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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가 왜 하필 지금 터졌는지' 전문가들이 답했다

"할리우드 운동이 갑자기 '한국판 미투'가 된 게 아니다"

  • 박수진
  • 입력 2018.03.10 14:06
  • 수정 2018.03.10 14:08
ⓒJUNG YEON-JE via Getty Images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사실을 알림으로써 더 큰 상처를 받거나, 자신의 고백이 힘없이 묻히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직간접적 경험을 통해 학습한 두려움일 것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이들이 용기를 내 미투를 선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의 용기에 보여준 사회의 ‘응답’이 미투 운동의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내 편이 되어줄까? 불이익이 없을까? 제대로 처벌은 될까?’ 박윤진 여성노동법률센지원센터 노무사는 ”확신의 부재가 참고 넘어가는 이유”라며 ”과거에도 성범죄와 그 증언이 있었지만 조직과 사회가 보여주는 응답의 수준이 이전과는 다르리란 인식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도 ”미투 확산은 내 얘기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예전보다 조성됐다는 판단이 있어 가능했다” ”서지현 검사에 대한 엄청난 응원과 지지는 다음 폭로자들에게 힘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돌출된 운동이 아니다

  

성폭력은 명백한 범죄이며 피해를 당한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부끄러운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 미투의 토양이 조성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상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1980년대부터 꾸준하게 이어져 온 법제도의 정비와 교육이 사고에 스며들면서 우리의 통념이 변화한 결과 미투 운동을 수용할 만한 기반이 만들어졌다”고 분석했다.

젠더감수성, 즉 젠더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문제를 인식하는 반응체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도 ”미국 할리우드발 운동이 2018년 갑자기 상륙한 것이 아니라 2016년 이후 이어져 온 문단·종교계 미투에 이어 검찰 내 성폭력이 촉매제 역할을 하면서 미투 운동을 가속화한 것”이라고 봤다.

윤김 교수는 ”강간 문화의 폭로가 가능하려면 피해 여성이 성추행과 성폭력을 피해로 인식해야 하는데, 가부장적 사회에선 ‘처신을 잘 못한 탓’으로 주지 받아왔다”며 “2015년 이후 페미니즘의 급격한 대중화로 피해자가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임을 인식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서지현 검사는 어떻게 촉매제가 됐나

 

″미투 운동이 굉장히 폭발적으로 번지는 것은 그만큼 피해자가 응축돼왔다는 의미”라고 박 노무사는 짚었다.

송 사무처장 역시 ”그동안 성폭력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누적된 역사를 봐야 한다”고 했다. 여성가족부 ‘전국 성폭력 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가 스스로 신고하는 비율은 2016년 1.9%에 불과했다.

송 처장은 ”신고율이 낮은 이유는 사법체계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리란 기대가 낮기 때문”이라며 ”또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무고로 피해자가 역공을 당하는 사례가 쌓이면서 피해자들이 폭로 밖에 방법이 없다고 느꼈을 수 있다”고 밝혔다.

혹자는 ‘피해를 당했으면 경찰에 신고하고 법정에서 싸우면 되지 왜 모든 사람이 다 알게 하느냐‘고 한다. 윤김 교수는 강간의 성립 기준이 성관계에 ‘동의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저항했는지(항거)’인 점, 강간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는 점 등을 사법체계의 한계로 지목한다.

그는 내부고발자를 용인하지 않는 조직문화와 성폭력 피해를 호소할 수 있는 조직 내 소통체계가 미비한 점도 그동안 피해자들의 문제제기를 억눌러온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피해를 밝히는 데 조직에서 고립·퇴출될 각오가 필요했단 말이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는 어떻게 미투 운동의 도화선이 됐을까. 이상화 교수는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피해자로 자신을 드러냈다는 상징성과 효과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특히 명백한 기준으로 사회정의에 어긋나는 것을 판단해야 하는 사법영역에서 발생했다는 점 때문에, 피해자에서 유발 책임을 찾아내려는 통념에 여지를 주지 않는 상징적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이상화 교수는 ”우리 사회 젠더 감수성이 변화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미투 운동은 어마어마한 뿌리를 갖고 있는 통념 체계가 붕괴, 해체되고 있다는 하나의 시그널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정미례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진정한 변화와 혁신이 시작되고 있다”면서도 ”사회가 개인의 용기에 화답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계속 개인의 용기에 맡길 수는 없다. ‘너도 폭로해라’ ‘용기내라’가 아니라 시스템이 바뀌어야 더 안전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윤진 노무사 역시 ”성폭력 예방교육에 가면 의사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사실 말을 하기 어렵다”며 ”피해자에게 용기를 내라고 하기보다 법적·제도적으로 조직에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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