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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3월 14일 16시 5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3월 14일 16시 57분 KST

자신있는 삶을 원한다면!

열심히 실패하십시오

huffpost

난 언제나 자신감이 넘친다. 오만이나 거만 혹은 버릇없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내 행동이나 결정은 거침없어 보일 때가 많다. 나를 좋게 봐주는 사람들은 두려움 없어 보이는 나의 자신감의 비결을 물어오기도 한다.

어릴 적 나는 겁이 많은 아이였다. 롤러코스터처럼 많은 어린아이들이 무서워하는 놀이기구는 물론이고 놀이터의 흔한 그네만 타도 나의 얼굴에 조건반사로 나타나는 온통 겁에 질렸다는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단단한 우리 속에 갇힌 동물원의 맹수를 보는 것도 TV 동물의 세계를 보는 것도 무서웠지만 그 비슷한 물컹물컹한 장난감을 만지는 것도 내겐 큰 용기가 필요한 도전이었다. 재미있는 건 그 정도로 겁 많던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건 내가 겁먹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되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교육철학에 근거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겐 용기 있고 자신감 넘치는 캐릭터로 보여야만 했다. 또래들이 웃으면서 타는 놀이기구는 내 속사정과는 상관없이 일단 타야했고 무서운 이야기도 불 꺼진 깜깜한 방에서 아무렇지 않게 동생들에게 들려줘야 했다.

 

Imgorthand via Getty Images

물론 완전범죄는 불가능한지라 가족 앨범 속엔 아직도 겁에 질린 채 별것 아닌 기구를 타는 어린 나의 모습이 증거사진으로 버젓이 남아있고 귀신 이야기라도 한 날이면 며칠 밤을 꼬박 새우거나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학급대표로 발표를 할 때도 무대 위에서 노래하거나 악기를 연주할 때도 어린 나는 떨지 않았다기보다는 떨지 않아 보이려 노력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자신감이라는 자기최면이 반복되고 억지 용기의 경험이 쌓여가면서 내가 조금씩 진짜 자신감을 알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 번에 겁쟁이의 탈을 벗을 수는 없었지만 웃으면서 탈 수 있는 놀이기구의 수는 늘어갔고 내 어색한 용기 있는 표정도 조금씩 자연스러움을 표현해 가고 있었다.

시력을 잃은 언젠가부터의 나도 아주 어릴 적 그때의 모습과 마음을 많은 부분 닮아있었던 것 같다. 할 수 있다고 부르짖고 할 수 있는 척 했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정말로 듣기 싫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척 해야 했고 그게 도전이라고 불릴 때 기뻤다.

중고등학교 시절 선생님께서 좌우명을 물으시면 언제나 ‘하면 된다’라고 대답했지만 그것 또한 내게 거는 자기최면이었던 것 같다. 공부도 운동도 혼자 걷는 것도 당장 전 같지는 않았지만 잘 할 수 있게 보여야 했다. 어릴 적 나의 겁먹은 표정이 내 가짜용기를 만천하에 드러냈던 것처럼 내 시도가 계속될수록 내가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어린 나의 자신감이 경험의 반복 속에서 진짜로 변해갔던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척 했던 것들도 조금씩 진짜 할 수 있는 것들로 변해가고 있었다.

30년 이상 살면서 내 두려움은 많은 부분 자신감이 되었고 20년 넘게 보이지 않는 세상을 살면서 불가능은 가능의 방향으로 그 영역을 변화시켜왔다. 그렇지만 아직 가보지 않은 미래의 시간은 내게 접해보지 못한 또 다른 두려움과 할 수 없음의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때마다 겁 많은 나의 성격과 기능 상실한 나의 눈은 다시금 나의 억지 용기와 어설픈 성취를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 역할을 여전히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전과 다를 수 있는 것은 실패하거나 이루지 못했을 때도 여유 있는 웃음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난 부족한 내 성격과 완전치 못한 내 몸으로 한 번에 이룰 수 있는 것은 매우 적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그 시도와 경험은 반복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온전히 내 것이 될 것이라는 진리를 알고 있기에 실패하더라도 진짜로 여유로울 수 있는 자신감의 미소를 지을 수 있다.

난 오늘 스스로 머리를 다듬고 왁스를 바르는 또 하나의 도전을 시작했다.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올리고 배운 대로 적당한 왁스를 바르고 40분이 넘는 출근길을 지나 당당히 학교에 도착했다. 동료선생님들의 웃음 참는 소리를 듣고 상황이 조금 이상해진 것을 느꼈을 때에서야 내 머리가 의도와는 달리 머털도사 코스프레를 만들어 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하철과 버스에서 나를 본 많은 사람들은 아침 출근길에 큰 웃음을 선물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동료 선생님들에게도 크게 웃어도 된다고 했다. 나도 크게 웃었다.

실패의 모양은 같지만 받아들이는 여유의 모양은 크게 다를 수 있다. 살면서 주어지는 수많은 실패들은 감사하게도 내게 진정한 자신감의 미소를 선물해 주었다. 내일 나의 머리는 또 어떤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를 만들어낼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시도하고 또 여유 있게 웃을 것이다.

언젠가 그럴듯한 헤어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음을 알아서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마저도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신감임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감을 원하신다면 열심히 실패하십시오. 그리고 크게 웃으십시오. 당신은 누군가 이야기하는 성공에 닿기 전에 자신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