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젊은이들, 급진화하다

과연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일까?

ⓒhuffpost

최근에 학술세미나 참석차 잠깐 런던으로 갔다 온 일이 있었다. 다른 참석자들과 카페에서 점심을 먹고 대학 건물로 돌아가려 하는데, 엄청난 규모의 시위대가 길을 막고 있었다. 시위대의 구호를 자세히 들어보니 영국 공공의료체제를 무력화하여 은근슬쩍 사유화시키려는 움직임들을 반대하는 시위였다. 영국 현 우파 정권의 공공의료를 포함한 복지정책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야 나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고 시위자들의 공분에 전폭적으로 공감하고 있었는데, 일단 첫눈에 놀란 것은 시위대의 연령대였다. 내 앞의 길을 막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20대 초반의 대학생으로 보였다. 나중에 대학에 도착하여 그쪽 친구들에게 확인해보니 그날 시위에 10대 후반들도 적극 참여했다고 한다. 젊은이들의 시위 열기가 대단히 반가웠는데, 한 현지 동료의 다음과 같은 설명은 더 재미있었다. 

ⓒSimon Dawson / Reuters

이들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소위 밀레니얼들이다. 불안정 노동에 내몰린 경우가 많고 고등교육이 유료화된 시기에 대학에 다니느라 갚아야 할 학자 융자금이 엄청나다. 게다가 런던 집값이 천문학적이라서 병원까지 유료화되면 이들은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갈 것이다. 어느 특정 조직에 가입해 의식화된 거라기보다는 부득불 생활형 좌파가 된 아이들이다.

물론 ‘세대’만으로 특정 연령집단의 대표적인 사고의 틀이나 행동패턴을 다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거주지’부터 ‘계급’까지, 각종 변수들이 많다. 예컨대 최근까지 해마다 대다수의 실질소득이 계속 오르곤 해왔던, 유럽에서 경제적 상황이 가장 양호한 편에 속하는 노르웨이 같은 경우에는 젊은층의 급진화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젊은이들의 투표 경향은 대체로 그 부모 세대와 차이가 없다. 반대로 신자유주의로부터 훨씬 더 심한 공격을 받고 있는 영국의 경우, 18~24살 ‘투표 초년생’들이 상대적으로 급진적인 노동당의 코빈을 밀고 있는 가장 강력한 집단으로 부상했다. 계급 소속의 영향도 자명하다. 비교적 양극화가 덜 진행된 노르웨이라 해도, 이미 투표권이 있는 고교 3학년 학생들의 투표 경향은 투표자의 계급적 배경에 따라 분명하게 갈리곤 한다. 작년 총선에서 오슬로의 비교적 가난하고 이민자들이 많은 동부의 한 고교에서 40%의 재학생 투표자들이 적색당(공산당)을 찍는 신기록을 세웠지만, 부유한 학부모의 자녀만 다니는 소수의 사립고교의 경우는 적색당 지지율이 0%일 경우가 허다하다. 사회적 격차가 덜 큰 북구 사회라 해도 아이들은 대개 10대 중반쯤 되면 자신들의 계급적 소속과 이해관계를 아주 정확하게 파악한다.

그런데 상류·중상층을 제외한 산업화된 세계의 밀레니얼들의 상황과 성향을 분석해보면 중대한 ‘세대적 특성’들을 분명히 읽어낼 수 있다. 첫째, 밀레니얼들은 대개 평등 지향성이 강하며 수직적 관계를 대단히 불편하게 여긴다. 동성 결혼이나 대마초 합법화, 더 많은 이민에 보통 찬성하는 한편, 성추행을 비롯하여 불평등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개인 권리침해에 매우 민감하다.

둘째, 이전 세대보다 학력이 훨씬 좋은 밀레니얼들은, 신자유주의 광풍이 부는 지금 같은 시대에 이전 세대만큼 잘살기는 어렵다는 것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다. 미국에서 밀레니얼들이 가장 급진적으로 보이는 샌더스 후보에게 몰린 근원적 이유는, 그들의 평생 실질임금이 부모 세대에 비해 20%나 더 낮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데 동시에 미국의 밀레니얼들이 갖고 있는 학자금 융자, 즉 대학 시절에 진 부채의 총액은 약 3700억달러로 추산된다. 한국 1년 국내총생산의 약 4분의 1에 가까운 엄청난 금액이다. 대다수의 밀레니얼들이 평생 저임금으로 살면서 부채 상환에 허덕이며 내 집 마련에 커다란 어려움을 경험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 놓인 세대가 급진화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셋째, 밀레니얼들은 더 이상 체제를 신뢰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에 적대적인 것은 물론이고 자본주의 자체에 대해 아예 회의적이다. 프랑스에서는 청년 실업률이 21%나 되고 이탈리아에서는 35%나 되는 상황, 즉 젊은이들이 빚이 많은데도 비정규직 직장을 얻는 것조차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상황에서는 당연한 태도일 것이다. 하버드대 정치학 연구소가 재작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20대의 과반수는 자본주의를 믿지 않으며 차라리 (재분배 경제와 완전고용 보장 등으로 이해되는) 사회주의를 지향한다. 영국에서 밀레니얼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1968년을 전후한 시기에 이어서 2차대전 전후의 세계사상 두번째로 ‘사회주의’가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어가 됐다. 한데 1968년 세대와 달리 밀레니얼들은 이념형이라기보다는, 나의 런던 동료의 판단대로 생활형 좌파에 가깝다.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그 어떤 바람직한 미래도 발견하지 못해서 자본주의를 버리는 것이다. 

ⓒSimon Dawson / Reuters

위의 이야기는 과연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88만원 세대’, ‘3포세대’, ‘민달팽이 세대’(자기 껍질 없는 민달팽이처럼 자기 집이 없어 고시원이나 전월세를 전전해야 하는 젊은이들) 등은 바로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으로 미래를 빼앗긴 한국형 밀레니얼들이다. 저임금·고(高)부채·불안정노동과 주택 마련·육아의 어려움, 양극화에 대한 불만과 사회에 만연한 권위주의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제도권에 대한 불신을 한국 밀레니얼들이 해외 밀레니얼들과 그대로 공유한다. 흙수저보다 차라리 금수저들이 더 많이 가는 서울대의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도 79%나 되는 응답자들이 ‘양극화 해소’를 지향하는 반면, ‘경제 성장’을 선호하는 쪽은 20%에 불과하다. ‘고용 안정화’를 원하는 것이 78%라면 ‘노동유연성 확대’는 불과 21%다. 구미권 젊은이들과의 차이라면 아직도 ‘가족’이라는 보호막이 한국에 존재해 신자유주의 시대의 잔인함을 약간 덜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족 해체의 속도로 봐서는 이 차이도 머지않아 곧 상대화될 것 같다.

그렇다면 왜 다수의 한국 밀레니얼들이 구미권과 달리 사회주의 내지 사민주의, 그렇지 않으면 급진적 진보 등을 표방하는 조직에 유입되지 않고 있는가? 물론 교육과 매체 등을 통해서 젊은이들에게도 전수되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레드 콤플렉스의 영향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미국이나 영국보다는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는 훨씬 어려운 것이다. 거기에다 다수 젊은이들이 아예 연애할 여유도 없을 만큼 고강도의 학습과 아르바이트, 장시간 고난도 노동에 시달려 정치에 참여해볼 시간 자체가 부족하다. 그건 다 맞지만, 또 하나의 큰 문제는 국내 진보 조직들의 사회·문화적 보수성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밀레니얼들은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며 젠더 불평등 등에 매우 민감하다. 한국의 밀레니얼들도 전혀 예외는 아니다. 한데 다수의 국내 진보 조직들은 1980년대 분위기를 방불케 하는 위계질서와 ‘조직보위’ 위주의 논리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때 좌파 민족주의자들의 ‘비밀주의’나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이 많았으나 알바노조를 좌우했던 ‘비선 조직’에 대한 최근의 폭로를 보면 이런 경향들은 특정 이념성향과 거의 무관하다. ‘통일 제일주의’도 아닌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나 자율주의 내지 사민주의를 표방하는 조직도 그 안에서는 ‘자율’이나 ‘사회적 민주주의’와 전혀 무관한, 보스(들)를 정점으로 하는 서열의 논리로 움직일 수 있으며 성추행 등과 같은 일상적 인권 문제에 무감각할 수 있다.
한국의 밀레니얼들이 사회주의를 지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자면 한국의 급진 진보운동부터 밀레니얼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환골탈태해야 한다. 급진 조직들이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페미니즘 등을 실천하지 못하는 이상 밀레니얼들이 원하는 민주적이며 개방적인 사회주의의 모습을 그들에게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문제는 ‘옳은 이론’보다는 옳은 실천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뉴스 #사회 #국제 #병원 유료화 #학자융자금 #불안정 노동 #밀레니얼 #런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