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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의 68혁명, 우리의 68혁명

결국 좌파는 승리 속에서 패배했다.

ⓒhuffpost

1968년 5월 파리에서 일어난 68혁명의 50돌이 다가오고 있다. 1960년대의 저항운동과 오늘날의 시위 사이에는 거대한 차이가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가 저항과 혁명의 에너지를 재전유하고 있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68혁명 50돌을 맞아 우리는 이러한 상황의 의미를 숙고해야만 한다.

“구조는 거리에 나서지 않는다.” 이는 68혁명 당시 파리 시내 벽들에 쓰인 유명한 낙서 중 하나로, 구조주의로는 1968년 학생과 노동자들이 일으킨 대규모 시위를 설명할 수 없음을 표현한 문구다.(이러한 이유로 일부 역사가는 1968년을 구조주의에서 후기 구조주의가 분기한 시점으로 본다. 그들의 평가에 따르면 후기 구조주의는 구조주의와 비교했을 때 능동적인 정치적 개입에 있어 더 동적이고 적극적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자크 라캉은 ‘1968년에 구조는 분명히 거리에 나섰다’고 응답한다. 68혁명이라는 폭발적인 사건은 궁극적으로 유럽의 사회적·상징적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면서 만들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68혁명이 가져온 결과를 보면 라캉이 옳았음을 알 수 있다. 68혁명의 여파로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자본주의는 생산과정과 관련하여 포드주의적인 중앙집중적 구조를 폐기하고, 노동자의 주도성과 자율성에 기초한 네트워크 기반의 조직을 발전시켰다. 수직적이고 중앙집중적인 명령체계 대신, 여러 참여자로 이루어진 네트워크, 팀 또는 프로젝트 형태의 조직 업무, 고객만족 중심의 경영, 리더의 비전을 통한 노동자 총동원이 등장했다. 

ⓒZeferli via Getty Images

68혁명이 내걸었던 평등주의와 반위계주의라는 기치는 이제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의 수사가 되었다.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은 이제 기업 자본주의의 억압적 사회조직, 그리고 실재하는 사회주의 양자 모두에 반기를 든 성공적인 자유지상주의 혁명으로 스스로를 현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문화 자본주의”의 두 단계는 광고 양식의 변화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광고에서 상품에 대해 개인이 느끼는 경험의 질이 어떻게 표현되느냐가 중요했다. 반면, 2000년 이후에는 (생태주의, 사회적 연대와 같은)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동기가 광고에 동원되는 빈도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광고가 가리키는 것은 소비자 개인이 공동체적 운동의 일부가 되는 경험, 소비자 개인이 자연 또는 아프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경험이다. 이러한 “윤리적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예로 탐스슈즈를 들 수 있다.

탐스슈즈는 2006년 다음과 같은 단순한 전제 위에 설립된 신발업체다. “고객이 신발 한 켤레를 구매할 때마다 탐스슈즈는 ‘일대일 기부 공식’에 따라 도움이 필요한 제3세계 어린이에게 신발 한 켤레를 전달합니다. 우리의 취지는 고객의 구매력을 사회적 공익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전세계 60억 인구 중 40억의 사람들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열악한 조건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탐스슈즈와 함께 내일을 위한 한 발자국을 내디디세요.”

새로운 신발을 사는 소비주의의 죗값은 이런 식으로 치러지고, 소비자 개인은 자신이 신발을 구매함에 따라 정말 필요한 누군가에게 신발 한 켤레가 공짜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죄 사함을 받는다. 소비주의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행위가 동시에 소비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악과 투쟁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탐스 슈즈 홈페이지

유사한 방식으로 68혁명의 여러 측면이 헤게모니를 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성공적으로 통합되었다. 이때 자유주의자들뿐 아니라, 모든 사회주의와 투쟁하는 우파들 역시 68혁명을 동원한다. 그들은 불안정 노동을 변호하는 논거로 “선택의 자유”라는 수사를 사용한다. “내년에 어떤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게 될지 알지 못한다고 해서 불안해하지 말라. 당신이 획득한 자유, 자신을 ‘재발명’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라. 그럼으로써 당신이 틀에 박힌 일을 단조롭게 계속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즐겨라.”

68혁명은 공장, 학교, 가족이라는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세 가지 축과 맞서 싸우고자 했다. 그러나 그 결과 세 영역은 모두 후기 산업사회 단계로 이행하게 되었다. 공장 노동은 아웃소싱으로 대체되거나, 포스트 포드주의적인 수평적이고 의사소통이 강화된 팀 체제로 재편되고 있다. 보편적 공교육은 유연화된 사교육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그리고 전통적 가족의 자리에는 다양한 형태의 유동적인 성적 배열이 들어서고 있다. 결국 좌파는 승리 속에서 패배했다. 적과 싸워 이겼지만, 그 적은 더욱 직접적인 형태의 자본주의 지배가 되었다.

‘포스트모던’ 자본주의에서 시장은 교육, 감옥, 안보와 같이 이전까지는 국가의 특권적인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장까지 침투하고 있다. (교육이나 정동을 다루는 노동과 같은) ‘비물질 노동’은 흔히 사회적 관계를 직접적으로 생산하는 노동으로 존중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상품경제 속에서 의미하는 바, 다시 말해 지금까지 시장 바깥에 속해 있던 이 영역들이 상품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제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대신, 돈을 내고 정신과 의사나 상담사를 만나 문제를 해결한다. 이제 주도적으로 아이를 돌보는 이는 부모가 아니라 전문 육아도우미와 유아교사다.

물론 우리는 68혁명의 진정한 성취를 잊어서는 안 된다. 68혁명은 우리가 여성권, 동성애, 인종주의와 같은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해 급진적인 변화의 포문을 열었다. 영광의 60년대 이후, 적어도 1950년대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누구도 인종주의나 동성애혐오를 공공연히 표현할 수 없게 되었다.

68혁명은 단일한 사건이 아니라, 다양한 정치적 경향이 결합된 여러 값을 갖는 사건이다. 이러한 이유로 68혁명은 아직도 많은 보수주의자에게 골칫거리로 여겨진다. 니콜라 사르코지가 2007년 대선 유세에서 프랑스 발전을 위해 68혁명이 청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을 생각해보라. 여기에는 중요한 역설이 존재한다. 그것은 사르코지가 교양을 결여한 격한 성격과 카를라 브루니와의 품위를 벗어난 결혼생활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68혁명이 가지고 온 어떤 변화의 결과 중 하나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지배적인 집단기억 속에는 ‘저들’의 68혁명과 ‘우리’의 68혁명이 있는 셈이다. 68혁명이 학생운동과 노동자 파업의 연결고리라는 ‘우리’의 기본적인 생각은 이제 잊혔다. 68혁명이 남긴 진정한 유산은 이 사건이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를 거부했다는 데 있으며, 이는 “현실주의자가 되자.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Soyons r?aliste, exigeons l’impossible!)라는 구호에 잘 요약되어 있다.

진정한 유토피아는 현존하는 전지구적 체제가 무한히 재생산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현실주의자가 되는 유일한 방법은 이 체제의 좌표 속에서 불가능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을 상상하고 지지하는 일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는 68혁명에 대한 신념을 다음 질문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이 급진적인 변화를 준비하고, 그 변화의 기반을 다져 나갈 수 있을까?

번역 김박수연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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