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진정한 속죄란 자신의 기억을 외면하지 않는 것

"거짓말을 할 때면 그것이 거짓말임을 정확히 인식한다”

ⓒhuffpost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 <마더나이트> 속 주인공 하워드는 나치 부역자이자 동시에 미국 첩보원이다. 하워드의 나치 부역 행위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수많은 유태인을 가스실로 보내는데 한몫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자신의 죄를 스스로 고발하고 이스라엘에서 전범 재판을 받게 된다. 하지만 하워드를 포섭했던 미군 장교가 하워드의 신분을 확인해주는 바람에 하워드는 전범 재판을 받지 않고 풀려난다. 하워드는 말한다.

“이렇게 해서 나는 다시 한 번 자유의 몸이 되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하니 구역질이 난다.”

‘그 생각’은 아무리 첩보의 일환이었다고 하더라도 나치의 만행에 가담했던 자신의 죄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하워드의 양심이 아닐까. 하워드는 자신을 심판하지 않는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ImagineGolf via Getty Images

 

‘속죄’란 과연 무얼까. 그럴싸한 사과문이나 “모든 걸 내려놓겠다”는 말 따위는 속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와 같은 속죄는 속죄하는 자기 자신을 포장하는 수단일 뿐이다. 침통한 표정으로 “자숙하겠다”면서 여론이 잠잠해지길 기다렸다 상대방을 무고죄로 고발하는 것도 속죄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하워드처럼 법의 심판을 자처하거나 목숨을 끊는 것만이 속죄라는 얘기가 아니다. 하워드는 어쩌면 목숨을 끊기 전에 이미 속죄했다.

“나는 아이히만과 나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아이히만은 병원으로 가야 할 사람이고 나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만든 법에 따라 처벌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략)

내 경우는 (명령을 의심 없이 따랐던 아이히만과) 다르다. 나는 거짓말을 할 때면 항상 그것이 거짓말임을 인식하고, 누군가가 내 거짓말을 믿을 때 그로부터 나올 잔인한 결과를 예상할 수 있으며, 잔인함이 나쁘다는 것을 안다. 나는 신장결석이 소변으로 빠져나올 때 그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처럼, 거짓말을 할 때면 그것이 거짓말임을 정확히 인식한다.”

하워드는 자신이 한 일로 인해 얼마나 큰 희생이 있었는지 살면서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았다. 얼마든지 구국의 영웅 행세를 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기억으로부터 내내 자유롭지 못했다. 말하자면 속죄는 자신의 기억을 외면하지 않는 것,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참, 속죄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빠졌다. 그 어떤 경우에도 용서를 기대하지 말 것. 내가 아는 속죄는 그것뿐이다.

앞으로 사과문 쓰실 분들께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봐... 이 얘기가 어렵다면,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한마디를 참고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언제나 진실을 말해라. 그러면 당신이 말한 것을 애써 기억할 필요가 없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미투 #MeToo #사과 #속죄 #마더나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