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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폭탄' 비하인드 스토리 : '예측불가능' 트럼프가 또다시 백악관을 혼란에 빠뜨리다

백악관의 질서가 (다시 한 번) 무너져 내리고 있다.

  • 허완
  • 입력 2018.03.02 15:45
  • 수정 2018.03.02 15:56
ⓒKevin Lamarque / Reuter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이 초창기의 ‘무질서 상태( free-for-all)’로 되돌아갔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가 1일 ‘관세 폭탄’ 계획을 발표하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하며 이렇게 진단했다. 트럼프는 이날 수입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각각 25%·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대부분의 경제 측근들과 공화당 의원들이 반대하는 정책을 덜컥 발표해 버린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의 이같은 발표는 ”백악관이 법적 검토를 마치기도 전에” 튀어나왔다고 전했다. NYT도 이날 발표의 전후 배경을 전하며 최근 백악관의 ‘카오스’가 트럼프 정부 초기를 연상시킨다고 보도했다.

보도를 종합하면, 이날 트럼프의 발표는 거의 모든 백악관 측근들을 거대한 혼란에 빠뜨렸다. 해당 부처의 관계자들은 물론, 그 누구보다 대통령의 의중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할 비서실장도, 대변인도, 트럼프의 이 ‘폭탄 발언’을 사전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왼쪽),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왼쪽),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Joshua Roberts / Reuters

 

‘Free-for-all’ 

이 모든 걸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은밀하게 준비해왔던 건 두 사람 뿐이었다.   

목요일(1일) 아침, 트럼프는 경제 분야 측근들과 미팅을 가졌다.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참석했다. 이날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미국 철강기업 CEO들과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었다.

므누신과 콘은 트럼프를 설득하려 했다. 콘은 철강이나 알루미늄 같은 수입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해서는 안 된다고 재차 설명했다. 그는 지난 몇 개월 동안 관세 부과가 타 국가와의 ‘무역전쟁’을 촉발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이는 미국 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해왔다. 관세 부과 계획을 철회시키려 했던 것이다.    

반대쪽에는 이른바 ‘무역 매파’가 있다. 윌버 로스 상무장관, 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이다. 이들은 중국 같은 국가들에서 수입되는 값싼 제품들이 미국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이건 대선 캠페인 당시 쇠락한 제조업 지역 유권자들을 사로잡았던 구호 중 하나이기도 했다.    

ⓒBRENDAN SMIALOWSKI via Getty Images

 

그러나 ‘무역 매파’들의 주장은 콘과 존 켈리 비서실장 등에 의해 백악관 내에서 위축되고 억제되어 왔다. 한미FTA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를 폐기하겠다던 트럼프를 성공적으로 막아세웠던 것도 바로 콘 같은 사람들이었다. 콘은 전날 켈리에게 트럼프가 관세 부과를 강행하면 사퇴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NYT는 전했다.  

목요일 아침 미팅에 참석했던 다른 백악관 측근들은 일단 안심했다. 트럼프가 ‘사고‘를 치지 않고 무난하게 철강 CEO들과의 간담회를 치를 것이라고 믿었다. 오판이었다. 이날 정오쯤, 트럼프는 예정에 없이 기자들을 간담회장에 불렀다. 이어 트럼프는 작심한듯 ‘폭탄 선언’을 했다. ”다음주”에 관세 부과에 서명하겠다고 선언한 것.

″그들(철강 기업과 알루미늄 기업들)은 우리나라의 나쁜 정책, 나쁜 무역협정에 의해 불공평한 대접을 받아왔다. 다른 나라들로부터 끔찍한 대접을 받아왔는데 그들을 제대로 대변해주는 이도 없었다. (...)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나른 나라들로부터 얼마나 나쁜 대접을 받아왔는지 전혀 모른다. 

(...) 따라서 우리는 되돌릴 것이고, 비교적 급격하게 되돌릴 것이고, 관세를 부과할 것이다. 다음주에 서명을 하겠다. (...) 두 부서는 서둘러서 모든 걸 다음주까지 끝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철강 수입품에 대한 관세, 알루미늄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매길 것이다. 여러분들은 엄청 많은 좋은 일들이 벌어지는 걸 보게 될 것이다. 여러분들의 회사가 성장할 것이다.

(...) 철강에는 25%다. 알루미늄에는 10%다. 이것(관세 부과)은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다.” 

WP에 따르면, 로스를 비롯한 ‘무역 매파‘들은 반대파들을 피해 따로 트럼프와 만나 자신들이 준비한 자료를 보고하며 관세 도입을 주장했다. ‘국가안보’라는 명분을 댈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트럼프도 이에 끌렸다. 저가 수입품들이 미국 제조업을 무너뜨렸고, 이에 ‘보복’하려면 관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에 설득당했다.

트럼프로서는 정치적 이유도 있었다.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라고 믿는 지역의 유권자들이 더 많은 조치를 요구한다는 보고를 최근 몇 주 동안 측근들로부터 전달 받기도 했다. 트럼프는 자신이 큰 격차로 이겼던 지역에서 공화당 후보들이 고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WP가 인용한 한 관계자는 전했다. 

존 켈리 비서실장.
존 켈리 비서실장. ⓒChip Somodevilla via Getty Images

 

‘Free-fall’

트럼프 정부 초기 백악관의 ‘카오스’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비서실장도 모르는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제 집 드나들듯 대통령 집무실을 들락거렸고, 담당부처 장관도 모르는 출처불명의 문건을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트럼프에게 전달하곤 했다.  

여기에 ”약간의 체계성”을 도입한 인물이 바로 존 켈리 비서실장이다. 해군 장군 출신인 그는 백악관에 질서와 업무체계를 도입하며 ‘웨스트윙의 어른‘으로 묘사되어왔다. ‘비선’ 채널을 차단하고, 모든 보고나 결재서류가 정해진 공식절차에 따라 진행되도록 한 것. 

트럼프는 그런 켈리를 신임하면서도 불편해했다. NYT는 지난 주말 장문의 기사에서 트럼프가 ‘자신을 관리하거나 통제하려는 이들을 예외없이 내쫓아왔다’고 소개하며 두 사람의 ‘최신판’ 불화설을 조명했다.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고문과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도 자신들의 행동반경을 제한하는 켈리와 갈등을 빚어왔다. 

이 때문에 백악관 안팎에서는 켈리 경질설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에는 켈리의 입지를 더 좁아지게 만든 사건도 줄줄이 벌어졌다. 가정폭력 의혹에 휩싸인 자신의 ‘오른팔’ 롭 포터 선임비서관을 두둔했지만 끝내 그가 사임한 것.   

존 켈리 비서실장,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존 켈리 비서실장,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Kevin Lamarque / Reuters

포터는 트럼프의 ‘문고리 권력’으로 불렸던 호프 힉스 백악관 공보국장과의 불륜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했다. 트럼프의 가장 오래된 측근 중 하나인 힉스도 결국 사퇴했다.  

포터의 사퇴는 또다른 차원에서 문제를 키웠다. WP와 NYT는 사임한 포터가 무역 정책 분야에서 일종의 ‘조정자’ 역할을 했왔다고 소개했다. ‘화끈한 한 방’을 선호하는 백악관 내 비선조직에 맞서 여러 의견을 조율·중재함으로써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본능을 제어해왔다는 것.

‘무역 매파’들은 켈리의 백악관 내 입지가 좁아지고 포터가 사라진 틈을 파고들었다. 자신들의 의제를 관철시킨 것이다. 백악관의 질서는 다시 무너져내렸다. 상원의원 존 튠(공화당, 사우스다코다)은 ”이 정부에는 기준이 되는 운영체계가 없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무질서와 혼란은 트럼프가 전날(2월28일) 느닷없이 총기 규제 방안을 내놓은 사건에서도 드러났다. 트럼프는 이날 공화당·민주당 의원들과 간담회에서 ”종합적인 총기 규제안이 필요하다”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공화당 대통령의 입에서 나올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발언이었다. 

ⓒThe Washington Post via Getty Images

 

WP에 따르면, 애초 백악관은 의회에서 통과될 수 있을 ‘온건한’ 대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내용도 마련됐고, 곧 이를 공개할 계획이었다. 트럼프는 ‘더 강한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의회 담당 수석보좌관 마크 쇼트를 비롯한 몇몇 측근들은 지지층들이 반발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민주당이 제안한 거의 모든 총기 규제안을 수용하는 듯한 말을 하면서 이와 동시에 공화당 의원들을 조롱하다시피 했다. ”왜 (총기규제를) 못하는 줄 아는가? 당신이 전미총기협회(NRA)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같은당 소속인 패트릭 투미 상원의원에게 했던 말이다.

모두를 혼란에 빠뜨린 이 소동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다음날(1일) 밤, NRA의 수석 로비스트 크리스 콕스는 트럼프가 전날 자신의 총기규제 관련 발언을 철회했음을 시사했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트럼프,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가진 ”정말 좋은 미팅” 결과를 소개하면서다.

″오늘 밤 대통령 & 부통령과 정말 좋은 미팅을 가졌다. 우리 모두는 안전한 학교, 정신 건강 개혁을 원하고, 위험한 사람들이 총을 갖지 못하도록 하길 원한다. 대통령 & 부통령은 수정헌법 2조를 지지하고, 강력한 정당한 법 절차를 지지하며, 총기 규제를 바라지 않는다. #NRA #MAGA”

‘예측불가’라는 말로는 트럼프의 예측불가능성을 다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건 백악관 측근들 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다. 예측되기를 거부하는 이런 트럼프를 상대해야 하는 다른 국가 정부의 사정도 만만치 않다. 특히 어떻게든 미국과 함께 북핵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우리에게도 이건 꽤나 음울한 신호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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