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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중동 평화에 먹구름을 몰고 올 것이다

더 넓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 허완
  • 입력 2018.03.14 18:20
  • 수정 2018.04.19 14:27
ⓒAlex Wong via Getty Images

″이란 정권은 우리나라를 파괴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대통령이 왜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는 불가해한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새 국무장관으로 지명한 마이크 폼페이오 CIA국장은 하원의원 시절,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주도한 이란 핵협상을 비판하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국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정상회담에 대비해 자신의 의중을 잘 이해하는 폼페이오를 국무장관으로 내정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꽤 합리적인 분석이긴 하지만, 그것 만으로 폼페이오 지명 이유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더 넓게 들여다보면, 폼페이오 지명은 미국의 중동정책 및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역대 미국 정부가 수십년 동안 이어왔던 정책 기조를 거침없이 흔들어왔던 트럼프 대통령과 ”케미”가 맞는 인물이기 때문.  

4선 하원의원 출신인 폼페이오는 공화당 내에서도 ‘매파’로 꼽혀온 인물이다. 그는 군사개입으로 이란 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팔레스타인을 비난하는 한편 친이스라엘 성향을 보여왔다. 

또 폼페이오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충실히 이행할 인물로 꼽힌다. 전임자인 렉스 틸러슨이 국무부 안팎에서 여러 비판을 받긴 했지만, 적어도 트럼프 대통령의 입김을 적절히 차단하며 균형을 잡아왔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과는 대비되는 점이다.  

ⓒJIM WATSON via Getty Images

 

이란

폼페이오는 이란을 ”살인 경찰 국가”로 지칭하며 이란을 테러집단과 비슷하게 취급했던 인물이다. 그는 군사개입, 즉 전쟁으로 이란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혔고, ”전투기 출격 2000번 이내로도 이란 핵 시설을 파괴할 수 있다”고도 말한 적이 있다

그가 2015년 오바마 정부 시절 타결된 역사적인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맹렬하게 비난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나는 세계 최대 테러리즘 후원국과 맺은 이 재앙적인 합의가 파기되기를 고대한다.” 트럼프 당선 직후, 폼페이오는 트위터에 이렇게 적었다. 

이란 핵합의는 미국 만의 합의가 아니었다. 당시 미국은 나머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과 독일, 유럽연합(EU)을 설득해 이 합의에 참여시켰다. 

틸러슨은 이란 핵합의를 파기하지 않도록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 합의를 ”최악의 협정”으로 규정하며 탈퇴를 위협했다. 지난해 10월에는 핵합의 인증을 거부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틸러슨 해임에 대해 언급하며 ”나는 이것(이란 핵합의)이 끔찍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이게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 우리 생각이 똑같지 않았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문제에 대한 의견차가 해임 사유 중 하나였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12일, 합의에 참여했던 유럽 국가들에게 ”이란 핵합의의 끔찍한 하자를 수정”하는 데 동의할 것을 촉구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대이란 제재 해제를 연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했다.

이란 핵합의에 따라 미국은 90일마다 이란의 핵합의 준수 여부를 판단해 인증해야 한다. 만약 인증하지 않으면 미국 의회는 이란에 대한 제재를 재개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가디언은 ”이란 핵합의가 (국무장관) 교체의 희생양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다만 한 전직 미국정부 관계자는 로이터에 ”폼페이오가 대이란 매파 성향을 보이긴 했지만 합의가 파기되는 걸 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전망했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을 비롯한 트럼프 정부의 고위 안보 측근들은 이란 핵합의 파기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국제사회와 맺은 협정을 트럼프 정부가 일방적으로 파기할 경우, 곧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을 북한에 좋지 않은 신호를 보내게 될 가능성도 있다. 

ⓒCarlos Barria / Reuters

 

이스라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말 느닷없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대사관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고 선언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열지 않았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것이다. 

이 발표는 이스라엘을 뺀 모든 중동 국가들의 반발을 불렀다. 예루살렘의 수도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유엔유럽연합도 트럼프 정부의 결정을 규탄했다. 팔레스타인 등에서는 거대한 반미시위가 벌어졌다.

그동안 미국은 중동 평화협상을 중재하는 입장이었다. 특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는 국제사회와 함께 ‘2국가 해법’을 지지해왔다. 지난 20년 동안 역대 모든 미국 대통령들이 고수해왔던 원칙이다. 

트럼프의 ‘예루살렘 선언’으로 갈등이 고조되자 수습에 나선 건 바로 틸러슨이었다. 그는 대사관 이전이 당장 실행되기는 어렵다며 속도 조절에 나섰고, 아랍 국가들을 돌면서 설득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 대사관을 5월에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고 선언해버렸다. 틸러슨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틸러슨의 뒤를 잇게 될 폼페이오는 ‘친이스라엘 인사’로 꼽혀왔다. 그의 반(反)이란·이슬람 성향이 잘 알려진 덕분이다.

폼페이오는 하원의원이던 2015년, 이스라엘을 방문해 베냐민 네타냐후 대통령을 만났다. 회동 이후 그는 ”이란의 핵무기 취득을 막으려는 네타냐후의 노력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존경스러우며, 깊이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폼페이오가 틸러슨를 대신해 국무장관을 맡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던 지난 12월, ‘매파’ 중동 애널리스트 톰 그로스는 폼페이오가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친-이스라엘 미국 국무장관”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동안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중재자를 자임하며 중동 국가들을 어르고 달래왔던 미국이 노골적으로 이스라엘 편에 선다면, 중동 평화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Bloomberg via Getty Images

 

사우디와 카타르

그밖에도 틸러슨은 지난해 여름 ‘카타르 단교 사태’와 이에 대한 트럼프의 대응으로 촉발된 위기를 수습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왔다. 당시 트럼프는 사우디 편을 들며 카타르를 대놓고 비난했다.

그러나 카타르에는 이 지역을 관장하는 핵심 미군기지들이 있다. 사우디가 전통적인 미국의 우방국가이긴 하지만, 카타르 역시 군사적으로 미국에게 꽤 중요한 국가라는 얘기다.   

결국 글로벌 석유회사 엑손모빌 CEO 출신인 틸러슨은 그동안 쌓아 온 중동 인맥을 활용해 중동 지역을 돌며 중재에 나서야만 했다. 매티스 국방장관과 힘을 모아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고 카타르를 달랬던 것도 바로 틸러슨이었다.

반면 폼페이오는 노골적으로 사우디를 편애하는 ”이란혐오자(Iranophobe)”라고 카타르대 교수 후안 콜은 말한다. 그에 따르면, 폼페이오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이란에 맞서 힘을 합치길 원한다면, 이건 좋은 일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카타르는 배제되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폼페이오의 등장이 트럼프 정부 외교의 가장 큰 문제 하나는 해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틸러슨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가 대통령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믿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그 문제 말이다. 

트럼프는 마침내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고, 자신의 구상을 적극적으로 시행으로 옮길 국무장관을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이게 꼭 긍정적인 신호는 아닐 수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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