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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린 선생한테 맞고 기절했다, 그리고 그건 지금 틀렸다

적어도 체벌은 더 이상 ‘사랑의 매’가 아니라 ‘폭력’이라는 인식이 당연해졌다

  • 권용득
  • 입력 2018.03.16 15:24
  • 수정 2018.03.16 15:38

″선생님한테 맞고 기절해 본 사람?”

지난 주말 친구 부부 가족이 우리 집으로 놀러왔다. 친구 부부에게는 두 딸이 있는데,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만나면 서로 어린 아이들을 돌보느라 반가울 겨를조차 없었다. 대화는 끊기기 일쑤였고, 아이들이 잠들 무렵이면 어른들이 먼저 곯아떨어지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제법 큰 아이들이 거실에서 어른들의 손길 없이도 잘 어울려 놀았다. 덕분에 어른들은 주방 식탁에서 모처럼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어쩌다 ‘학창시절 선생님한테 맞은 얘기’가 나왔다. 친구와 나는 학창시절 선생님들이 지금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문제가 됐을 거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손수 제작한 박달나무 몽둥이를 휘두르고 다니면서 학생들 머리를 수시로 때리던 선생님,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 아무나 죽사발을 만들어 ‘본보기’ 삼던 선생님, 자기 분에 못 이겨 학생에게 이단옆차기를 하던 선생님,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Peter Dazeley via Getty Images

 

선생님들은 학생을 주먹으로 때리고, 몽둥이로 때리고, 몽둥이가 없으면 밀걸레 자루로 때리고, 손에 잡히는 무엇이든 체벌의 도구로 동원했다. 그리고 선생님들의 그 모든 체벌은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용인됐다. ‘인격’이나 ‘인권’ 같은 잠꼬대는 윤리교과서 속에나 존재했다. 아니, 운 좋게 몽둥이로 엉덩이를 맞으면 그나마 ‘존중받고 있다’고 느꼈다. 선생님이 안경 끼던 학생의 안경을 벗기고 뺨을 때리면, 안경을 존중하는 건지 학생 인권을 존중하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남자 선생님만 체벌을 한 것도 아니었다. 몇몇 여자 선생님들의 체벌도 만만치 않았다. 중학교 때 지시봉이 부러질 때까지 내 머리를 때린 선생님과 고등학교 때 출석부 철심이 부러질 때까지 내 머리를 때린 선생님은 모두 여자 선생님이었다. 친구는 말했다. 

“다들 왜 그랬을까?”

“뭐가?”

“그 시절 남학교 선생들은 애들을 왜 그렇게까지 때렸을까?”

 

여고를 다녔던 아내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끼어들었다.

“얼씨구, 나도 맞아봤거든!”

아내는 체벌뿐만 아니라 성추행 경험도 있었고, 아내의 얘기는 좀처럼 멈출 생각이 없었다. 한번은 한 선생님이 아내의 바지를 벗겨 놓고 몽둥이로 엉덩이를 때려서(체벌+성추행 콤보) 장모님이 학교까지 찾아간 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돌아온 장모님은 오히려 아내를 야단쳤다. 선생님한테 맞을 짓을 하지 말라며 아내를 야단쳤고, 아내는 그 이후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은 어떻게든 숨겼다고 했다. 

반면 친구 부인은 우리 얘기를 전혀 다른 세계 얘기처럼 가만히 듣기만 했다. 경기도 안성 출신인 친구 부인은 아내보다 두 살 아래인데, 자신은 그런 체벌을 받거나 성추행을 당한 적이 없다고 했다.(참고로 친구와 나는 경상도 출신이고, 아내는 서울 출신이다.) 친구 부인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섣불리 일반화할 일은 아니다. 다시 말해 모든 선생님이 체벌과 성추행을 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친구와 아내와 내가 겪은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어쨌든 그날 ‘학창시절 선생님한테 맞은 얘기 열전’ 1위는 공교롭게도 나였다. 맞은 횟수로나, 맞은 강도로나, 이견 없이 내가 1위였다. 선생님한테 맞고 기절한 사람은 그 자리에 나밖에 없었으니까. 영광스러운 1위 소감 발표를 앞두고 거실에서 놀던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말했다.

 

“쟤들은 우리처럼 맞는 일은 없겠지?”

언제부터 ‘체벌 금지’가 명문화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학생을 때리는 선생님은 거의 없다. 오히려 이따금 학생이 선생님을 때리고, 학부모가 선생님을 때린다. 폭력을 행사한 쪽은 누구든 여론의 뭇매를 피할 수 없고, 적어도 체벌은 더 이상 ‘사랑의 매’가 아니라 ‘폭력’이라는 인식이 당연해졌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의 미투운동도 그 낡은 인식을 바로잡는 과정이 아닐까. 격려 차원에서 여직원의 어깨 정도는 동의 없이 주물러도 된다는 인식, 술자리 음담패설은 너그러이 양해받을 수 있다는 인식, 볼썽사나운 단톡방 대화는 표현의 자유라는 인식, 사생활이 문란해 보이는 여자는 건드려도 된다는 인식, 몸을 파는 여자는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인식, 이 역시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말하자면 지금의 미투운동은 그동안 남자들에게는 너무 당연했지만, 여자들에게는 부조리하기만 했던 여러 낡은 인식들을 바로잡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억울한 가해지목인이 있을 수도 있겠다. 이왕이면 그 억울함도 같이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피해당사자의 주체성을 침범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감과 연대는 필요하지만, ‘씻을 수 없는 상처’라는 말로 피해당사자의 수치심을 자극하며 피해당사자를 완벽한 피해자상에 박제하거나 억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얘기다.

 

ⓒpic_studio via Getty Images

그런데 선생님들의 체벌은 ‘체벌 금지’가 명문화되고 곧바로 사라졌을까. 돌이켜보면 선생님들의 체벌이 사라지는 과정도 순조롭지 않았다. 체벌이 없으면 학생 통제가 어렵다는 선생님도 있었고, 교권의 추락부터 걱정하던 선생님도 있었고, ‘더러워서 선생질 못해먹겠다’는 선생님도 있었다. ‘농담도 못 하는 무서운 세상’, ‘미투운동 무서워서 연애도 못하겠다’, ‘펜스룰’ 따위의 허튼소리들이 자연스레 겹친다. 미투운동도 여러 변곡점을 지날 수밖에 없고 순조로울 수 없다는 건, 불 보듯 뻔하다는 얘기다.

다만 이제는 나처럼 선생님한테 맞고 기절하는 학생은 없고, 학생을 때리는 선생님은 설 자리가 없다. 이 얘기는 이렇게 바꿔 말할 수 있겠다. 모든 남성이 성폭력 가해자는 아니지만, 낡은 인식을 버리지 못한 남성은 언제가 설 자리가 없다. 그 ‘언젠가’는 어차피 닥칠 미래고, 미투운동은 그 미래를 앞당길 뿐이다. 거부한다고 거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추가 : 거듭 강조하지만, 모든 선생님이 그랬던 건 아니다. 이 얘기로 그동안 학생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했던 훌륭한 선생님들이 찔리는 일은 부디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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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MeToo #학교 #체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