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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거의 모든 패를 냈다. 이제 공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이것은 아마도 역사적인 순간일 것이다.

  • 허완
  • 입력 2018.03.06 21:36
  • 수정 2018.03.07 10:12
ⓒSTR via Getty Images

이것은 아마도 역사적인 순간일 것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6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으로 보낸 특별사절단과의 회동에서 미국이 요구했던 대화 전제조건을 거의 다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밝히며 ”비핵화 문제 협의 및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용의를 표명”했다는 부분이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겠다고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왔다. 핵무기는 미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자위적이고 정당한 수단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도 없고, 협상 의제도 아니라는 논리였다.

지난해 유엔총회 연설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핵 보유는 자위적 조치”이며 ”최종 목표는 미국과 힘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한 것에서도 단적으로 나타난다.

반면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 또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말해왔다. 양측이 근본적으로 충돌해왔던 지점이다.

따라서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밝히며 이 문제를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건 중요한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미국이 요구하는 일체의 대화 전제조건을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KCNA KCNA / Reuters

 

특히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 목표는 선대의 유훈”이라며 ”선대의 유훈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고 정 실장은 전했다. 비록 레토릭일 뿐이라 하더라도, 한층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특사단 방북 전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만 보이더라도 성공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북미 대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의 전향적 입장을 표명하도록 북한을 설득하는 게 관건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특사단이 들고 온 합의문에 담긴 내용은 그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북미관계 정상화”를 언급한 것도 진전된 입장으로 평가된다. 북한과 미국이 공개적으로 ‘말폭탄’을 주고 받으며 전쟁 위협을 고조시켰던 게 불과 몇 개월 전이다.

ⓒBloomberg via Getty Images

 

북한은 또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북측은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도발을 재개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명확히” 했다. 이 부분 역시 트럼프 정부가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던 것 중 하나다.

또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대해서는 김 위원장이 “4월부터 예년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며 ”한반도 정세가 안정으로 진입하면 한미훈련이 조절될 수 있을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정 실장이 밝혔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훈련 중단을 요구해왔던 북한으로서는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것으로 볼 수 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북한은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더 미룰 수는 없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에 불만을 나타낸 바 있다. 

ⓒANDREW CABALLERO-REYNOLDS via Getty Images

 

이렇게 된 이상 미국으로서는 일단 북한과의 대화를 시작하지 않을 마땅한 이유가 없는 상황이 됐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지난 연말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하기도 했지만 곧 이 말을 주워 담았다. 이후 북한이 비핵화 의지와 이를 위한 ‘신뢰할 만한 조치’를 보여야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기존 입장으로 돌아갔다. 백악관도 비핵화 약속과 핵·미사일 시험발사 중단을 대화 조건으로 제시해왔다.

다만 북미 대화가 성사될 경우, 미국이 어느 수준까지 북한의 요구를 수용할 것인지는 또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북한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하였다”고 특사단은 전했다. 북한이 내건 일종의 핵포기 전제조건이다. 

‘군사적 위협 해소’는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 같은 소극적 요구도 될 수 있고, 주한미군 철수 같은 보다 과감한 요구를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미국이 선뜻 수용하기 쉽지 않은 내용들이다.

‘체제보장’에는 각종 대북제재 및 압박 조치 철회, 관계 회복, 국제사회 내 지위 인정 같은 것들이 포함될 수 있다. 북한 정권의 인권침해와 잔혹성을 부각시켜왔던 미국으로서는 그동안의 대북 정책 기조를 완전히 전환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이를 대가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면, 이를 어떻게 확인하고 검증할 것인지에 대한 다소 복잡한 문제도 뒤따른다. 

ⓒKCNA KCNA / Reuters

 

미국이 북한이 내놓은 제안에 당장 어떻게 응답할 지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그동안 ‘최대 압박‘이라는 강경한 기조를 유지해왔던 트럼프 정부 안팎에서도 ‘새로운 대화 국면에 따라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 정부가 그동안 긴밀하게 미국과 소통해왔다는 점도 참고할 만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대화가 성사되는 데 있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압박’ 정책의 공이 컸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발표 직후 정의용 실장은 기자들에게 ”그 내용을 여러분께 다 발표할 수는 없지만, 미국에 전달할 북한 입장을 저희가 별도로 추가로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물론 대화를 해봐야 좀 더 정확하게 말씀을 드릴 수 있지만, 미북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이 조성돼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특별사절단의 방북 결과 발표 직후, 남측 특사단의 방북 소식을 전한 기사를 리트윗하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지켜볼 것”이라고 적었다.

이후 한 시간쯤 뒤에는 ”북한과의 대화에 있어 진전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북한이 제시한) 거짓 희망일 수도 있지만, 미국은 어떤 방향이든 단단히 준비가 되어있다”는 트윗을 올렸다.

다음날 스웨덴 스페탄 뢰프벤 총리와 정상회담 뒤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제안에 ”진정성이 있다”고 본다며 ”이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무부 대변인 헤더 노어트는 브리핑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단계라고 본다”며 ”(곧 워싱턴을 방문해 회담 결과를 브리핑 할) 한국과 앉아 다음 단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다만 꽤 의미 있는 첫 걸음이 떼어졌다는 점은 분명해보인다. 몇 개월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 업데이트 : 2018년 3월7일 / 트럼프 대통령, 미국 국무부 입장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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