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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친 토크] “더이상은 못참아” 대학 내 혐오 고발자를 아시나요?

주로 교내 커뮤니티 익명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이다.

ⓒ'연세대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 페이지

‘미투’ 폭로가 터져나오는 속도와 범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많은 여성들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일상적 성폭력에 노출돼 있다는 의미다. 성폭력의 뿌리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적 사회 문화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일상적 여성혐오가 가장 만연해 있는 공간은 단연 온라인이다. 익명성의 뒤에 숨어 혐오 표현을 쏟아낸다. 특히 문제의 온라인 공간이 오프라인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면, 혐오 표현에 노출된 사람의 충격은 더욱 크다. 3월 개강을 맞은 대학가에서는 비상식적인 혐오를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서다.

■ ‘어때? 보니까 부끄럽지?’ 저열한 성 인식 고발

지난달 23일 페이스북에는 ‘연세대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연남사)’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개설됐다. 연세대 학생들의 제보를 받아 운영된다는 이 페이지는 연세대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성폭력 발언 등 각종 혐오 발언을 모아 게시하며,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혐오 글에는 “역시 깨어있는 연세인이다”, “자기애가 남다르다”, “본인의 기형적 욕구에 솔직한 모습이 아름답다” 등의 반어법적인 멘트도 달려 있다. 만들어진 지 13일밖에 되지 않은 이 페이지는 팔로워가 2400명을 넘어서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 ‘이화여대생들이 연세대를 폄훼하기 위해 만든 페이지’라는 음모론을 거론하며 또 다른 여성 혐포적 인식을 드러냈지만, 이 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는 이들은 연세대 학생들이다. 페이지 개설자는 왜 이런 내부 폭로에 나섰을까? 페이스북 메신저로 인터뷰를 시도했다.

[한겨레] 페이지를 만들게 된 구체적 계기가 있나요?

[연남사 페북 운영자] 보시다시피 대학 익명 커뮤니티들의 상태가 매우 심각합니다. 교내 성폭력 사건 피해자에 대한 신상털이, 여학생 외모 품평, 여대에 대한 조롱 등 차마 보기 힘들 정도예요. 하지만 (연대생 인증 과정을 거쳐야 하는) 폐쇄적 공간이기 때문에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아 자정 작용 없이 갈수록 심해지기만 해요. 글을 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어느날 저희 할머니께서 “쌀벌레를 잡으려면, 쌀을 볕에 널어야 된다”고 하시는 거예요. 자기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이게 비판받을 만한 거란 걸 느끼면 좀 절제하지 않을까 싶어서 페이지를 만들었어요.

연남사에 폭로되는 글들은 주로 ‘연세대 에브리타임’과 ‘세연넷’이라는 커뮤니티 익명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이다. 에브리타임은 수강신청 전에 시간표를 미리 짜서 수강신청 계획을 세우는 어플리케이션으로 대학생들의 필수앱이다. 학교 인증을 거쳐야 해당 학교의 커뮤니티를 이용할 수 있는데, 익명게시판이 활발하다고 한다. 세연넷 역시 2009년 총학생회의 커뮤니케이션 사업 일환으로 만들어진 커뮤니티로 취업 정보를 얻기 위해 많은 학생들이 가입하고 있다. 이 대학 커뮤니티의 익명 게시판에는 도대체 어떤 종류의 글들이 올라오는 걸까. 연남사에 폭로된 글을 소개한다.

ⓒ'연세대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 페이지

“성매매를 금지시키면 성범죄가 늘어난다. 업소 가는 누군가의 남편을 막으면 누군가의 딸이 강간당할 수 있다.”

“82년생 김지영처럼 글쓰면 내 주변 남자들로 9X년생 XXX글 수두룩하게 쓸 자신있다. 남자들은 일 하다가 다치고 죽어도 XX년생 XXX 이딴 책 쓰면서 남자가 차별받는 사회라고 선동질 안 하거든요.”

“솔직히 일반인 야동이 상업 야동보다 좋다. (일반인 야동) 내가 유포한 것도 아니니 범죄도 아니고 떠벌리는 것도 아니니 피해준 것도 없다. 떳떳하게 계속 일반인 야동 볼거다. 여자들아 잘 봐라. 평범한 남자들 다 이렇게 생각한다. 니 남친 남사친 오빠들 생각이다.”

“몰카 보는게 뭐가 문제냐. 왜 공범이란 단어를 쓰냐. 성폭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어디를 봐도 문제되는 게 없다.”

“소아성애는 2차 성징이 끝나지 않은 여아에 대해 느끼는 성욕인데, 16살 이상 즉 여고생은 2차 성징이 끝났기 때문에 소아성애가 아니며, 정상적인 사랑이다.”

[한겨레] 문제성 발언이긴 한데, 일부의 글을 너무 과도하게 일반화하는 건 아닐까요?

[연남사] 남학우들 중에 ‘일반화를 당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다’라고 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어요. 익명성 뒤에 숨어 타인의 인권을 유린하는 건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들이 갖는 고질적 문제죠. 하지만 대학 커뮤니티는 학교 인증 뒤에 글을 쓸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글쓴이가 매일 나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공부하거나 생활하는 옆 학우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보통의 커뮤니티는 ‘이상한 사람 다 있네’ 하고 넘길 수 있지만, ‘ㅇ여대생은 우리 학교 남학생들의 X집(여성 성기 비하)이다’ 같은 글을 쓰는 학생이 나와 같은 공간에 있다고 생각하면 불안과 절망은 어마어마하죠. 심지어 이런 글이 ‘추천’을 많이 받아 인기글로 올라오는 경우도 잦아요. 일부 학생들의 과격한 일탈이라고 보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 만은 아닌거죠.

■ 일상화된 혐오 폭로…유사 페이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페이지는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팔로워 수가 급속도로 늘고 있을 뿐 아니라 연남사를 시작으로 서울대·고려대 등 25개 대학에서 ‘○○○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이라는 페이지를 만들었다.

[한겨레] 취지대로 글을 보고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나요?

[연남사] 남성분들이 제보를 해오기도 해요. 그동안 그런 글을 볼 때마다 뭐라 하고 싶었는데 뭐라 했다가 신고를 당해 게시판 권한이 막힐까봐 못했다’라는 글과 함께 문제적 글을 보내와요. 여학우들은 1~2년 전의 글을 제보하기도 해요. 대체로 ‘볼 때마다 너무 화가 났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어 일단 캡처해 가지고 있었다’라면서 제보해주죠. 그동안 많은 학우들이 교내 익명 커뮤니티의 행태에 오랫동안 참고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특히 최근 며칠은 연남사 페이지가 ‘이대생들이 우리 학교 욕 먹이려고 만든 페이지다’라는 글을 많이 올라와요. 이런 얼토당토 않은 글이 공감을 받고 있는 걸 보고 잠시 절망했습니다. 페이지 운영자는 연세대생이거든요.

연남사 페이지는 최근 이어지고 있는 ‘미투 운동’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 운영자 역시 지금의 미투 운동을 보며 힘을 얻었다고 밝혔다.

[한겨레] 미투 운동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나요?

[연남사] 저희는 저희의 신상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의 신상도 드러나지 않는 글을 고발하는 거예요. 미투운동의 간절함에는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미투 운동을 보면서 말하고 알리면 무언가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힘을 받았습니다. 미투 폭로에 나선 피해자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정치 공작으로 모는 양상은 대학 내에서도 매우 흔하죠. 그래서 미투 캠페인을 향한 일부 부정적 반응들이 낯설지 않아요. 학생 사회는 사회의 축소판입니다. 미투가 더 확산되고 힘을 얻어서 사회가 좀 바뀌었으면 하는 마음에 적극 응원하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먼저 시작된 미투 운동은 고발을 넘어 여권 신장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히잡 의무 착용에 저항하기 위해 수요일마다 흰색 스카프를 쓰는 ‘하얀 수요일’ 운동을 비롯해 월가에서는 여성 임금차별 문제를 지적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성폭력 문제를 뿌리뽑기 위해선 가부장제와 여성 혐오 문화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학생들의 연대는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까. 혐오에 맞선 학생들의 목소리가 이제 모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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