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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현민은 말한다. "그냥, 다 똑같은 사람이잖아요."

"우리 사회에서 ‘편견’이 하루빨리 없어지면 좋겠어요."

  • 허완
  • 입력 2018.03.04 12:19
2001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현민은 한국인 어머니와 나이지리아인 아버지를 둔 요즘 ‘대세’ 모델이다. 그동안 국내 패션계에서 검은 피부색 모델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구색 맞추기’가 아닌 주목받는 메인 모델로 활동하는 건 한현민이 처음이다. 지난달 13일 서울 용산구 보광동 ‘헬카페’에서 한현민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2001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현민은 한국인 어머니와 나이지리아인 아버지를 둔 요즘 ‘대세’ 모델이다. 그동안 국내 패션계에서 검은 피부색 모델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구색 맞추기’가 아닌 주목받는 메인 모델로 활동하는 건 한현민이 처음이다. 지난달 13일 서울 용산구 보광동 ‘헬카페’에서 한현민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한겨레

[토요판] 커버스토리
한국인 모델 한현민

국내 런웨이 누비는 첫 검은 피부색 모델
이태원 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다

‘스노보드 천재’ 클로이 김은 200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인이었지요. 클로이 김은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을 자주 들었다고 합니다. ‘로스앤젤레스’라고 답하면 ‘진짜,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이 돌아왔습니다. ‘롱비치에서 태어났다’고 하면 ‘아니, 진짜 어디서 왔느냐’ 또 물었다는군요. 2001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현민도 비슷한 질문을 들었을지 모릅니다.

“뭬야~!”(드라마 <여인천하>) “고마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영화 <친구>)

지금도 회자되는 유행어가 탄생한 해는 2001년. 가수 싸이가 ‘엽기적’ 비주얼로 “나 완전히 새 됐어”(‘새’)를 외치며 데뷔했고, 최근 재결합 공연을 한 아이돌 그룹 ‘에이치오티‘(H.O.T)가 해체를 선언했다. 대만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 나라에서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국내 인터넷 사용자 수는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었다.

정부가 정한 ‘한국 방문의 해’였던 2001년 3월 인천국제공항이 문을 열었다. 그해 국내 체류 외국인 수는 50만명(2017년 204만여명)을 웃돌았다. 한국을 오가는 사람이 늘어난 반면, 국내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의 수는 지속적으로 줄었다. ‘새천년’(밀레니엄) 영향이 컸던 2000년, 60만여명으로 ‘반짝’ 증가한 출생아 수는 2001년 55만4895명(2017년 35만7700명)에 그친다.

한국인 어머니와 나이지리아인 아버지를 둔 요즘 ‘대세’ 모델 한현민은 2001년 한국에서 태어난 55만여명 중 한명이다. 문화방송(MBC)의 <황금어장―라디오스타>를 비롯해 제이티비시(JTBC)의 <아는 형님>, <이방인> 등 주요 예능 프로그램에 연달아 나온, 순댓국을 유난히 좋아한다는 바로 그 고등학생(서울 한광고 2) 이야기다.

한현민이 처음 패션쇼에 선 건 2년 전. 2016년 3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선 ‘2016 가을/겨울 서울패션위크’가 열렸다. 당시 한상혁 디자이너의 브랜드 ‘에이치에스에이치’는 ‘소년, 학교, 폭동’을 주제로 한 컬렉션(신작 발표회)을 공개했다. 패션쇼 문을 여는 첫번째 모델은 아무나 맡지 못한다. 그날 쇼의 첫번째 모델은 ‘생짜 신인’ 한현민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약 60개 패션쇼에 서며 모델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그동안 한국 패션계에서 검은 피부색 모델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구색 맞추기’가 아닌 주목받는 메인 모델로 활동하는 사람은 한현민이 처음이다. 

관련기사 : [허프인터뷰] 한국인 모델 한현민은 한국 런웨이에 컬러를 새기고 있다

모델 한현민은 티브이(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모습처럼 유쾌하고 입담 좋은 17살 학생이다.
모델 한현민은 티브이(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모습처럼 유쾌하고 입담 좋은 17살 학생이다. ⓒ한겨레

 

주민등록번호 시작은 010~

평창겨울올림픽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달 8일 오후, 한현민은 소속사 모델 형들과 함께 성화봉송 주자 집결지인 강릉시청 안으로 들어섰다. 걸음을 뗄 때마다 사람들이 얼굴을 알아보고 말을 걸었다. “어~ 저기, 사진 같이 찍어주시면 안 돼요?” 189㎝ 큰 키를 접어 넙죽 인사를 하곤, 처음 보는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사진을 찍었다. 신기하게 쳐다보는 눈길이 괴로웠던 어린 시절엔 상상하지 못했을 일이다. 얼굴이 알려지기 전엔 한국어로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다. 외국에서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해 한국 주재 외신기자들의 보도를 통해 한현민의 국내 활동이 세계 여러 나라로 전해졌다. 그해 11월 미국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17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30인’ 중 한명으로 꼽혔다.

지난달 13일 오전,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3번 출구를 나섰다. 한국 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을 지나 낡고 한적한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중앙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현민은 이 골목 인근 보광동 집에서 부모님, 동생 4명과 함께 살고 있다. 공방과 카페가 들어서고 있는 우사단로 10길 ‘가능세계’라는 공간에서 현민과 마주 앉았다. 2001년생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혹시 한겨레신문 알아요?

“한겨레신문…. 유명하지 않나요? 유명하다 그랬는데.”

―실물로는 못 봤죠?

“네, 근데 들어본 거 같기도 한데.”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나요?

“해외축구 많이 봐요.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것들, 이슈가 많이 되는 것들은 보는 거 같아요.”

―현민씨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장면은 뭐예요?

“아기 때 눈이 흐물흐물했는데 누가 저한테 빵을 주는 거예요. 그 빵을 탁 쳤던 기억이 나요. 나중에 엄마한테 물어보니까 외할아버지가 빵 주시는 걸 손으로 쳤다 하더라고요. 제가 정말 빵을 싫어해서 안 먹어요. 밥만 먹어요.”

―현민이란 이름의 뜻이 궁금해요.

“어질 현(賢)에 ‘민’ 자는 뜻을 모르겠어요. 엄마가 원래 이름을 ‘한원빈’이라고 지으려 했대요. 한자 ‘원’은 찾았는데 ‘빈’ 자는 못 찾았으셨어요. 그래서 현민이가 됐는데,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원빈이란 이름이었으면, 살면서 엄청 많은 소리를 들었을 것 같아요.” 

한현민은 2016년 3월 서울패션위크에서 진행된 ‘HSH 2016 가을/겨울 컬렉션’을 통해 데뷔했다.
한현민은 2016년 3월 서울패션위크에서 진행된 ‘HSH 2016 가을/겨울 컬렉션’을 통해 데뷔했다. ⓒVogue 코리아

 

원빈이 될 뻔한 현민이

지난달 18일 저녁, 설 연휴 내내 아이 넷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어머니 한혜진(43)씨와 전화 통화를 했다. 수화기 너머로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민이가 실은, 원빈이 될 뻔했다면서요?

“배우 원빈처럼 멋진 아기로 키우려고 한자를 찾았는데 마음에 드는 글자가 없더라고요. 현빈으로 해볼까 싶었는데 ‘빈’ 자를 못 찾았어요. 그러다 ‘하늘 민’(旻)을 봤는데 뜻이 너무 좋은 거예요. 현민은 ‘어진 하늘’이란 뜻이에요.”

―현민이는 어머니 성(청주 한씨)을 따랐다고 들었어요. 아버지가 서운해하지 않으셨어요?

“그 문제로 많이 싸웠어요. 현민이 낳을 때는 절차를 잘 몰라서 그냥 제 성을 따 한국 이름으로 지었는데 ‘왜 이름에 내 성은 없냐. 내 아들 아니냐’ 그래서 ‘미안하다. 할 줄 모른다’ 그랬죠, 뭐. 현민이 동생들 낳을 때는 주위 사람들한테 들은 게 있어서, 제 성 다음에 아빠 성하고 영어 이름을 넣어줬어요. 현민이 때는 한글과 영어 이름을 함께 올릴 수 있는 건지도 몰랐어요.”

(※가족관계등록예규 제434호에 따르면 한국인 어머니 성을 따르는 경우, 아버지 나라 ‘외국식 이름’을 출생신고서에 기재할 수 있다. 한혜진씨는 아이들 출생신고를 하면서 자신의 성 뒤에 남편 성과 영어 이름을 합친 ‘외국식 이름’을 넣었다. 부모 중 어느 한쪽이 한국 국적이면 자녀들은 자동으로 한국 국적을 갖는다. 현민은 이중 국적이 아닌 한국 국적만 갖고 있다.)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되기 전, 한혜진씨는 레이스 원단을 나이지리아에 수출하는 무역회사에 다녔다. 지금은 보험회사 콜센터에서 일한다. 현민 아버지는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어, 종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외국인 배우자를 만나는 사람들이 흔해졌지만 아프리카 국가 사람들과 결혼하는 경우는 아직 많지 않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자료를 보면 2017년 말 기준 약 150개 나라 출신 15만3648명이 한국인과 결혼해 국내에서 살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인과 결혼한 나이지리아인은 144명이다.

―결혼으로 남다른 어려움을 겪었을 것 같아요.

“문화적 차이가 이렇게 클진 몰랐어요. 연애할 때는 상대가 배려를 많이 해주잖아요. 나이지리아 문화가 한국 정서랑 비슷하긴 해요. 그래도 속마음을 너무 솔직하게 이야기해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어요. 저는 주변 사람들 신경은 별로 안 써요.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도 대놓고 말해요. ‘국제결혼했다. 흑인이랑 결혼했다’ 그러면 사람들이 ‘어떻게 만났느냐’ 이걸 되게 궁금해해요. 그다음에 나오는 질문은 ‘아기 있냐’. 있다고 하면 사진 보여 달라 그래요. 아무래도 한국인과 결혼한 가정보다 궁금해하죠. 그러다 보니 현민이가 조금 힘들어했어요. 저는 거리낌이 없으니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사람들이 쳐다보는 걸 현민이가 신경썼나 보더라고요.” 

2016년 에스에프(SF)엔터테인먼트 윤범 대표는 한현민이 올린 에스엔에스(SNS) 사진을 본 뒤 그를 모델로 발탁했다.
2016년 에스에프(SF)엔터테인먼트 윤범 대표는 한현민이 올린 에스엔에스(SNS) 사진을 본 뒤 그를 모델로 발탁했다. ⓒSF엔터테인먼트

 

이태원을 조금만 벗어나도…

2001년 서울 용산구 해방촌(용산2가동)에서 태어난 현민은 7살 때 이태원 일대로 분류되는 보광동으로 이사를 왔다. 서울의 대표적인 외국인 밀집 지역에서 나고 자란 셈이다. 현민이 졸업한 보광초등학교나 오산중학교에는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부모님이 모두 외국인인 친구들이 꽤 있었다. 한혜진씨는 아이를 키우기엔 이태원이 편하다고 했다. “친정이나 어디 갈 때 다른 사람의 시선이 많이 느껴지는데 이태원은 그런 게 없거든요. 지금은 그나마 나아졌는데, 현민이 어렸을 땐 이 동네를 조금만 벗어나도 사람들이 너무 신기하게 쳐다보는 거예요. 그런 게 좀 거슬릴 때가 있었죠.”

―보광동에 이사 와선 뭐 하고 놀았어요?

“정말 미친 듯이 놀았어요. 저녁 6시 통금시간에 맞춰 들어와 씻고 밥 먹은 뒤 8시부터 자고 아침 7시에 일어나 다시 밥 먹고 나가 놀았거든요. 초등학교 2~3학년 방학 땐, 아침에 너무 일찍 나가니까 애들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도서관에 갔어요. 그때 책을 많이 읽었어요. <해리 포터> 시리즈에 엄청 빠졌죠. 그림이 하나도 없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지난해 런던 갔을 때 해리 포터에 나오는 킹스크로스역 9와 4분의 3 승강장에도 가봤어요.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더라고요. 되게 행복했어요.”

―<해리 포터> 말고 또 어떤 책을 읽었나요?

“과학 학습만화 <와이?>(Why?), 세계인물 학습만화 <후>(WHO). 살아남기랑 보물찾기 시리즈(과학 상식과 세계 역사문화 상식을 만화로 엮은 책). 그거 보면서 다른 나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가 처음 스마트폰 ‘갤럭시 지오’를 사주셨는데, 이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밤새 스마트폰만 하니까 신이 벌을 주셨어요. 핸드폰을 잃어버린 거예요. 와~ 핸드폰이 없으니 원시인이 된 것 같았어요. 그래도 엄마는 다시 안 사주셨어요. 너무 놀아서 외출금지를 당했던 때였거든요. 학교 끝나면 무조건 집에 들어가야 하니 다시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다 다시 외출금지 풀려서 친구 집에서 자고, 피시(PC)방 가고~.”

―초등학생들도 피시방에 많이 갔나 봐요. 그땐 어떤 게임 했어요?

“6학년 때 ‘롤’(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줄임말)이 나왔어요. ‘롤’이 또 저희 세대 때 붐을 일으켰죠. 피시방 가면 아저씨들 빼고는 다 ‘롤’ 하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또 책을 안 보게 됐어요.”

현민은 존경하는 인물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1960년대 미국 흑인인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를 꼽는다. 초등학생 때 읽은 책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다. 오바마는 1961년 하와이에서 미국인 어머니와 케냐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났다. 어머니가 인도네시아인과 재혼을 하면서 6살부터 4년간 자카르타에서 살았는데, 말도 서툴고 생김새도 달라 친구들로부터 놀림과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 미국 대통령을 두번이나 한데다 농구마저 잘하는 오바마를 만나는 건, 현민의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 가운데 하나다. 

2008년 7살 한현민과 어머니 한혜진씨.
2008년 7살 한현민과 어머니 한혜진씨. ⓒSF엔터테인먼트

커서 뭐 해 먹고사나 싶었다

키 크고 운동 잘하고, 공부엔 소질이 없었던 현민은 중학교 2학년 때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다. 방황하던 현민이가 마음을 잡은 건, 3년 안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2015년 가을 어느 날 사진을 찍는 아저씨가 현민에게 물었다. “넌 꿈이 뭐니?” “모델 하고 싶어요.” 그 아저씨는 ‘지금 한국에서 가장 큰 패션쇼가 열리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서울패션위크가 열리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갔더니 멋있고 신기한 사람들이 많았다.

-중2 때 방황을 했다면서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사춘기가 온 거죠. ‘중2병’이. 엄마보다 친구들이 좋고. 학교도 가기 싫고. 학교에 갈 이유와 의미가 없어진 거예요. 놀아야지~ 노는 게 좋아. 그러다 ‘진짜 이렇게 지내다 커서 뭐 해 먹고사나. 계속 학교 안 가면 정말 큰일이 생기겠지’ 그런 위기감이 들더라고요. 지금은 중학교 2학년 시절을 후회해요. 학교 정말 열심히 다닐걸.”

-언제부터 모델 일을 하고 싶었어요?

“중학교 입학했을 땐, 운동 좋아하니까 체육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체육 선생님도 공부 잘해야 한다는 걸 안 순간부터…. 그러다 옷에 관심이 생겼어요. 옷은 좋은 첫인상을 심어주는 도구일 수 있잖아요. 옷과 관련해 어떤 직업을 하면 좋을지 고민했는데 모델이 떠오른 것 같아요. 처음엔 모델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게 너무 쑥스러웠어요. 니가 무슨 모델이냐, 모델은 몸 좋아야 한다, 너무 말라서 안 돼. 그런 이야기 들었거든요. 그렇지만 응원해주는 친구들도 많았어요.”

-늘 하고 싶은 것이 있었네요?

“꿈이 없으면 불안했어요. 뭐라도 있어야지. 꿈이라는 게 되게 좋은 거 같아요. 꿈이 생기면 목표가 생기고, 목표가 있으면 그걸 이루기 위해 움직이게 되잖아요. 그래서 꿈이 없는 친구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주위 친구들도 진로 때문에 고민 많이 하는데 ‘네가 제일 좋아하는 관심사라든지 네가 하고 싶은 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요.”

―막상 모델이 돼보니 생각했던 것과 다른 점도 있어요?

“그건 없어요. 저는 어려울 것을 감안하고 시작했어요. 누군가 ‘겉으로 화려해 보이지만 정말 힘든 직업이야’라고 미리 말해주셨어요.”

현민은 티브이(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모습처럼 밝고 유쾌한 17살이다. 축 처져 있는 것보단 움직이는 걸 좋아한다. 같은 소속사 모델에 따르면, 화도 잘 안 내는 성격이다. 어머니께 다시 물었다.

-현민이가 예의 바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예의 없는 건 저희가 정말 싫어하거든요. 바로 응징에 처했죠. 남편이나 저나 남한테 손가락질받는 거 싫어했고, 아무래도 아이를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울 순 없었어요. 어차피 아이가 크면 겪을 일이 예상됐기 때문에 좀 엄하게, 강하게 키우려고 했어요. 물건 잃어버리면 다른 엄마들은 찾아주잖아요? 전 절대 안 찾아줬어요. 현민이가 방황을 많이 할 때 무엇 때문에 삐쳤는지 집에 안 들어오더라고요. 그냥 내버려뒀어요. 어차피 현민이가 겁이 많아 멀리는 못 가요. 동네 친구 만나 돌아다니고 있으려나 했는데 3일 만에 ‘엄마 미안해.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이때가 아니면 안 될 거 같아서 ‘나가는 건 네 마음대로 할지 몰라도 들어오는 건 마음대로 안 된다’고 했어요. 며칠 뒤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오더라고요. ‘어머님, 제발 현민이 들어가게 해달라’고. ‘그러면 들어오라고 하세요’ 그랬죠.”

-동생들도 피시방에 자주 가나요?

“둘째가 초등학교 2학년인데 며칠 전에 피시방 갔다가 현민이한테 들켜서 아빠한테 혼났어요. 애들 아빠가 현민이 때문에 피시방에 학을 떼요. 저희 집 애들은 뛰어노는 거 좋아하고 가만히 있질 않아요. 형편상 학원엔 안 보내거든요. 그런데 운동하고 뛰어놀 수 있는 데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길에도 차가 너무 많고요.” 

지난해 <해리 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런던 킹스크로스역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찍은 기념사진.
지난해 <해리 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런던 킹스크로스역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찍은 기념사진. ⓒInstagram/hhm0519

 

모델 지망생 등치는 어른들

가수나 연기자, 모델을 하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모델 지망생들을 가르치는 학원의 경우 이름이 알려진 곳은 석달 과정에 200만원이 넘는 수강료를 내야 한다. 현민은 어머니께 학원 이야기를 꺼냈다 ‘욕’만 먹었다. 대신 유튜브를 통해 유명한 모델이 어떻게 걷는지 찾아봤다.

―데뷔 직전인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사기를 당했다면서요?

“누가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해왔어요. ‘이탈리아 남녀 모델이랑 촬영하는데 너도 같이 할래?’ 너무 좋은 기회다 싶어 한다고 했죠. 촬영장에 갔더니 쇼핑몰 사진을 찍더라고요. 매일 10시간씩 이틀간 촬영하는데 밥 한끼도 안 사줬어요. 낌새가 이상했죠. 촬영이 끝난 뒤, 이탈리아 분들이 왜 돈 안 주느냐고 하니까 쇼핑몰에서 옷이 팔릴 때마다 준다는 거예요. 연락 기다리고 있었는데 뚝 끊겼어요.”

―경찰에 신고는 안 했어요?

“못 했죠. 엄마가 알면 좀 그럴 거 같아서. 액땜했다 생각했어요. 신고하면 나중에 활동하는 데 지장이 있을까 싶기도 했어요.”

―이런 피해는 모델 지망생들에게 알려야겠어요. 두번째 피해는 어떤 거였나요?

“이탈리아 밀라노에 보내주는 오디션이 있다더라고요. 프로필 사진을 찍으러 갔더니, 유명 브랜드 팬티를 남자 모델 다섯명이 돌려 입으면서 촬영을 하는 거예요. ‘워킹 안 한다’고 했는데 막상 가니까 팬티 입고 워킹을 하래요. 좀 이상한 거예요. 이런 게 패션인가? 패션이니까 몸을 다 봐야 하는 건가? 괜찮은 오디션이 아니었더라고요. 저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니었어요. 오디션 비용으로 30만원을 내라고 했어요. 또 액땜한 셈 쳤죠. 사진 작업물이 남았으니 팬티만 입은 사진 말고 다른 사진을 에스엔에스(SNS)에 올렸는데 그걸 본 지금 소속사 대표님이 만나자고 하셨어요.”

에스에프(SF)엔터테인먼트 윤범 대표는 현민을 만나 이태원 길 한복판에서 걸어보라고 했다. 그렇게 현민이는 모델로 발탁된 지 2주 만에 패션쇼에 섰다. 패션칼럼니스트 홍석우씨는 2016년 3월 서울패션위크에서 현민의 데뷔 무대를 본 적이 있다. “쇼의 이미지를 만드는 모델은 첫번째로 등장하는 모델이거든요. 한현민씨를 처음 보고 한상혁 디자이너님께 누구냐고 물어봤어요. 비율(프로포션)이나 의상 소화력이 좋더라고요. 점점 더 많은 브랜드에서 얼굴이 보이고 있어요. 패션모델 ‘다양성’ 측면에서 굉장히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보이지 않는 장벽’이 굉장히 견고한 분야인데,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다양한 피부색을 지닌 사람들이 한현민씨를 보며 도전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화려한 데뷔를 했지만 모델로 안착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검은 피부에 대한 편견을 대놓고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국적인 모델을 구하는 곳에서는 금발에 하얀 피부를 지닌 사람을 찾았다. 윤범 대표는 “요즘 국내에선 현민이 개인이 겪는 차별은 많이 줄었다. 그런데 국외로 나가 보니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낮춰 보는 경우도 있고, 여전히 흑인에 대한 편견이 있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국외에서는 백인이 아닌, 나이가 많은, 마르지 않은, 장애가 있는, 성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등 현실 세계를 반영한 다양한 모델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미디어 <더 패션 스폿>은 패션쇼나 잡지에 등장하는 모델의 인종·사이즈·성정체성·나이 등을 분석한 ‘다양성 보고서’를 꾸준히 내놓는다. 지난해 12월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2018 봄 시즌’ 뉴욕·밀라노·런던·파리 패션쇼에 선 여성 모델 가운데 백인이 아닌 경우는 30.2%였다.

지난달 8일 강릉시청에서 한현민이 2018 평창겨울올림픽 성화봉송 주자로 나서게 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지난달 8일 강릉시청에서 한현민이 2018 평창겨울올림픽 성화봉송 주자로 나서게 된 소감을 말하고 있다. ⓒ한겨레

 

주인공 아닌 주변인물이 되는 아이들

현민은 지난해 <비비시>(BBC)가 한국어로 제작한 영상에 라비·조나단과 함께 출연해 ‘한국에서 검은 피부로 사는 고충’을 유쾌한 입담으로 설명한 적이 있다. 라비와 조나단은 2002년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으로 한국에 건너와 6년 뒤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욤비 토나 광주대 교수의 자녀다. 페이스북에 공개된 이 영상은 지금까지 조회 수 360만회를 기록했다. 조나단과 현민은 아이들로부터 각각 ‘아프리카노 까매~까매~까매’ ‘아프리카! 치카치카다’라는 놀림을 받았다고 했다.

현민에게 ‘듣기 불편한 말이나 표현’이 무엇인지 물었다. 대답을 무척 조심스러워했다. 뜻하지 않게 대중의 오해를 사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고민하던 현민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편견’이 하루빨리 없어지면 좋겠어요. 그냥, 다 똑같은 사람이잖아요. 모두가 차별받지 않으면, 행복하게 살지 않을까요? 행복지수 1위 나라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현민도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진 적이 있는지 궁금했다.

“얘는 약간 이래서 저걸 잘할 거야. 쟤는 딱 봐도 노래 잘할 거야.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애들이 반전을 보여주면 생각이 달라져요. 저 형은 귀고리를 다섯개나 했으니 동네에서 ‘한 따까리’ 했겠다 싶은데, 공부를 잘할 수도 있는 거고요. 음식도 그렇잖아요? 얼큰하니 맛있을 거야 하고 시키면 맛이 또 달라요. 음식도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사람은 모두 다르다. 가정환경·생김새·성격·직업…. 다름을 빌미로 다른 사람을 막 대하거나 차별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어른들이 더 자주 잊어버린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부터 쓰이고 있는 초등학교 1~2학년 교과서 15종을 대상으로 인권침해 요소가 있는지 분석한 결과를 내놓았다. 몸이 불편하거나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은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물로만 그려졌다. 소방관·경찰관·미용사 뒤엔 ‘아저씨’ ‘아주머니’란 말이 붙었지만, 의사는 ‘선생님’으로 불렸다.

 

2017년 ‘이주 배경’ 학생 10만여명

2017년 4월 기준, 국제결혼을 하거나 국외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부모님을 둔 초·중·고 학생은 10만9387명(1.9%)이다. 현민처럼 한국에서 태어난 경우도 있고, 외국에서 살다 온 경우도 있다. 영향을 받은 문화도, 집안 사정도 천차만별이다.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엄마나 아빠 혹은 부모님’ 아래서 성장한 한국인들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아직 살짝 ‘사춘기’인 거 같다는 현민에겐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요즘 가장 원하는 건 독립이다. 10년간 살았던 보광동 집을 떠나 나만의 작은 공간을 갖고 싶다. 물론 어머니는 결사반대다. 20살 이전엔 아버지의 나라 나이지리아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 지금 나이의 두배 34살은 아직 상상이 잘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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