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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코스비’ 사례로 미투 운동의 결말을 살펴봤다

한국 미투 운동과의 유사점, 그리고 차이를 살펴봤다.

ⓒGilbert Carrasquillo via Getty Images

미국의 코미디언 빌 코스비의 성폭력을 폭로한 여성들이 지난 30여년 동안 겪은 수난사를 보면, 미투 운동으로 대표되는 한국 사회의 성폭력 폭로와 이후의 연대도 쉽지 않은 길을 걸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선 1980년대부터 30여년에 걸쳐 60여명의 여성이 코스비에게 성폭행 및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성폭행으로 기소된 형사 사건은 단 한건이다. 이마저도 최초 재판이 무평결 심리(배심원단이 교착 상태에 빠져 유무죄를 가리지 못한 재판)로 끝났다. 새로운 재판이 잡혀 있지만, 배심원단이 유무죄를 판단하는 미국의 사법제도 아래서 과연 코스비가 형사 처분을 받을지는 알 수 없는 상태다.

<한겨레>가 ‘미국의 아빠’로 불려온 빌 코스비와 싸워온 여성들의 역사를 정리하고 한국의 미투 운동과의 유사점, 그리고 차이를 살펴봤다.

ⓒEDUARDO MUNOZ ALVAREZ via Getty Images

부정과 은폐

폭로는 부정당하고 은폐됐다.

빌 코스비를 상대로 최초의 소송을 제기한 여성의 증언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미국 필라델피아 템플 대학교 농구부의 작전 감독인 안드레아 콘스탠드는 2004년 1월 13일 저녁 8시 45분께 직장 문제에 대해 상담하기 위해 평상시 인생의 멘토로 신뢰해 온 코스비의 집을 찾았다. 코스비는 고민에 싸여있는 그녀에게 와인을 따라주고 “세 친구”이라며 세 개의 파란색 알약을 들이밀었다. “피로를 풀어줄 것”이라는 말에 그녀는 와인과 함께 알약을 삼켰다. 얼마 있지 않아 다리에 힘이 풀리고 사지가 말을 듣지 않았다. 코스비가 자신의 가슴을 만지는 게 느껴졌으나 저항할 수 없었다. 콘스탠드의 경찰 진술서를 보면, 그녀는 다음날 새벽 4시 옷이 반쯤 벗겨진 채 잠에서 깼다.

2005년 1월 콘스탠드의 신고로 지역 경찰이 수사를 시작했으나 불과 한 달 뒤인 2월 22일 몽고메리 카운티의 검사는 증거 불충분으로 수사를 중지했다. 그러나 콘스탠드가 2005년 3월 코스비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 소송은 달랐다. 이 소송에는 13명의 ‘익명의 증인’이 코스비에게 유사한 방식으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코스비는 범행을 인정하진 않으면서도 해당 사건이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았다. 결국 거액의 합의금을 주고 콘스탠드와 비밀 유지 각서를 써 사건을 은폐했다.

은폐는 다양한 층위에서 이뤄졌다. 1969년 코스비가 준 술을 마시고 몸을 가누지 못한 상태에서 구강성교를 강요당한 조앤 타시스는 1980년 한 언론인에게 이러한 사실을 폭로했으나, 기사화를 거절당했다고 주장했다.

코스비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단역으로 출연했던 배우 라셸 커빙턴은 2014년 “코스비가 당시 스무 살이던 자신의 손을 잡아 자기 성기 쪽으로 가져갔으며 사흘 뒤 이를 경찰에 신고했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국의 경우도 비슷했다.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사실은 검찰 내에서 은폐 당할 뻔했기 때문이다. “2010년 10월30일 한 장례식장에서 법무부 장관을 수행하고 온 당시 법무부 간부 안태근 검사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서 검사는 이후 <제이티비시>(JTBC) ‘뉴스룸’에 출연해 “검찰 내에 성추행이나 성희롱뿐 아니라 성폭행을 당한 사례도 있었지만, 비밀리에 덮였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서 검사는 동료 검사들로부터 ‘너 하나 병신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지금 떠들면 그들은 너를 더욱 무능하고 이상한 검사로 만들 것’이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했다.

ⓒYves Herman / Reuters

연대의 힘이 의혹의 불씨를 살렸다

힘없는 목소리는 묻힌다. 콘스탠드의 재판에서 증언을 약속했던 이들이 언론에 코스비의 성폭행을 폭로했으나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해당 재판에서 ‘다섯 번째 익명 증인’으로 증언을 약속했던 여성 ‘베스 페리에’는 <필라델피아 데일리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984년 코스비가 주는 커피를 마신 뒤 자신의 차 뒷좌석에서 브래지어가 벗겨진 채 깨어났다고 밝혔다.

변호사인 타마라 그린은 모델로 활동하던 1970년대에 코스비로부터 두 개의 알약을 받아먹고 잠든 상태에서 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그린은 당시 19살이었다. 그러나 공소시효가 지나 범죄 수사는 없었고,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다. 이후 근 10년 동안 코스비는 여전히 미국 가부장의 상징으로 남았다. 코스비의 관련 의혹이 다시 불거지기 직전인 2013년까지의 기사를 보면, 이들이 밝힌 사실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잔잔한 파문만을 일으키던 성 추문의 진실이 다시 드러난 건 우디 앨런 때문이다. 우디 앨런이 미아 패로우와 공동 입양한 딸 딜런 패로우는 2014년 2월 1일 <뉴욕타임스>에 게재한 공개서한을 통해 자신이 7살 때 입양된 뒤 앨런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 글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자 <고커>는 “빌 코스비 역시 여러 건의 성추행 의혹이 있었다”며 10년 전의 의혹을 자세히 보도했다. <뉴스위크> 역시 6일 뒤인 2월 7일 ‘유명인의 성추행 의혹은 우디 앨런만 있는 게 아니다’라며 과거 코스비 사건의 증인으로 거론된 타마라 그린과의 인터뷰를 게재했다.

ⓒNew York Magazine

<뉴스위크>는 5일 뒤인 2월 14일에는 역시 같은 사건에 익명 증인으로 참가했던 바버라 보먼과의 인터뷰를 게재하기도 했는데, 18살 때 술을 탄 약을 먹고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보먼은 이 인터뷰에서 “콘스탠드를 거짓말쟁이에 창녀로 몰아가는 것을 보고 분노해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밝혔다.

2015년 안드레아 콘스탠드는 “최근 코스비가 제기된 의혹을 부정하는 과정에서 2005년에 자신과 맺은 비밀유지 합의를 어겼다”며 비밀유지 서약을 무효로 하는 서류를 법원에 제출했다. 콘스탠드의 비밀유지 서약 무효화와 함께 2005년 콘스탠드 재판의 증언 녹취록이 언론에 공개되었는데, 해당 증언록에는 “성폭행을 목적으로 최면성 진정제 퀘일루드를 사용했느냐”는 질문에 코스비가 “그렇다”고 답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2014년과 2015년을 거치며 코스비에게 성폭행이나 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의 숫자는 59명으로 늘었다. 피해 여성들이 용기를 내 속속 코스비의 성폭력을 고발하면서 오랜 기간 묻혀 있던 그의 범행이 공중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물론 대부분 공소시효가 지난 시점이긴 했지만 말이다.

한국의 미투로 대표되는 연대 폭로 역시 특정한 계기를 통해 폭발적인 힘을 얻었다. 2016년 9월 김현 시인이 “어디서 뭘 배웠기에 문단에도 이렇게 XX 새끼들이 많을까요?”라며 남성 문인들이 여성 문인들을 비하하거나 성적으로 대상화한 사례를 열거한 바 있다. 이후 성폭력에 관한 광범위한 폭로가 ‘#문단_내_성폭력’, ‘#미술계_내_성폭력’, ‘#영화계_내_성폭력’의 해시태그를 타고 들불처럼 번졌다. 이후 잠시 소강기를 맞은 미투 운동의 불씨를 되살린 건 서지현 검사의 폭로였다.

가해자의 거짓말에 분노한 제3의 피해자가 등판해 불씨를 살리기도 한다. 지난 26일 배우 오달수 씨가 “30년 전, 20대 초반으로 돌아가 차분히 스스로를 돌이켜 봤지만,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없다”며 의혹을 부정하는 공식 입장문을 내고 작품 활동에서 하차할 뜻이 없다고 밝히자 다수의 여성이 연대를 위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최초에 댓글을 통해 오 씨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가 익명으로 JTBC 뉴스룸에 출연해 “너무나 고통스럽고 죽어서라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침묵하는 건 괜찮은데 ‘그런 일이 없었다’고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튿날인 27일에는 연극배우 엄지영 씨가 모습을 드러내고 JTBC 뉴스룸에 출연해 2003년 서울에서 있었던 오디션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 오달수를 만났다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Ted Thai via Getty Images

폭로자들을 향한 2차 가해

1980년대 미국 내셔널브로드캐스팅컴퍼니(NBC)의 인기 시트콤 <코스비 가족>으로 스타덤에 오른 뒤 오랜 기간 최정상 스타로 군림해온 코스비를 무너뜨리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미국의 아빠’로 구축한 그의 자상한 이미지가 완전히 깨지기까지는 무척 오랜 시간이 흘렀다.

폭로가 쏟아지는 와중인 2016년 1월 1일 코스비가 오랜 침묵을 깨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친구와 팬들에게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글을 올리자 3만2000명이 ‘좋아요’를 누르며 화답했다. 2300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지금 나오는 거지 같은 야바위를 믿지 않아요. 빌 코스비 만세”, “우린 당신을 사랑해요. 그들이 전설을 죽일 순 없어요”라는 내용의 댓글이 선호도가 가장 높았다.

한 인터넷 미디어는 “사람들이 코스비에 대한 의혹을 믿지 않는 이유는 코스비가 강간범인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성폭행범이라는 의혹을 받아들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부정’이다”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명인 가운데 다수가 그와 가까운 관계였다. 배우 데이먼 웨이언스는 “코스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얘기는 믿지 않는다”며 “강간할 만하게 생기지 않았다”라는 식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알 켈리는 “피해자들이 너무 늦게 나왔다”며 “그건 이상하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스테이시 대시는 “1986년 19살 때 빌 코스비와 함께 일한 적이 있는데 그는 완벽한 신사였다”고 밝혔다.

우피 골드버그는 에이비시(ABC) 방송의 쇼에서 수차례 “코스비에게 유죄를 선고한 사람은 없고 체포된 적도 없다”며 “가장 중요한 건 유죄로 입증될 때까지는 무죄. 그게 법이다”라고 밝혔다.

ⓒNetflex

이 밖에도 일련의 과정에서 폭로자들을 향해 2차 가해가 쏟아졌다. “가해자들이 돈을 뜯기 위해 가짜 의혹을 만들고 있다”는 식의 비난이 대표적이다. 당시 폭로 여성 가운데 일부를 대변한 이는 미국의 유명 변호사 글로리아 올레드였는데, 인기 토크쇼의 호스트인 지미 키멜은 “(폭로자들이 손해배상을 못 받는 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며 “대부분은 악마와 같은 편인 글로리아 올레드가 변호를 맡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Netflex

피해자들을 돈을 노리는 ‘꽃뱀’으로 몰아가고,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의 신상에 주목하며, 무죄 추정의 원칙을 거론하며 의혹 제기의 목소리를 비판하는 것은 한국도 비슷하다.

인터넷 게시판 등에는 가해자가 의혹을 인정하거나 사과한 뒤에도 “피해자 조사도 안 한 상태로 경찰서보다 언론에 먼저 알려져 혐의 입증도 안 됐는데 범죄자 수첩처럼 이름 얼굴 신상까지 털렸다”며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을 옹호하는 댓글이 달린다.

한 남성 편향 커뮤니티에서는 “미투 운동은 대 꽃뱀 시대의 막을 열 수도 있다”는 내용의 글이 3만4000번이나 조회되기도 했다. 이 글쓴이는 “2000년에 25살의 여대생이 주병진 씨가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주장해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연예인 인생이 끝났다”며 “알고 보니 주병진의 돈을 노린 계획범죄였는데 이번 미투 운동이 건강하게 정착되지 않으면 꽃뱀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된다”고 주장했다.

 

빌 코스비, 그 이후 

피해자들의 증언을 보면, 코스비는 1965년부터 2008년까지 43년에 걸쳐 성폭력을 저질렀다. 이 거대한 악행에 대한 판결은 아직 진행 중이다. 다만 59명의 여성이 제기한 의혹 가운데 기소된 사건은 2004년 안드레아 콘스탠드 건뿐이다. 그나마도 첫 재판이 무효심리로 끝났다.

해당 사건에서 12명의 배심원단 중 2명이 코스비의 성폭행 유죄 평결에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보도됐는데, 이는 다음 재판에서도 코스비의 유죄를 받아낼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미국 재판에서 ‘유/무죄’의 판단은 배심원단의 만장일치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절차 때문에 미국의 변호인과 검찰은 배심원단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배심원단 후보자의 인종, 직업, 성별, 과거 발언 등 다양한 사회적 맥락을 살피고 눈치 싸움을 해가며 배심원 거부권과 선정권을 적절하게 사용한다. 즉, 다음 재판에서도 코스비의 변호인단이 12명의 배심원단 중 끝까지 유죄에 반대할 단 한 사람의 배심원만 골라낼 수 있다면 또다시 무효심리가 선언된다. 다음 공판 예정일은 2018년 4월 2일이다.

그러나 코스비를 향한 연대가 남긴 전리품은 상당하다. 네바다 주는 이 사건 이후 성폭행에 대한 공소시효를 기존의 4년에서 20년으로 늘리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콜로라도 주 역시 기존 10년의 공소시효를 20년으로 늘렸으며 이 과정에서 피해 폭로자와 변호사 글로리아 올레드가 큰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오리건 주는 일부 성폭력 범죄에 있어 공소시효가 지나더라도 확실한 증거가 발견되면 검사가 기소할 수 있는 예외조항을 마련했고, 캘리포니아 주는 중대 성범죄의 경우 아예 공소시효를 없애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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