 택시 요금 인상이 가져오는 여러가지 부작용 때문이 아닐까요? 당장 서민들의 생계비 부담이 늘어나는 문제가 생길 테고, 다른 대중교통 수단 요금도 들먹거릴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카카오택시 서비스의 유료화가 실질적인 택시요금 인상이란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기술혁신을 빌미로 공연히 업체의 배를 불리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 뻔합니다.

급하게 택시를 타야 할 사정이 있는 사람이 웃돈을 내고 택시를 우선적으로 배정 받는 것은 효율성의 측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급하게 타야 할 사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남보다 더 많은 돈을 갖고 있어 웃돈을 낼 용의를 갖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 경우에는 효율성의 측면에서 하등 긍정적 효과가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어차피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음식 맛이 좋기로 이름 난 레스토랑은 문 앞에서 오랜 시간을 줄서서 기다려야 비로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또한 좋은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려면 밤새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고도 하더군요.

이런 상황이 한 두 개가 아닌데, 이런 모든 상황에서 급행표를 도입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난 레스토랑 앞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방금 나타난 어떤 부자가 10만원을 내밀면서 먼저 들어가는 걸 보고 싶으십니까?  나는 경제학자지만 모두가 공평하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시스템이 훨씬 더 좋다고 믿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모든 것에 가격을 붙여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은 분명히 거래의 대상에서 제외시켜 놓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돈의 힘이 적용되지 않는 영역을 충분히 남겨 두어야만 비로소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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