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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안 쓸 수 없는 글 #metoo

음모론을 내세우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huffpost

다른 글을 쓰는 중이었지만, 쓸 수가 없었다. 쓰던 글을 잠시 내려놓고 올라오는 글을 쓸 수밖에. 그간 나는 내가 경험한 성폭력을 증언해왔다.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 대학원, 문화기획, 학생운동, 연애 관계, 길거리. 머물렀던 자리를 기억하는 일은 내가 겪은 성폭력을 기억하는 일과 같았다. 아무리 털어내도 끝없게 느껴질 정도로 나에게는 원치 않는 말과 몸의 부대낌이 삼십 년의 시간만큼 쌓여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 운동권 내의 성폭력을 실토했을 때 느꼈던 해방감을 기억한다. 이후 내 몸에서 일어났던 불쾌한 일들을 털어내듯 기록해왔다.

#METOO 운동이 한창이다. 그간 웬만한 일들은 말해왔기 때문에 더 보탤 것이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안희정 지사의 성폭력을 증언하는 비서의 인터뷰를 보노라니, 제대로 말해지지 않은 글들이 떠오른다. 성폭력이 특정 ‘괴물’이 저지르는 예외의 사건이 아니라 주위에서 흔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계속 증언을 해왔지만, 정작 폭력을 행사했던 권력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특정해서 말하지 못했다. 특히 상대가 소위 ‘진보적’ 인사의 경우에는 더욱 밝히기 어려웠다. 지금도 미투로 지목된 몇몇 인사들을 옹호하며 “그분이 얼마나 좋은 분인데”,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며 반응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신뢰를 한 몸에 받는 권력자가 행동한 폭력을 증언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두려운 일인지 알 것 같아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증언에 마음이 쓰인다.

ⓒUlf Wittrock via Getty Images

나에게 가장 큰 환멸감을 주었던 사건은 동생 승희가 만난 어느 ‘싸튀충(임신시켜 놓고 도망간 남자)’ 사건이다. 승희가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뒤, 2주일도 안 돼서 잠수를 탔던 남자친구는 소수자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를 꿈꾸는 사람이었다. 그의 부모 역시 잘 알려진 진보적 학자였다. 승희가 당시 애인의 무책임한 행동을 공론화하겠다고 말하자 그의 부모는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승희를 협박했다. ‘성노동은 불법이야. 너의 치욕스러운 성노동 경험을 폭로할거야.’ 협박은 통했다. ‘순결한 피해자’만이 인정되는 사회에서 성노동 경험이 있는 피해자라니, 사람들의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 뻔했다. ‘문란한’ 여자와 저명하고 ‘선량한’ 그들이 공방을 벌인다면, 피해자는 후자가 될 거로 생각했다. 아무리 정당한 피해호소라고 해도 어떤 폭로는 내 무덤을 파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승희와 나는 입을 닫았다. 여전히 그들은 번지르르한 글로 언론 지면을 채우고, 정의롭게 활동하고 있다.

글과 말로 사람을 짐작하지 않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글과 사람을 분리해서 보라는 누군가의 조언이 틀렸다고 믿었던 시기에 나는 아름다운 글을 쓴 사람을 만났다가 상처받길 반복했다. 세월호의 아픔을 글로 기록하던 어떤 작가는 무례한 태도로 나와 주위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고, 마음속 멘토로 삼았던 작가가 상습적으로 아내 폭력과 아내 강간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읽었던 글들을 토해내고 싶었다. 강단에서 세계 평화를 외치던 그는 나를 볼 때마다 스킨십을 요구했고, 청년 문화운동을 통해 사회를 바꾸겠다고 호기롭게 말하던 그는 자신의 사무실로 나를 불러 바지를 벗기려 했다. 사건 이후에도 계속된 그들의 ‘정의로운’ 말과 행동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가르침을 주었다. 어떤 급진적인 이념과 사상을 말해도, 자신의 권력을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 누구나 언제든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미투 운동 때문에 삼성 비리와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가려지고 있고, 심지어 진보의 분열을 초래한다며 거대한 ‘음모론’을 내세우고 있다. 내가 소위 진보마초들에게 온라인에서 인신공격을 당할 때, 함께 학생 운동했던 선배는 진지하게 이런 조언을 했다. “쟤네들 왠지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거 같지 않아. 배후가 있을지도 몰라.” 선배는 진보마초의 문화를 비판하는 내가 진보마초에게 욕먹는 이유가 그들이 누군가의 조정을 받는 거라고 진심으로 믿는 듯했다. 운동권이, 나아가 이 사회 전체가 성평등 감수성이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힘든 차에 선배의 새로운 음모론을 듣자니 화가 나서, 선배는 자유로운가요? 라고 묻고 싶었다. ‘지금 중요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미투 같은 걸로 다 가려? 이거 정말 음모 아니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코미디가 아니라 진심이기에 더욱 절망적이다.

곳곳의 피해증언에 ‘그렇게 당하고도 왜 그만두지 않았느냐’ ‘왜 참고 있었느냐’ ‘불쌍해서 어떡해’라는 반응도 익숙하다. 성폭력을 당했다고 피해자가 당장 직장을 그만두어야 한다거나 여성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으니 인생 끝났다는 시선은 불편하다. 곳곳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을 밝히는 일은 다른 폭력 사건이 그렇듯, 폭력을 당한 사람이 자신의 피해를 호소하고, 가해자에 정당한 처벌을 요구하는 과정이다. 또한, 성폭력은 성욕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이기에 ‘여성은 피해자, 남성은 가해자’라는 고정관념은 지독한 편견이다. 나는 여성 교수에게 지속해서 성추행을 당한 남성 대학원생의 호소를 들은 적이 있고, 남성에게 강간당해서 괴로움을 호소하는 남성 피해자를 보았다. 그들은 기존 성폭력의 도식에서 벗어나 있기에 더욱 호소할 곳 없어 외로워했다. 성폭력은 여성의 순결을 앗아가는 행위가 아니라, 한 사람의 자기 몸의 결정권을 침해하는 폭력 행위이다.

왜 어떤 폭력은 사소한 마찰에도 경찰서행이 망설여지지 않는데, 왜 어떤 폭력은 그러지 못할까. 왜 피해자는 경찰에 기대할 수 없다고 믿게 된 걸까. 길에서 자동차 접촉 사고가 나도 보험회사와 경찰을 통해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고, 길거리 취객에게 맞을 때도 “잘됐다, 깽 값 좀 벌어보자”라고 말할 수 있는데, 왜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를 당하고도 깽 값은커녕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자책하는 걸까. 호소할 곳 없어 끙끙 앓고만 있을까.

최근, 한 여성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등산하던 중 자신의 뒷모습을 몰래 촬영한 고등학교 남학생을 현장에서 붙잡아 경찰서에 갔는데, 경찰은 물론 자신의 어머니까지도 남학생의 미래를 걱정하더라는 것이다. 경찰도 그냥 좋게 넘어가라는 식으로 그녀를 타일렀고, 어쩔 수 없이 합의했다고 한다. 반성문을 쓴 고등학생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 그녀는 운동하러 나가는 것도 꺼려지고 일상 유지가 힘들다고 호소했다. 자꾸 남성 혐오증이 생길 것 같다고도 했다. 가해자의 미래는 걱정하면서 피해자의 구체적인 현실은 염려하지 않는 모습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폭력은 권력에 따라 배치되고, 우열을 가른다. 부모가 자식을 때리고 욕하는 건 양육이고, 자식이 그런 부모에게 저항하면 패륜이라 불린다. 어린 시절 엄마가 바람나 집을 나가 상처가 있다고 호소하는 남성은 여성을 살해할만한 충분한 근거를 부여받고, 무수한 가부장의 폭력은 ‘기본값’으로 여겨진다. 남성이 여성에게 성적 농담을 던지거나 술자리에서 술을 따르게 시키는 일은 문화가 되고, 그 문화에 딴지 거는 여성은 분위기를 망치는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도로에서 외제차와 부딪칠까 두려워하는 사람이 집에서는 아내와 아이들을 사정없이 때리고, 이웃에게 다정한 사람이 반려동물을 학대하기도 한다. 미투 운동은 개인을 악마화하기 위해 벌어지는 운동이 아니라 이처럼 불평등한 폭력의 기준을 바꾸기 위해 벌어지는 운동이다. 폭력을 당했을 때, 피해자가 법과 사회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법과 인식과 문화를 개선하라는 요구이다.

나에게 음모론을 말하던 선배에게 묻고 싶다. 선배, 요즘의 흐름도 음모로 보이나요? 선배는 혹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다고 확신하고 있나요?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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