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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3월 02일 10시 12분 KST

죽어서도 외로운 ‘17번 화장로’…아무도 울어주지 않았다

그들의 고단했을 인생을 기억해주는 이는 없었다.

고독사를 위한 권리장전 ①

누구도 울지 않는 죽음

삶과 죽음의 의미는 주변인들의 추모에 따라 갈린다. 어떤 이는 누군가의 기억으로 되살아나고, 어떤 이는 잊힌 채 사라진다. 가족과 사회에서 고립된 채 홀로 죽어가는 사람들, 그들의 죽음은 ‘악취’로 기억되고 곧 잊힌다. 외로운 삶만큼이나 고독한 죽음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한겨레>가 고독사 전문 청소업체와 동행해 그들의 외로운 삶과 죽음의 흔적을 취재했다.

지난 1월19일 서울시립승화원 16번 화로 앞 추모공간에 종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렸다. 유족과 지인 30여명이 화장하는 내내 흐느꼈다. 서로를 안고 토닥이면서 슬픔을 공유했다. 이어 17번, 18번 화로에 관이 들어가고 화장이 시작됨을 알리는 초록색 불이 켜졌다. 숨진 뒤 며칠 만에 발견된 ‘고독사’ 주검들이었다. 화로 앞 텅 빈 추모공간이 이들의 외로운 삶을 짐작하게 했다. 그들의 고단했을 인생을 기억해주는 이는 없었다. 숨을 거두는 순간 홀로였던 그들은 육신이 사그라드는 찰나까지도 혼자였다.

지난달 19일 오전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생전에 고 박기리씨를 도왔던 은평주거복지센터 직원이 영정과 위패를 들고 있다. 고양/박종식 기자 

17번 화로에 몸을 누인 박기리(64)씨는 1월5일 서울 은평구 엘에이치(LH)임대주택 빌라 4층에서 발견됐다. 검안의는 그가 숨을 거둔 지 2주 만에 발견된 것으로 판단했다. 발견 당시 박씨는 전기장판 위에서 팔과 다리를 벌린 채 누워 있었다. 색이 바랜 흰 티와 회색 내복바지 속 온몸이 부풀어 있었다. 부패된 주검에서 흐른 체액이 이부자리에 검은 자국을 남겼다. 그나마 그의 주검이 온전한 상태로 발견된 이유는 집 안을 가득 채운 냉기 덕분이었다. 1월 말 박씨의 집에 도착한 12월치 도시가스 비용은 1만5092원이었다.

박씨의 죽음이 2주 만에 알려진 건 옆집에 사는 이정하(45)씨의 신고 덕이었다. 이씨는 박씨가 이사 온 지난해 한번 인사를 했던 이웃이었다. 지난해 12월 말에 배달된 정부미가 며칠째 집 앞에 놓여 있는 걸 이상하게 여긴 이씨가 박씨의 집을 살폈다. 문틈으론 불빛이 보였지만 고지서는 날이 지날수록 쌓였다. 며칠 전부턴 복도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 이씨는 주민센터에 신고했다.

박씨는 2015년 1월부터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난 박씨는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자랐다. 서울에 올라와선 변변한 직업을 구하지 못했다. 뒷골목 고시원을 전전했다. 외로운 인생을 나눌 친구는 없었다. 술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조건은 됐으나, 보증금으로 내야 할 50만원이 없었다.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해 겨울 박씨는 술에 취해 걷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하고 받은 합의금으로 지난해 2월 임대주택에 겨우 입주할 수 있었다. 아마 그의 생애 처음 입주한 번듯한 거주지였을 것이다. 그가 남긴 유일한 목돈인 보증금 50만원은 모두 본인의 장례 비용에 쓰였다.

지난달 17일 오전 서울 은평구 원룸의 고독사 현장에서 서울은평지역자활센터 소속 자활근로 노동자들이 청소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고독사는 ‘악취’로 기억된다. 1월17일 서울은평지역자활센터 클린복지팀원 7명과 박씨의 집을 찾았다. 서울 은평구청은 고독사한 사람들의 유품을 정리해주는 사업을 2015년부터 민간단체인 서울은평지역자활센터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박씨의 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썩은 내가 진동했다. 마스크를 썼지만 현관문 신발장에 들어서자마자 발길을 돌려 뛰쳐나왔다. 역한 냄새에 절로 토악질을 했다. 대여섯평쯤 되는 집에 가전제품이라곤 누렇게 색이 바랜 237리터 소형 냉장고와 세탁기, 24인치 브라운관 텔레비전과 전기밥솥, 선풍기 두대뿐이었다. 그의 집은 기자의 집과 같은 골목에서 150m가량 떨어져 있었다. 고독사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유품 정리는 쓰레기 수거에 가까웠다. 큰 종량제 봉투에 박씨가 사용했던 물건들이 담겼다. 주검과 닿았던 이불 등은 별도의 폐기물 봉투에 담겼다. 폐기물은 소각 처리한다. 뜯지 않은 휴지와 팬티 넉장이 쓰레기 봉투로 들어갔다. 재활용품을 포함해 100리터짜리 쓰레기 봉투 15개가 나왔다. 옷·식기·철제류는 따로 모아졌고, 컴퓨터 없이 놓여 있던 컴퓨터 책상은 망치에 부서졌다. 음식물 쓰레기도 10리터짜리 봉투로 4개가 나왔다.

김창원(56) 서울은평지역자활센터 클린복지팀장은 “(유품 정리 전) 열흘 동안 두차례 소독약을 뿌리는 등 방역을 하고 환기했지만 아직도 냄새가 난다”며 “여름엔 악취가 하도 심해 얼굴 피부까지 따가울 정도”라고 말했다. 집 앞에 폐기물을 내놓으면 이웃들로부터 냄새 난다고 민원이 쏟아지기도 한다.

박씨와 달리 가족이 있던 이창기(가명·57)씨도 고독한 죽음의 냄새를 남겼다. 9남매 중 막내였던 이씨는 1월20일 사망한 지 3~4일 만에 발견됐다. 위로 6남매는 모두 죽었고, 작은누나와 형을 놔둔 채 막내인 이씨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며칠째 연락이 안 되자 걱정이 된 이씨의 누나가 동생의 주검을 발견했다. 이씨는 발견 당시 바닥에 앉은 채로 굳어 있었다. 옆에는 피를 토해놓은 비닐봉지와 며칠 전 누나의 부탁으로 지인이 이씨에게 사다 준 죽 한그릇이 포장이 뜯기지도 않은 채 놓여 있었다. 이씨의 손엔 20여년 전 아내와 이혼하면서 헤어진 아들의 증명사진이 꼭 쥐여 있었다. 이씨가 “아들이 보고 싶다”고 말해 누나가 구해다 준 증명사진 두장 가운데 한장이다. 나머지 한장은 이씨의 침대 머리맡에 붙어 있었다.

1월23일 유품 정리와 청소를 위해 찾은 이씨의 집에는 반지하를 빠져나가지 못한 냄새가 떠돌았다. 사망한 지 며칠 안 돼 발견된 터라 냄새를 참긴 어렵지 않았다. 이씨는 2년 전부터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5만원짜리 반지하 월세방에 살았다. 그 전까진 노모와 형과 함께 살았다. 형도 이씨처럼 젊을 적에 이혼했다. 그 충격으로 정신질환을 앓았다. 노모가 2년여 전 돌아가시고 자녀가 없던 형은 꽃동네로 들어갔지만, 이씨는 헤어진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꽃동네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씨는 아내와 이혼한 뒤 아들을 본 적이 없었다.

이씨는 알코올 중독으로 고혈압 등 10여가지 합병증을 앓았다. 최근엔 몸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2주에 한번씩 이씨에게 반찬을 가져다주던 누나가 이씨가 만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씨의 누나는 가족 눈치 보지 않고 이씨를 돕기 위해 몇달 전부터 육아도우미를 시작했다. 이씨는 누나가 보내주는 돈과 기초생활수급비로 월세를 냈다.

이씨는 숨지기 며칠 전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김밥이 너무 먹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밥 한줄 때문에 동생에게 달려갈 수 없었던 누나는 지인에게 김밥 좀 사다 주라고 부탁했다. 그 지인은 김밥 대신 죽을 사다 줬다. 동생 이씨가 김밥을 소화시키지 못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누나는 “내가 김밥을 사들고 왔어야 했다”고 오열했다. 누나는 이씨의 마지막 길이라도 외롭지 않도록 3일장을 치러줬다. 빈소를 차린 첫날 상조회사에서 준비해준 조문객맞이용 음식은 고스란히 남았다.

19일 오전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울시립승화원에서 고 박기리씨의 화장이 끝난 뒤, 생전 박씨를 도왔던 은평주거복지센터 직원이 유골함에 손을 얹고 추모하고 있다. 고양/박종식 기자

숨진 지 2주 만에 발견된 박씨는 그 2주 뒤인 1월19일 홀로 화장됐다. 박씨의 주검을 싣고 온 승합차엔 박씨 말고도 외롭게 숨진 주검 한구가 더 실려 있었다. 주검을 운구할 가족도 없었던 이들은 바로 들것에 실려 나란히 불구덩이로 옮겨졌다.

박씨 옆자리 18번 화로에 누운 서현규(가명·52)씨는 지난해 12월21일 숨진 채 발견됐다고 한다. 서씨는 따로 살고 있는 가족도 있었지만, 형편이 어려운 부모가 주검 인수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렇게 서씨도 무연고자가 됐다. ‘고인의 영혼을 모시는 엄숙한 공간’이라는 팻말이 붙은 유리 너머로 박씨와 서씨는 제 삶만큼 외로운 죽음의 마지막 길을 떠났다.

박씨와 서씨가 재로 변하는 1시간30분 동안 서울시립승화원 17호실에선 약식 장례가 치러졌다. 장례식엔 고독사의 흔적을 지우고 장례를 치러주는 시민단체 ‘나눔과나눔’에서 온 3명, 은평주거복지센터 직원 2명, 추도식을 진행하는 목사, 기자 2명이 전부였다. 지난해 여름부터 매주 토요일 무연고자의 장례식에서 봉사하는 이경동(42)씨가 말했다. “오늘처럼 사람 많은 건 처음 봐요. 보통 나눔과나눔에서만 2~4명 오는 게 전부거든요. 다른 빈소랑은 달라요. 무연고자 장례식에선 아무도 울지 않아요.”

그래도 이 둘은 운이 좋은 편이다. 무연고자들은 대체로 장례식 없이 화장 절차만 거친다. 애도의 시간은 없다. 서울시는 2015~2017년 약 3년간 나눔과나눔에 위탁해 무연고 주검의 장례식을 치렀지만 지금은 사업이 끊겼다. 이제는 구청에서 따로 공문을 보내올 경우에만 나눔과나눔이 고독사의 수습과 장례를 맡는다.

은평주거복지센터 전정례 상담가가 조사를 읊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혼자인 무연고 사망자의 외로움을 바라보면 2018년 문명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합니다. (중략)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았을 당신을 국화꽃 한송이 없이 보내드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고인이 걸어온 긴 외로움의 여정을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너무나도 늦었지만 이제 가야만 하는 여행길은 덜 외로웠으면 합니다.” 박씨와 서씨 유골은 무연고 추모의집에 안치됐다. 가로·세로·높이 약 20㎝ 상자에 담겨 표지도 없는 서랍에 10년간 보관되는 곳이다. 가족이 나타나지 않으면 이들의 유골은 폐기된다.

지난달 17일 오전 서울 은평구 원룸에서 고독사한 박기리씨의 생전 모습이 담긴 휴대폰을 은평주거복지센터 직원이 들고 있다. 박종식 기자

박씨의 장례식 다음날 뒤늦게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한 박씨의 유일한 지인 장기원(58)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금이라도 형님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무연고 추모의집은 추모 시설이 아니다. 그저 유골을 10년간 보관만 하는 곳이다. 기자는 무연고 주검의 처리 절차를 알린 뒤 “지금으로선 그분을 애도할 공간이 없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고독사’는 고령층 1인 가구가 급증하는 등 사회 변화로 외로운 죽음이 잇따르면서 생겨난 용어다. 사회복지학계와 정부·지방자치단체 등에서는 대체로 ‘혼자서 임종을 맞이하고 사망 뒤 일정 시간이 지나 발견되는 죽음’을 고독사로 부른다. 법률 용어인 ‘무연고사’, ‘독거사’ 가운데 사회적 고립 상태에서 홀로 죽어 방치된 사례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