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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의 교황' 빌리 그레이엄 목사, 하늘로 떠나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개신교 목사 중 한 명인 미국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21일(현지시각) 하늘로 떠났다. 향년 99.

미국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이날 ‘미국의 목사’ ‘개신교의 교황’으로 불리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자택에서 숨졌다고 긴급 타전했다.

ⓒCHRIS KEANE / Reuters

그레이엄 목사는 1918년 캐롤라이나주 샬롯테 인근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레이엄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데 애썼고,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한 목회자로 꼽힌다. 60여년 넘게 목회 활동을 하면서 2억1500여만명을 대상으로 설교했다.

종교적 신념에 입각한 삶을 살았고, 돈·권력·섹스·거짓의 유혹을 떨치고 정직한 삶을 살자는 ‘빌리 그레이엄 룰’(모데스토 선언)을 천명하기도 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이 룰에 따라 아내 아닌 여성과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 원칙을 지킬 정도로 미국인들의 신앙과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1925년 테네시주의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친 교사가 벌금형을 선고받은 ‘스콥스 재판’ 이후 영향력을 잃어가던 개신교 복음주의의 사회적 영향력을 회복한 목회자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해리 트루먼 대통령 이래 모든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기도해줬을 정도로 역대 정치적 영향력이 컸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레이엄 목사를 ‘20세기 100대 인물’로 선정했다. 1994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장례식, 2001년 9·11 테러 희생자를 위한 국민장 등에서 설교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1년 이라크 전쟁을 발표하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 옆에 성경을 들고 서있거나, 진보적인 유대계 언론인을 축출하려는 닉슨 대통령에 동조한 녹음 파일이 공개되는 등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다만 말년에는 복음주의 정치운동 쪽과 거리를 뒀고, 종교적인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후보들에 대한 지지를 거부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설교 뿐만 아니라 방송, 저술 등에도 힘썼다. 30여권의 저서를 남겼고, 그의 설교가 185개국 48개 언어로 번역되기도 했을 정도로 국외 신자들에게 미친 영향도 컸다. 심지어 북한 김일성 전 주석이 그레이엄 목사를 평양으로 초대해 연설을 부탁했을 정도다.

그레이엄 목사는 말년에 각종 병마와 씨름했다. 전립선암과 뇌수종, 파킨스씨 병을 앓았다. 2005년 6월26일 “내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안다. 이제 직접 하나님을 뵙기를 바란다”며 뉴욕에서 마지막 부흥회를 마쳤으나, 그 이후로도 12년8개월을 더 세상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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