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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월 23일 18시 21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2월 23일 18시 26분 KST

‘성추행 혐의’ 감태준, 한국시인협회장 선출에 비판 일어

‘성폭력 사건’으로 교수직에서 해임된 전력 때문이다.

한겨레

제자 성추행 혐의로 교수직에서 해임됐던 감태준 시인이 사단법인 한국시인협회 제42대 회장으로 선출돼 논란이 일고 있다.

1957년 설립된 한국시인협회는 국내 대표 시인들이 회원으로 가입돼있는 대표적인 문인 단체다.

감씨는 22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번에 협회장으로 추대되니까 그런 추문이 나온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당시 사건 관계자들은 “부적절한 인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감씨 선출을 두고 젊은 시인들을 중심으로 반대 의견이 확산하자, 협회 쪽은 일단 감씨에게 자진사퇴를 권고했다. <한겨레>는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했다.

뉴스1

2007년 ‘성폭행·성추행’ 폭로 나와 “상습적이었다”

사건은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7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 학생 ㄱ씨가 “감태준 교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며 감 교수의 해임, 정신적·물질적 보상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총장과 문예창작학과 교수진에게 제출했다.

당시 중앙대 대학원 신문 보도를 종합하면, ㄱ씨는 탄원서에서 “성폭행이 있은 뒤 감 교수는 (중략) 박사학위, 장학금을 미끼로 전화를 또 걸겠다고 저에게 말을 했고, 그 날 있었던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 것을 강요했고, 전혀 제자를 성폭행하고도 죄책감이 없이 앞으로 잘 해줄 테니 더 이상 없던 일로 무마하자는 태도에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라고 밝혔다.

ㄱ씨 사건이 알려지면서 감 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주장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당시 성추행 피해자로 학교 쪽에 탄원서를 제출했던 ㄴ씨는 “안 그래도 시인협회장 선출 소식을 듣고 최근 ‘미투’ 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모른 척해도 되는 건지 마음이 불편했었다”며 <한겨레>에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또 다른 피해자 ㄷ씨 역시 “(감씨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며 “시인협회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아예 (협회에서) 쳐내야 한다”고 말했다.

ㄴ씨는 2003년과 2007년 두 번 모두 뒤풀이 자리로 간 노래방에서 감씨에게 성추행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실 다른 교수들도 다 쉬쉬하면서 알고 있던, 정말 뿌리 깊은 습성이었다”며 “계속 그걸 모른 체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가 ㄱ씨가 폭로하면서 다른 사건들도 밝혀진 것”이라고 말했다.

“제가 노래하고 있으면 춤추는 척 와서 어깨동무를 하면서 가슴을 만져요. 손아귀 가득 움켜쥐고 슬쩍 주물러요. 2003년엔 너무 불쾌하고 황당해서 어찌할 줄 모르고 노래방을 나왔죠. 이후 휴학을 했다가 돌아왔는데 2007년 종강 파티 때 간 노래방에서 똑같이 그러는 거예요. (감씨를) 확 밀치고 마주 보고 노려보다 나왔어요. 가장 친한 동기에게 말했더니 ‘(그 교수) 손버릇 더러운 것 하루 이틀인 줄 아냐’라고 말하더라고요. 피해자가 계속 생기겠다 싶어서 지도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그 교수님은 (감씨에 대해) 문제 제기가 들어온 (비슷한) 사건만 대여섯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감씨가) 제대로 처벌받을 수도 없고 너만 괴로운데 그냥 넘어가라’고 하시길래 ‘제자도 보호해주지 못하냐’며 제가 화를 냈어요. 주위에서 다들 ‘(너가)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해서 불쾌한 상태로만 지냈는데 7월에 성폭행 사건이 터진 거죠. 이후 대책위원회가 생기고, 피해자들이 연대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대책위 쪽에서 도와달라고 요청해 피해사실을 증언했죠.” -ㄴ씨의 증언

2001년 박사과정에 입학해 논문지도교수로 감씨를 모셨다는 ㄷ씨는 감씨가 집 근처로 찾아와 성추행했다고 털어놨다. ㄷ씨는 당시 학교 쪽에 제출한 호소문에서 “감태준 교수는 논문 결정권자였고 저는 그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처지였는데, 뭐라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습니다”라고 밝혔다.

“(우리는) 항상 논문이 달려있잖아요. 사실 그 전에도 ‘저 사람(감 교수)이 성희롱을 한다, 여자를 만진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항상 조심했어요. 같은 자리에 있으면 맨날 팔짱을 끼고 (방어를) 했죠. 그런데 하루는 갑자기 ‘외롭다’, ‘할 얘기가 많다’며 우리 집 앞으로 찾아왔어요. 카페를 갔는데 옆에 와서 앉더라고요. 치마 입고 있었는데 그 밑으로 손을 넣어서 (성기를) 만지더라고요. 논문이 걸려있다 보니 ‘이렇게 하지 말고 빨리 가라’, ‘외로우면 딴 데 가라’라고 하면서 (겨우) 밀어냈죠. 그러고 나선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하더라고요. 내가 (나중에) 투서를 쓰고 하니까 감 교수는 ‘교수 안 시켜주니까 앙심을 품었다’고 주장하더라고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죠. 그 이후로는 생각하기도 싫은 인간이니까 내가 막 (기억에서) 지웠어요. 2003년에 박사학위를 땄으니까 지금 15년이 됐잖아요. 15년 전 기억을 되살리려고 하니까 (여전히) 가슴이 벌벌 떨려요. 그때 생각나니 분해서 한숨도 못 잤어요.”  -ㄷ씨의 증언

당시 중앙대에서는 사건이 발생한 대학원은 물론이고 학부에서도 감씨를 파면해달라는 시위가 이어졌다.

논란이 확산하자 문창과 교수들도 나서서 감 교수의 사직을 요구하는 서한을 박범훈 당시 총장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간 감 교수에게 성적으로 괴롭힘을 당한 학생이 적지 않았고, 그에 대한 호소를 줄곧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학과의 교수들이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학과의 교수들에게 찾아와 호소를 하면서도 다른 이에게 알려지기를 수치스러워해 교수님께만 말씀드리니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을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꼭 덧붙이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성적과 논문 등으로 엮여 있는 관계여서 감 교수의 귀에 자신의 호소가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간간이 감 교수에게 충고를 하면, ‘딸 같아서 그랬다’, ‘귀여워서 그랬다’는 식으로 둘러대는 것이어서 이 문제는 더 이상 말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들이 2007년 8월 1일 박범훈 총장에게 보낸 서한

 

성추행 혐의 인정받아 해임당해…행정소송서도 패소

성폭행을 주장했던 ㄱ씨는 형사 고소를, 성추행을 주장했던 ㄴ씨는 학교 성윤리위원회 차원의 해결방식을 택했다. 결과는 엇갈렸다. 법원은 ㄱ씨의 사건에 대해 “피해자의 진술이 번복됐다”는 이유로 감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반면 중앙대 성윤리위원회는 ㄴ씨의 성추행 사건을 인정, 징계위원회를 열고 2008년 1월 감씨에게 해임을 통보했다.

“징계위원회는 ’K(감) 교수가 성추행 의혹을 부인했지만, 목격자 진술 등을 고려했을 때 어느 정도 사실로 판단되어 징계를 내리게 됐다”고 해임 이유를 밝혔다. 현재 1차 피해자 성폭행 사건은 검찰 기소를 앞둔 상태이나 ‘K교수가 성범죄 사건에 연관된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어 학교의 명예가 크게 실추된 점’도 징계 결정에 고려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2008년 3월 18일, <중앙대 대학원 신문 247호>

성폭행 사건 판결 결과에 대한 이견도 제기된다. 사건이 발생한 뒤 공동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고광식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당시 문학예술학과에 다니고 있었고 감태준 교수가 지도교수였다”며 “(ㄱ씨 폭로 이후) 감 교수가 따로 불러 ‘ㄱ씨가 말이 안 되는 소설을 쓰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ㄱ씨에게 배상할 돈 1000만원을 제가 (대신) 해결해달라고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고씨는 “이후 ㄱ씨를 만나 대여섯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들었는데 ㄱ씨의 증언이 너무 구체적이라서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는 확신이 들었다”며 “대법원에서 감씨가 무죄를 받았지만 경찰과 검찰에서 ㄱ씨의 설명이 조금씩 다르단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은 거지 (성폭행) 행위 자체가 없었다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비대위원장을 하면서 제2, 제3의 피해자에 대한 제보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고씨는 “감씨가 다시 학교에 복귀하기 위해 교원소청심사와 행정소송을 했지만 전체 5번의 재판에서 모두 패소했다. 사실상 성추행 행위를 (법원에서도) 인정한 것”이라며 “성폭행 무죄 판결만 이야기하며 ‘억울하다’고 주장하는데 정작 성추행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08년 감씨는 부당해고를 당했다며 교육부에 소청심사를 의뢰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항소는 기각됐다. 이후 감씨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1, 2, 3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감씨는 이어 고등법원 재판장에서 참고인으로 증언한 ㄴ씨와 ㄱ씨 지도교수가 “위증을 했다”고 고발했지만, 법원은 전체 14개 항목 중 13건은 ‘혐의없음’, 1건은 ‘불기소처분’ 판결을 내렸다.

 

시인협회 “권고사퇴로 뜻 모아”…감씨 “성폭행 사건 없었다. 턱도 없는 이야기”

시인협회 쪽은 논란이 번지자 감 시인에게 자진사퇴를 권고했다.

예정대로라면 다음달 31일 열리는 총회에서 이·취임식을 거쳐 2년 동안 회장직을 수행하게 된다. 협회 관계자는 “원로 분들이 (감씨의) 과오를 모르고 뽑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에 긴급회의를 개최해 권고사퇴 쪽으로 중지를 모았고 본인에게 뜻을 전달했는데 아직 답이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젊은 시인들이 (감씨의 선출 소식을 듣고) 들고 일어나고 있다. 반대 서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 피해 당사자들은 협회 사무실로 전화해 ‘(감씨에게) 이렇게 당했다’ 이야기도 하고 있다”며 “이번 주말에 협회 입장을 정리해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선경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는 협회 쪽의 미온적인 대처를 비판했다. 이 변호사는 “협회 정관 8조를 보면, ‘품위를 현저하게 손상시킨 회원은 이사회의 결의를 통해 회원의 자격을 정지할 수 있으며 자격이 정지된 회원이 3개월 이내에 자격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성실하게 하지 않을 때에는 이사회의 결의로 제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사퇴를 권고하는 것이 아니라 징계위원회를 열고 제명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감씨는 이같은 혐의를 모두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당시 (피해자를 도왔던) ㄱ씨의 지도교수가 지나간 일을 거론하는데 턱도 없는 이야기다. 협회 평의회에 근거자료를 다 내고 소명도 했다”며 “성폭행 사건은 없었고 (피해자가 주장하는) 성추행 현장에 (내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감 시인은 “ㄱ씨의 지도교수가 사주한 사건”이라고 주장하며 “통탄스럽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