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자유한국당이 뜬금없이 '3.15 의거'를 기념하겠다고 했다

"문재인 독재정권에 맞서..."

  • 백승호
  • 입력 2018.03.15 18:37
  • 수정 2018.03.15 18:38

자유한국당은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홍보물을 올리며 “3.15 의거” 정신을 이어받아 문재인 독재정권에 맞서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좋지 않다. 그 이유는 바로 ‘3.15’의거가 자유한국당이 뿌리를 두고 있는 자유당의 부정선거에 반발해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3.15 의거의 간략한 배경을 살펴보면 이렇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은 헌법에 규정된 3선 금지조항을 고쳐 종신 집권을 꿈꾸었지만 이는 국회에서 부결된다. 하지만 이때 그 유명한 ‘사사오입’을 적용하며 부결을 번복하고 통과시켰다.

사사오입 개헌으로 이승만은 결국 1956년 3선에 성공한다. 이승만은 장기집권에 대한 비판을 막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국회에 제출해 통과시키고 전국 경찰의 주요 간부를 모두 자신의 사람으로 채우고 정치깡패를 동원에 야당의 선거운동을 방해하는 등 악랄한 행위를 계속했다.

그리고 1960년 3월 15일 제4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선출하는 날, 전국적인 유권자 조작, 투표권 강탈, 야당 인사 살상, 공개투표 강요, 야당투표참관인 축출, 부정개표 등을 자행하며 당선된다.

그리고 이 선거가 있었던 날 마산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의 실탄발포로 최소 8명이 숨지고 72명이 총상을 입는 사건이 벌어졌다. 시위는 일단 이날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4월 11일, 최루탄에 맞은 당시 16세의 마산상고생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발견되자 사람들은 다시 들고일어났다. 이승만은 이 시위에 대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고무되고 조종된 것”이라는 담화를 발표했고 이를 폭동으로 규정했다. 학생들과 시민들은 더욱더 분노했고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4월 19일에는 약 3만 명의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4.19 혁명이었다. 일주일 뒤 이승만은 하야했다. 시민들은 자신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몰아냈다.

재미있는 점은, 이승만 대통령을 당수로 한 자유당의 역사가 지금의 자유한국당으로까지 내려오고있다는 부분이다. 이승만의 자유당은 5.16 군사정변을 주도한 군부세력이 창당한 민주공화당으로 흡수된다.

민주공화당은 다시 전두환의 신군부 세력인 민주정의당으로 흡수되고 1990년에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3당이 합당하면서 민주자유당이 만들어진다. 민주당은 1995년 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신한국당은 한나라당으로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새누리당은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진다.

ⓒ뉴스1

자유한국당도 자신의 뿌리가 어디인지 잘 알고 있었다. 자유한국당은 자신의 당사에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의 사진을 걸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유한국당의 느닷없는 ‘3.15 의거 기념’이 의아할 수밖에 없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자유당 #이승만 #김영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