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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수치 높은데, 정부는 후쿠시마로 돌아가라 해요”

후쿠시마는 여전히 오염돼있다

그들은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7년 전인 2011년 3월11일 일본 도호쿠지역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원전 사고는 그들 삶의 뿌리를 뽑아 내동댕이쳤다.

고향 후쿠시마에서 나고 자라 살아온유카리와 다나카(가명)는 일본 정부가 피난지역으로 지정하지 않은 지역에 살았지만, 방사능 피해가 두려워 자발적으로 피난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른바 ‘자주피난민’들이다. 일본 정부는 ‘피난민 귀환 장려 정책’을 추진하면서, 지난해 3월부터 자주피난민에게 후쿠시마원전 사고 뒤 실시했던 주택 무상 제공을 중단했다. 자주피난민에 대한 정부 지원책이 사실상 모두 끊긴 뒤에도 피난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유카리와 다나카를 지난달 27일 도쿄에서 만났다. 두 명은 모두 후쿠시마현 최대 도시 이와키시 출신 아이 엄마들이다. 피난 때부터 7년이 흐른 현재의 상황까지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각각 정리했다.

ⓒToru Hanai / Reuters

 ■ 유카리(45)

“사고 전에는 원자력발전소가 안전하고 친환경적이고 깨끗한 시설이라고 생각했어요. 후쿠시마원전 주변에는 공원도 있고 잘 꾸며놓은 시설들이 많이 있었어요. 지역민들을 상대로 하는 행사가 많이 열리고 아이들이 놀만한 장소도 많아서, 코흘리개였던 아이들을 데리고도 자주 갔을 정도였어요. 피난은 후쿠시마원전 사고가 일어난 2011년 3월11일 닷새 뒤인 3월16일에 떠나왔어요.

먼저 피난 간 친구들이 전화를 걸어와 울면서 ‘도망가’ ‘도망가’라고 했지만 나는 왜 우느냐 정부가 괜찮다고 하지 않느냐고 말했지요. 정부에서 실내에 있으면 괜찮다고 한 말을 믿었죠. 피난 오기 전에 집에 물이 끊겨서 정부가 따로 마련한 급수대에 가서 줄을 서서 물을 받아왔는데, 그때는 집밖이 방사선에 오염되어 있다는 것조차 몰랐어요. 지금 생각하면 분하죠. 하지만 점점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버지가 친구에게 전화해보니, 아버지의 친구도 이미 피난을 갔더라고요. 결국 택시를 타고 도치기현으로 갔다가, 도치기현에서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왔어요. 택시비만 4~5만엔 정도 나온 것 같아요. 젊은 시절에 도쿄에서 일한 적이 있기 때문에 도쿄로 왔어요. 다른 곳은 전혀 아는 데가 없어서 생각할 수 없었죠. 아이는 2년 정도 충격으로 밤마다 울었어요. 이와키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아이가 없다면 돌아갔을 거에요.

이와키에 있는 집은 3~4년 전에 제염(방사성 오염 물질 제거 작업)을 해서 이제는 괜찮겠지라고도 한때 생각했어요. 그런데 결정적으로 지난해 지인들이 우리 집 마당 흙의 방사능 오염도를 측정했더니 1㎡당 7만㏃(베크렐)이 나왔어요. (병원 같은 방사선 취급 시설에서 불필요한 피폭을 줄이기 위해서 출입을 제한하는 방사선관리구역 설정 기준이 1㎡당 4만㏃이다.) 후쿠시마 집에서 지금도 살고 계신 아버지는 원래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셨는데, 사고 뒤 정원에 있던 나무를 모두 베어버렸어요. 지금 경제적으로 매우 곤란하지만 아이 건강이 걱정되기 때문에 돌아갈 수가 없어요.

정부가 (후쿠시마) 부흥을 추진하는 것은 정말 좋다고 생각하고 전혀 반대하지 않아요.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귀환만을) 강조하고 있어요. 피난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권리도 있는데. 피난자에 대한 정책은 없지 않나요.”

가수인 유카리는 원전 반대 집회 등에서 후쿠시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노래를 부르고 있다. “푸른 바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보여요. 모래톱에 쓰인 많은 메시지/아 잊을 수 없는 고향/아 시간이 흘러 가슴이 뜨거워지네 지금도” 그가 부른 ‘지금도’라는 노래의 한 부분이다.

 

ⓒToru Hanai / Reuters

 

■ 다나카(가명·47)

“실명은 밝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주피난민에 대한 공격이 아이들에게까지 가는 경우가 있어요. 후쿠시마원전사고가 일어난 3월11일 저녁에 라디오에서 ‘만일을 위해서 원전 반경 3㎞안에 사는 사람들은 피난하라’는 방송이 흘러나왔어요. 우리 집은 원전에서 38㎞ 떨어져 있지만 피난 지역이 점점 확대될 수 있고 나중에는 사람이 한꺼번에 몰릴 것이고 지진해일(쓰나미)로 통행 가능한 도로도 적었기 탡문에 미리 피난을 가야겠다고 결심했죠.

(원전사고 다음날인) 3월12일 아침에 자동차를 타고 피난을 나왔죠. 통행 가능한 도로가 별로 없어서 19시간이 걸려서 도쿄에 도착했어요. 가는 길에 처음 불빛을 본 게 사이타마현에 있던 파칭코 가게였던게 지금도 기억에 남아요. 부모님이 도쿄 근처에 살고 계셔서 일단 도쿄로 왔어요. 사고 한달 뒤 음식물 방사능을 측정할 수 있는 계측기도 100만엔을 주고 사서 측정하기 시작했어요. 아직은 돌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할 뿐 평생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니에요. 후쿠시마에는 아직 집이 있고 대출도 남았는데, 집을 누구에게 임대하지도 못하고 있죠.

우리 집도 마당 흙의 방사선 오염도를 재보니 1㎡당 4만㏃이상 방사능이 검출됐어요. 제염도 이와키시가 원래 목표한 것의 20% 정도 밖에 진척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정부는 원전 사고와 질병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도 않으니, 귀환해서 병을 얻으면 구제를 받기도 어렵죠. 피난소 생활을 할 때 보통 수준이 아닌 엄청난 코피를 흘리는 아이들을 여러 명 봤어요 그보다 더 문제라고 생각하는 점은 세대를 넘어서 피해를 낳을 수 있는 유전자 변형 우려에요. 원전 사고 자주피난자는 실제로는 살고 있던 지역이 방사능에 오염되는 피해를 입었는데도 피해를 입은 장소로 돌아가라는 압력을 정부에서 받고 있어요. (정부가 제공한) 피난 주택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여있어요.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정부가 사용하는 자주피난이라는 말에는 위화감을 느껴요. 자주피난은 원래 태풍이나 수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을 경우에 피난지시 대상 지역에서 조금 벗어난 지역이라도 고령자나 몸이 불편한 사람이 만일을 위해서 피난하는 경우에 쓰이는 단어에요. 하지만 원전 사고의 경우에는 방사능 피해가 수해처럼 확실한 경계선이 없어요. 현실적으로 방사능 오염이 있고 피폭 위험이 있는데도 정치적 판단으로 피난지시가 내려지지 않은 지역이 많이 나왔어요. 피해를 덮기 위한 부흥은 원하지 않아요. 사람들의 건강과 마음에 상처를 낸다면 그런 부흥을 추진할 가치가 있는지 다시 한번 묻고 싶어요. 정부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었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후쿠시마의) 푸른 하늘이 그리워요.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면 언젠가는 돌아가고 싶어요.”

관련기사: 후쿠시마 원전 사고 7년…태우고 묻어도 끝없는 방사능 폐기물의 산

다나카는 이날 자주피난민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서 국회 의원 여러명과 면담을 신청한 용지를 들고 나왔다. 대부분의 국회의원들과는 면담이 이뤄졌지만 자민당 중진 의원 한명은 면담 신청서에 “거절한다”는 회신을 적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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