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8년 03월 09일 12시 01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3월 09일 12시 01분 KST

그는 세상의 모든 아름답고 고귀한 독한년들처럼 훌륭하게 살아남았다

마리안느 페이스풀

huffpost

이건 독을 삼킨 목소리군. 마리안느 페이스풀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었을 때 나는 중얼거렸다. 그를 처음으로 알게된 건 몇년전 개봉한 <이리나 팜>이라는 영화 덕분이다.

Irina Palm 2007

마리안느 페이스풀이 연기하는 노년의 아줌마는 손자의 수술 경비를 얻기위해 런던 소호의 섹스숍에 취직한다. 벽에 난 구멍을 통해 삐져나온 남자의 성기를 마스터베이션해주는 댓가는 주당 6백 파운드. 꽤 짭짤하다. 게다가 그의 손에는 어떤 마법이 붙은 것인지 동종업계에서는 ‘천상의 오른손 이리나’로 불리우게 되며, 그를 모셔오기 위해 경쟁까지 벌어진다.

<이리나 팜>은 감동적인 소극이다. 그러나 예순이 넘은 가수이자 여배우 마리안느 페이스풀에게는 거의 소름끼치는 모험이었을게다. 60년대 런던 음악계의 ‘천상의 목소리’였던 페이스풀은 실재로 소호 뒷골목의 노숙자로 살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대학교수 아버지와 오스트리아-헝가리계 남작 가문의 외동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페이스풀은 롤링스톤즈가 작곡한 <As Tears Go By>로 당대 최고의 여가수 중 하나가 됐다. 팝의 스타덤에 오른 그는 장 뤽 고다르의 <메이드 인 U.S.A>에 카메오로 출연하고, 전설적인 미남 알랭 들롱과 함께 심금을 울리는 싸구려 로맨스 <모터사이클을 탄 소녀>를 찍었고, 토니 리처드슨의 <햄릿>에서는 모든 여배우들이 꿈꾸는 오필리아로 분했다. 60년대 팝과 영화계의 공주였던 페이스풀은, 맙소사, 절정의 젊음에서 독을 들이마시고 말았다. 록의 악동 믹 재거라는 독이었다.

Marianne Faithfull

사랑은 비극이 됐다. 믹 재거의 바람끼와 헤로인 중독으로 어린 페이스풀은 만신창이가 됐다. 결정적으로 대중이 등을 돌린 건 (영국산 초콜렛바) ‘마스바’에 얽힌 소문 때문이었다. 그룹 롤링스톤즈의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드의 집에 경찰이 마약을 단속하기 위해 들이닥쳤고, 페이스풀은 나체로 모피만 두르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괴소문이 터져나왔다. 믹 재거가 페이스풀의 그곳에 꽂힌 마스바를 먹고 있었다는 소문. 믹 재거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활동을 재개했지만 페이스풀의 경력은 그걸로 완전히 끝이났다. 믹 재거에게서 쫓겨난 그는 <이리나 팜>의 매기처럼 돈 한푼 없이 소호의 거리로 쫓겨났다.

Mick Jagger

대체 이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절정을 구가하던 스타가 대중으로부터 완벽하게 잊혀진 채 2년간 마약중독자 노숙자로 살아가는 일이 어떻게 벌어졌던걸까. 믹 재거는 뭘 했던가. 페이스풀의 가족은? 어쨌거나 그의 음악을 사랑하던 그 많은 팬들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말인가. 어쩌면 그건 60년대의 흥청거리는 런던에서만 가능한 비극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성에게만 가혹한 비극이었을 것이다.

60년대의 런던은 마약이었다. 그 압도적으로 무시무시한 괴물은 소녀들을 집어삼켜 명성과 쾌락에 중독시켜버린 뒤 비열하게 내뱉었다. 17살의 나이로 스타가 된 페이스풀로서는 세상의 차가운 섭리를 알 도리가 없었을게다. 그는 회고한다. ”믹 재거는 절 구원해주러 온 신처럼 보였어요”. 믹 재거는 신이 아니었다. 명성이라는 독이었다.

60년대와 70년대초 페이스풀의 역경은 앤디 워홀에게 버림받은 에디 세즈윅의 그것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세즈윅은 죽고 페이스풀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2년동안 소호의 홈리스로 산 페이스풀은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을 비롯한 몇몇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인생의 나락에서 기어올라왔고, 펑크록이 군림하던 79년의 런던에서 재기 앨범 <Broken English>를 발표했다.

Marianne Faithfull Broken English

속삭이듯 사랑 노래를 부르던 소녀가수는 없었다. 페이스풀의 목소리는 ”그동안 마신 위스키와 피워 댄 줄담배의 효력으로(동시에 아마도 마약의 효력으로)” 걸걸하고 허스키한 떨림만을 토해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그의 독을 삼킨 목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펑크의 시대와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펑크의 정신은 누구든지 할 수 있다는겁니다. 부자거나 멋지지 않아도 괜찮아요. 펑크의 정신 덕분에 죽는일만 남았다고 생각한 제가 앨범을 낼 용기를 가질 수 있었을테지요”. 흥청거리던 런던의 뮤즈는 펑크의 대모로 돌아왔고, 주름살과 거친 목소리는 세월을 달랬다.

사실 마리안느 페이스풀은 어린시절부터 지역극장의 세익스피어 극단에서 연기를 배우던 배우 지망생이었다. 믹 재거와 코카인을 뒤섞은 록의 세계에 뛰어들지 않았더라면 그는 지금쯤 존경받는 영국 배우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주디 덴치나 매기 스미스의 옆에 서 있을 정도의 여배우 말이다. 조금 늦었지만 마리안느 페이스풀은 <이리나 팜>으로 마침내 소녀의 꿈을 근사하게 늙은 오른손 위에 건져냈다.

만약 그가 <이리나 팜>에 출연하지 않았더라면? 나에게 페이스풀은 <모터 사이클을 탄 소녀>에서 할리-데이비슨을 몰며 알랭 들롱과 사랑을 나누는 영국 소녀로 영원히 기억되었을것이다. 그 영화에서도 페이스풀은 알랭 들롱이라는 독을 들이마신 뒤 오토바이 사고로 죽는다. 스크린 안에서도 밖에서도 마리안느 페이스풀은 독을 들이마시는 비극적인 청춘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는 훌륭하게 살아남았다. 세상의 모든 아름답고 고귀한 독한년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