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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3월 06일 16시 1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3월 06일 16시 17분 KST

동갑내기 닮은 꼴 라이벌, 김연아 VS 아사다 마오

[신들의 전쟁, 세상을 뒤흔든 스포츠 라이벌①]

huffpost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감 속에 눈길조차 애써 외면했다. 팽팽한 긴장감만이 빙상장을 감쌀 뿐이었다. 숙명의 라이벌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그들이 생애 최고의 라이벌 대결을 펼친 무대는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이다. 결전을 하루 앞둔 2010년 2월 23일(이하 한국시간)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 콜리시움 아이스링크는 차가운 빙판만큼 라이벌 간에 싸늘함이 감돌았다.

둘의 신경전은 선수시절 내내 이어졌다. 2007년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아사다가 도쿄체육관에서 훈련하던 중이었다. 이때 김연아가 체육관에 모습을 나타냈고 이에 아사다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김연아에 맞서 ‘필살기’를 연습하던 중이었던 아사다는 극도의 보안 유지를 위해 훈련을 중단했다. 그녀는 이 대회 석 달 전이던 2006년 12월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김연아에게 패배한 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 명예회복을 위해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약 3개월간 ‘숨바꼭질 연습’을 하고 있었다. 아사다가 새 프로그램을 보이면 곧바로 상대(김연아) 코치진도 분석에 돌입해 그 이상의 기술을 추가할 가능성이 컸다. 김연아는 아사다의 연습을 지켜본 뒤 현지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애써 무관심한 듯 “능숙하네요”라고 짤막하게 대답하는 데 그쳤다.

그로부터 2년 뒤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이번에는 ‘김연아 연습 방해설’이 터졌다. 김연아가 국내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연습하는 데 외국 선수들로부터 방해를 받았다고 말한 내용이 발단이 됐다. 외국 선수는 곧 일본 선수였고, 그의 라이벌 아사다가 표적이 됐다. 누리꾼들 사이에선 동영상까지 퍼져나갔고, 한국팬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마침 당시는 한국과 일본이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정상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때였다. 아사다가 해명에 나섰다.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2회 연속 우승에 도전하던 그녀는 “모든 선수는 상대 선수가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피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 연습 도중에 다른 선수와 부딪친 적은 없었다. 의도적인 진로 방해는 있을 수 없다”며 ‘김연아 연습 방해설’ 보도를 강하게 부정했다. 

YURI KADOBNOV via Getty Images

《타임》지가 선정한 역대 피겨스케이팅 최고의 라이벌

동갑내기 ‘맞수’ 한국의 김연아와 일본의 아사다 마오. 세계 피겨스케이팅 역사상 이들처럼 치열한 라이벌이 또 있었을까? 어쩌면 둘은 태어날 때부터 맞수의 운명을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두 선수는 1990년생 동갑내기 백말띠다. 생일도 김연아가 9월 5일, 아사다가 9월 25일로 불과 20일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선수시절 키와 몸무게도 김연아 164센티미터, 47킬로그램, 아사다 163센티미터, 47킬로그램으로 엇비슷했다.

김연아와 아사다가 나타나기 전까지 세계 피겨스케이팅 역사상 최고의 라이벌은 여자 싱글의 경우, 토냐 하딩과 낸시 캐리건(이상 미국), 남자 싱글은 브라이언 보이타노(미국)와 브라이언 오서(캐나다)가 꼽혔다. 하딩과 캐리건은 하딩의 전 남편이 캐리건을 피습한 사건으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보이타노와 오서는 1988년 캘거리 겨울올림픽에서 나란히 금메달과 은메달을 차지했는데, 이 경기는 당시 ‘브라이언 전쟁’으로 불리며 피겨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손꼽히고 있다. 아깝게 금메달을 놓친 오서는 김연아가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때 코치를 맡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주니어 시절부터 숱하게 라이벌 대결을 펼친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는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최절정의 맞수 대결을 펼쳤고, 금메달과 은메달로 명암이 엇갈렸다. 김연아와 아사다는 미국의 《타임》지가 밴쿠버 겨울올림픽이 끝난 뒤 선정한 ‘역대 피겨스케이팅 최고의 라이벌 10선’에서 단연 1위로 꼽혔다. 하딩과 캐리건은 2위, 보이타노와 오서는 3위였다.

김연아와 아사다는 어릴 적부터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언니를 따라 피겨스케이팅을 배웠다. 김연아는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처음 스케이트를 탔다. 타고난 점프력과 리듬감을 앞세워 초등학교 때 이미 중·고등학교 언니들을 따돌리고 국내 대회 우승을 독차지해 ‘피겨 신동’으로 불렸다. 열두 살 때 다섯 가지 기술(러츠·플립·살코·토루프·루프)의 트리플 점프(공중 3회전 점프)를 모두 완성하면서 단숨에 세계무대에서 통할 재목으로 주목받았다.

아사다는 일본 아이치 현 나고야에서 태어났다. ‘마오’라는 이름은 아버지가 일본의 여배우 다이치 ‘마오’의 팬이어서 지었다고 한다. 아사다의 언니 아사다 마이 또한 피겨스케이팅 선수 출신인데, 2006년 4대륙선수권대회(유럽을 제외한 나머지 대륙)에서 6위에 오를 만큼 뛰어났다. 하지만 비교적 일찍 선수 생활을 접고 아이스쇼와 경기 해설자로 활동하고 있다.

아사다가 존경하는 피겨스케이터는 같은 나고야 출신의 이토 미도리로 그 선수의 의상을 물려받아 입고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아사다는 다섯 살 때 스케이트를 시작했고, 열두 살 때 처음 트리플 악셀(공중 3회전 반 점프)을 뛰었다. 열네 살이던 2004년에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2004~2005년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주니어 여자선수로는 처음으로 트리플 악셀 점프에 성공하며 주목을 받았다.

두 선수는 ‘노비스(novice)’, 즉 열세 살 이하 어린이 시절부터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까지 12년 동안 빙판 위에서 최고 자리를 놓고 라이벌 대결을 펼쳤다. 한·일 두 나라를 대표하는 두 선수는 주니어 때부터 끊임없이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다투면서 세계 피겨팬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주니어 시절부터 시니어 데뷔 초반까지는 김연아보다 아사다의 성적이 조금 더 좋았다. 아사다는 여자선수로는 쉽지 않은 트리플 악셀을 앞세워 주니어 시절 김연아보다 앞선 성적표를 받았다. 아사다의 필살기라고 할 수 있는 트리플 악셀은 항상 회전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심판들의 관대하고 느슨한 판정으로 정확한 트리플 콤비네이션 점프를 앞세운 김연아가 손해를 봤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 아사다의 점프 회전수는 늘 논란이 됐는데,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도 여자선수 최초로 3개의 트리플 악셀에 성공했다고 해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지만, 회1부 세계의 라이벌, 세기의 라이벌 19전수가 부족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YURI KADOBNOV via Getty Images

두 선수가 시니어 무대에서 처음 맞대결을 펼친 것은 2006년 12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이었다. 김연아는 고관절 부상 중에도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면서 우승을 차지했고, 아사다는 프리스케이팅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 은메달에 머물렀다.

이듬해인 2007년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아사다가 설욕에 성공하는데, 김연아가 당시 최고점을 기록하는 좋은 경기를 펼치고도 프리스케이팅에서 잦은 점프 실수를 범하면서 안도 미키와 아사다 마오에 이어 3위에 만족해야 했다. 아사다는 이 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내면서 김연아와의 시니어 무대 맞대결 전적 1승 1패를 만들었다.

아사다는 김연아가 고관절 부상 때문에 시련을 겪는 사이 우승을 휩쓸었다. 김연아는 2008년 3월 스웨덴 예테보리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고관절 부상이 심해지면서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진통제를 맞고 경기에 출전하는 투혼을 펼쳤지만 2007년에 이어 다시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반면 아사다는 이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을 비롯해 2007~2008시즌에만 5개 대회에 출전해 4개 대회 우승을 휩쓸었다. 김연아는 부상 중에도 아사다가 우승하지 못한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줬다.

2008년 세계선수권대회는 고관절 부상도 있었지만 판정 논란으로 김연아가 억울하게 금메달을 놓친 대회다. 아사다는 프리스케이팅에서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다가 미끄러지면서 크게 넘어지고 말았는데, 다시 일어나 트리플 플립(전진하다가 점프 직전 뒤로 돌면서 오른발로 토를 찍고 점프해 공중 3회전한 뒤 오른발로 착지하는 기술)을 뛰기 위한 자세까지 들어가는 데 무려 10초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아사다는 프리스케이팅에서 감점이 1점에 불과했다. 반면 김연아는 프리스케이팅 1위를 차지하고도 이탈리아의 카롤리나 코스트너한테도 뒤지면서 동메달에 그치고 말았다. 이 대회가 끝난 뒤 북미 지역 언론들은 아사다와 코스트너를 비롯한 유럽 선수들의 점수가 높게 나왔다고 거세게 비판했다.

이때까지는 김연아가 맞대결 전적에서 아사다에게 뒤졌는데, 그 이후에는 김연아의 전성시대가 이어졌다. 부상 여파로 2008년까지는 맞대결에서 3승 5패로 뒤졌지만, 2009년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아사다를 꺾은 데 이어서 연이어 치러진 2009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여자 싱글 최초로 200점을 넘는 점수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맞대결 전적도 5승 5패로 균형을 맞췄다. 이어 2009년 10월 그랑프리 1차대회에서도 당시 역대 최고 점수인 210.03점을 받으면서 아사다와의 맞대결에서 마침내 6승 5패로 역전에 성공하게 된다. 

Tasos Katopodis via Getty Images

2010년 밴쿠버올림픽 전까지 6승 6패 ‘팽팽’

두 선수 간 맞대결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밴쿠버 겨울올림픽이다. 이때까지 맞대결 전적도 6승 6패로 팽팽했다.

2010년 2월 24일 열린 쇼트프로그램에서 아사다가 먼저 연기를 펼쳤고, 73.78이라는 개인 최고 점수를 세운다. 아사다의 지도자인 타티아나 타라소바 코치는 옆에 있던 김연아를 의식한 듯, 격렬한 몸짓으로 아사다의 연기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김연아는 침착하게 <007 제임스 본드 메들리>를 연기하면서 78.50점으로 순식간에 아사다의 기록을 넘어섰다.

하지만 4.72점 차이는 프리스케이팅에서 충분히 역전이 가능한 점수였다. 이틀 뒤인 2월 26일에 열린 프리스케이팅에서는 김연아가 먼저 연기를 펼쳤다. 그리고 150.06이라는 경이적인 점수를 기록했다. 최종 합계 228.56점. 여자 피겨 싱글 역사상 최고 점수였다. 아사다는 상기된 표정으로 링크에 들어섰지만 김연아의 최고 점수를 의식한 듯 실수를 연발하며 최종 합계 205.50점에 그쳤다. 아사다 역시 200점이 넘는 고득점을 올렸지만 김연아에게 무려 23.06점이나 뒤져 은메달에 머물고 말았다.

밴쿠버올림픽 이후 김연아가 은퇴 여부를 놓고 고민할 때 아사다도 모친상을 당하면서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2011년 12월 9일, 아사다의 어머니가 간경변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의 병환이 깊어지자 아사다는 세계선수권대회 6위라는 참담한 성적을 기록했고, 어머니 사망 직후에는 자신의 필살기인 트리플 악셀을 포기하면서 그랑프리 파이널에 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아사다는 이듬해인 2012~2013시즌 완전히 재기에 성공했다. 트리플 악셀을 다시 시도하면서 4년 만에 그랑프리 파이널 정상을 탈환했고, 4대륙선수권대회 우승도 거머쥐었다.

밴쿠버올림픽 이후 소치올림픽 전까지 김연아와 아사다는 두 차례 더 맞대결을 펼쳤다. 2011년 3월, 러시아 모스크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가 2위, 아사다가 6위를 차지했고, 이어 2년 뒤인 2013년 3월, 캐나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김연아가 역대 두 번째로 높은 218.31점으로 우승, 아사다는 196.47점으로 3위에 올랐다.

두 선수에게 2014 소치 겨울올림픽은 생애 마지막 올림픽 출전이었고 마지막 맞대결 무대였다. 두 선수의 각오는 비장했다. 하지만 나란히 자국 대회에서 열린 올림픽 최종 리허설 무대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김연아는 2014년 1월,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자신의 역대 두 번째로 높은 227.86점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올림픽 2연패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특히 첫날 쇼트프로그램에서 무려 80.60점을 받았다. 이는 4년 전 밴쿠버올림픽 때 받았던 78.50점을 뛰어넘는 놀라운 성적이었다. 국내 선수권대회에서 받은 기록이다 보니 국제빙상경기연맹 공인기록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비공인 세계 최고 기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기록이었다. 김연아는 실수 없는 완벽한 연기와 점프로 직전 대회인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보다 한층 나아진 경기를 펼쳤다. 그녀는 경기가 끝난 뒤 “긴장하지 않으려고 했고, 점프가 잘됐다. 차분하게 잘 이어나가 높은 점수가 나온 것 같다. 올림픽에서도 오늘처럼 깨끗한 연기를 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며 한껏 고무됐다.

반면 아사다는 소치올림픽 리허설 무대에서 주춤했다. 2013년 12월 22~23일 소치올림픽 대표선발전을 겸해 열린 일본선수권대회에서 여전히 점프 불안을 드러내며 3위에 그쳤다. 일본에 세 장이 주어진 소치올림픽 출전권은 따냈지만 자신의 주 무기인 트리플 악셀을 잇따라 실패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일본선수권대회 부진이 아사다의 경쟁심을 자극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선수권대회 이후 동기부여가 됐다”며 “최근 허리를 치료하면서 휴식을 취하게 했는데 선수 자신의 의지가 매우 강하다”고 전했다. 아사다는 크리스마스이던 그해 12월 25일 후원사인 일본항공(JAL) 행사에 참석해 “가장 좋은 색의 메달(금메달)을 일본에 가져오고 싶다”며 소치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역사상 최고의 라이벌로 꼽히는 김연아(좌)와 아사다 마오. 두 선수는 똑같이 1990년 9월 생이다.

2014년 소치올림픽 최후의 승부, 그리고 은퇴

마침내 2014년 2월 19일과 20일 소치올림픽 여자 피겨 싱글 경기가 펼쳐졌다. 그러나 김연아는 아쉽게도 홈 텃세와 심판의 석연찮은 채점으로 러시아의 신예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게 금메달을 내주고 은메달에 머물렀다. 아사다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쇼트프로그램에서 수차례 넘어지면서 55.51점이라는 참혹한 점수를 받았고, 결국 6위에 그치며 눈물을 흘렸다.

김연아와 아사다의 역대 전적은 10승 6패, 김연아의 우세로 마감됐다. 주니어 시절에는 1승 2패로 뒤졌지만, 시니어 무대에서 9승 4패로 아사다를 압도했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 직전까지 6승 6패로 팽팽했지만 그 이후 은퇴할 때까지 김연아가 4연승을 거뒀다. 현역시절 아사다는 최고의 기량을 가지고도 번번이 큰 대회에 약한 징크스를 드러냈다. 반면 김연아는 큰 무대일수록 긴장을 덜 하는 ‘강심장’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김연아는 소치올림픽까지 현역 선수로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3위 이내에 입상해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부문에서 최초로 ‘올포디움(all podium)’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김연아는 소치올림픽이 끝난 뒤 미련 없이 빙판을 떠났다. 한편 미련이 남았던 아사다는 2018 평창올림픽까지 야심차게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야망은 중도에 멈추고 말았다.

2017년 4월 12일, 일본 도쿄 시내의 한 호텔에서 열린 아사다 마오의 은퇴 기자회견에는 취재진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400명이 넘는 취재진과 45대 이상의 텔레비전 카메라가 몰려들었다고 한다. 아사다는 “먼 미래에 평창올림픽 출전 포기를 결심한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했다”며 끝까지 미련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김연아에 대해 “훌륭한 선수였고, 서로 경쟁하며 성장하는 데 큰 자극이 됐다”고 말했다. 마지막 인사를 할 때는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김연아도 아사다에 대해 자극제가 됐다는 비슷한 말을 해왔다.

빙판을 떠난 두 사람이 펼치는 제2의 인생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된다. 

* ‘신들의 전쟁 - 세상을 뒤흔든 스포츠 라이벌’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