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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시골마을 ‘히틀러 종’ 용광로행 모면

1934년 만든 이 종에는 “모든 것을 조국에 바쳐”, “아돌프 히틀러”라고 새겨져 있다.

ⓒThomas Lohnes via Getty Images

독일에서 나치를 찬양하는 것이나 나치와 관련된 상징을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런데 프랑크푸르트에서 남서쪽으로 80㎞ 떨어진 마을에는 나치의 만자 무늬와 히틀러라는 이름을 새긴 종이 버젓이 걸려 예식에 사용돼 왔다. 교회와는 특히 어울리지 않는 ‘히틀러 종’이 용광로로 가지 않은 이유는 뭘까?

700명 남짓한 주민이 사는 헤륵스하임 암 베르크(Herxheim Am Berg)의 개신교 교회에 이 종이 걸린 때는 나치가 지배하던 1934년이다. 나치의 만자 무늬가 뚜렷이 새겨져 있고, 상단에는 “모든 것을 조국에 바쳐”, “아돌프 히틀러”라고 써 있다. 독일이 나치의 흔적을 철저히 청소하는 사이에도 이 종은 지난 수십년간 15분마다 시간을 알리고 세례나 결혼식에 이용됐다. 

ⓒThomas Lohnes via Getty Images
ⓒThomas Lohnes via Getty Images

더구나 종교 의식에 이를 계속 쓰는 것에 일부에서는 경악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해 이 교회 오르간 연주자 지그리트 페테르스가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면서 ‘히틀러 종’의 운명이 전국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외신들도 이 조용한 시골 마을을 흔드는 논란을 전했다. 페테르스는 “아기가 세례를 받는데 ‘모든 것을 조국에 바쳐’라는 문구를 새긴 종이 울린다는 게 말이 되냐”고 <데페아>(DPA) 통신에 말했다. 독일의 유대인 단체도 격노했다. 부담을 느낀 교회는 지난해 9월부터 타종을 중단했다. 하지만 종을 용광로로 보내야 한다거나 적어도 문구와 문양은 긁어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박물관으로 보내라는 요구도 있었다. 새 종을 만들어주겠다는 제안도 들어왔다. 

ⓒThomas Lohnes via Getty Images

종을 지키려던 시장이 부적절한 발언으로 퇴임하는 사태도 빚어졌다. 롤란트 베커 전 시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종의 겉면을 긁어내면 소리에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하면서 “전체 그림을 봐야 한다. 물론 나치가 잔학행위도 했지만 (나치 시대에는) 우리가 아직도 쓰는 것들이 창안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나치 찬양 논란에 그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후임 시장 게오르그 벨커 역시 종을 지키려다 설화를 만났다. 그는 <아에르데>(ARD) 방송 인터뷰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서라도 ‘히틀러 종’은 종탑에 걸려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난 희생자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들은 유대인들뿐 아니라 독일 시민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렇다면 당시 유대인들은 독일 시민이 아니었냐”는 항의가 빗발쳐 사과해야 했다.

시비가 뜨거운데도 당국이 ‘히틀러 종’을 치우지 못한 것은 유물로 지정돼 나치 찬양 금지법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시의회는 철거 여부를 표결에 부쳐 지난 26일 10 대 3의 의견으로 존치를 결정했다. 타종도 재개하기로 했다. 대신 이 종의 의미를 설명하는 안내판을 설치하기로 했다. 시의회는 이 종이 “화해를 일깨우고 폭력과 불의에 반대하는 기념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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