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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3월 15일 14시 34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3월 15일 14시 34분 KST

최장집의 인터뷰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지난 9일,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huffpost

중앙일보에 실린 최장집 명예교수의 인터뷰를 읽었다. 최 교수는 이 인터뷰에서 촛불집회로 인해 치러진 조기대선의 결과가 진보일색인 걸 근심하고, 대통령제의 폐단을 지적하며, 의회중심제를 예찬하고, 대통령의 개헌드라이브를 비판하며, 촛불정신을 헌법전문에 싣는 걸 단호하게 반대하고 있다.

진보 거두 최장집 “문 대통령 제왕적 아니지만, 구조적으로 제왕 될 위험”

나는 이렇게 그른 얘기들을, 이토록 자신있게 하는 최 교수를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최 교수의 발언들을 하나 하나 짚어 보며 반박할 필요를 느꼈던 건 그 때문이다.

 

뉴스1

조기대선의 결과 진보 일색의 환경이 조성됐고 이는 잠재적 위험이자 걱정의 대상이라는 최 교수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그렇다.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는데, 촛불집회는 여기까지가 좋은 포인트였다. 문제는 그 이후다. 보수 정당과 보수 세력이 붕괴하는 결과를 가져오면서 조기 대선으로 새 정부 출범했을 때 힘의 구조가 지나치게 불균형해졌다. 좋은 보수 세력과 협치해야 사려 깊게 정부를 운영할 수 있다. 진보 일색, 진보가 압도하는 환경은 잠재적 위험이자 걱정의 대상, 우려의 대상이다.”

나는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럼 최 교수는 대한민국을 지옥으로 만든 이명박근혜 정부 9년을 출산한 정치적 자궁인 지금의 자유한국당 등이 궤멸되지 않았어야 했다는 것인가? 최 교수는 지금 그걸 한탄하는 것인가? 좋은 보수 세력과의 협치는 맞는 말이고 옳은 소리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 협치할 좋은 보수세력이 존재하는가? 그게 누구인지 최 교수가 좀 지적해줬으면 좋겠다.

최 교수의 대통령제에 대한 극도의 반감과 의회중심제에 대한 지나친 애호도 현실적합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제어하는 분권형 개헌을 해야 한다. 대통령제는 입법부와 사법부가 대통령을 제대로 견제한다고 해도 여전히 대통령이 강하다. 가령 미국은 의회가 강하고, 정당도 제대로 정립돼 정치적 역할을 하며, 사법부도 강하다. 그런데도 대통령 권력을 견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트럼프 현상이 그 결과의 하나다. 한국은 입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사법부가 너무 취약하다. 정치학적 용어로 전제정(專制政·독재)화할 수 있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규모 촛불집회를 통해야만 겨우 대통령의 권력을 제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구조를 그냥 두고 4년 중임으로 바꾼다? 임기가 8년으로 연장되는 효과밖에 없다. 차라리 현행 5년 단임제가 더 낫다. ‘대통령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그 임기는 끝나게 돼 있다’는 믿음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온 1등 공신이다. 저는 여러 면에서 의회 중심제를 선호한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한 곳은 모두가 의회 중심주의를 택하고 있다. 더 민주주의에 가까운 제도다.”

이명박근혜가 저지른 온갖 만행과 패악질이 대통령제 때문일까? 아니다. 아니다. 세번 아니다. 대통령제는 아무런 죄가 없다. 최 교수는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통령제로 수렴될 수 밖에 없다는 전제에 강박적으로 매몰된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의 입법부가 대통령을 견제할 수 없을 만큼 약하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자유한국당 등의 야당이 단결해 몽니를 부리면 변변한 입법조차 어려운 게 현실 아닌가? 그리고 지금의 대한민국 사법부는 ‘사법의 정치화’를 우려할만큼 힘이 세지 않나?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고 입법부와 사법부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의무와 권한을 적정히 행사한다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근심할 까닭이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이명박근혜 시대에 보였던 대통령의 입법 및 사법에 대한 우위는 헌법과 법률을 무시해 권한을 남용했던 대통령과 그런 대통령에게 기꺼이 유착한 입법부 및 사법부 구성원들의 잘못이지,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지금 자한당 등 야당들이 보이는 행태를 보면서도 최 교수가 의회중심제 운운하는 한가한 소리를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한편 대통령이 개헌드라이브를 건 건 개헌을 약속했던 야당들이 모르쇠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그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 국회가 개헌논의를 주도하면 대통령이 왜 개헌 드라이브를 걸겠는가? 선후를 이렇게 혼동하면 곤란하다.

촛불정신을 헌법전문에 넣으면 안 된다는 최 교수의 정신 세계를 이해하는 건 어렵다. 최 교수는 촛불시위에 보편성이 없다고 말하며 ”보수고 진보고 누구나 수용할 수 있는 원리가 들어가야지 쟁점이 되는 사건을 나열할 필요가 없다.”고 일갈한다. 최 교수는 촛불시위가 보편성이 없다고 말하지만 촛불시위는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구한 평화적 혁명으로 세계가 상찬하고 있다. 촛불시위에는 국민주권, 평화적 권력 교체 등의 보편성이 내재한다. 최 교수만 그걸 모르는 것 같다. 하긴 최 교수에게 촛불시위는 ”쟁점이 되는 사건”에 불과하다.

최 교수가 한 말 중에 새길 말은 비례대표제 위주의 선거제도 개편 밖에 없는 것 같다.

최 교수의 주장은 최대한 선해하더라도 서구이론에 한국현실(이렇게 말하면 박정희의 유신헌법도 당시엔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강변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을 난폭하게 우겨넣는 지적 만용에 다름 아니다. 거장의 몰락이 안쓰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