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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월 20일 15시 08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2월 20일 15시 08분 KST

그런 건 예술가의 자질이 아니다

예술가가 모순투성이인 자신의 작품을 굳이 닮을 필요는 없다

방랑벽, 기벽, 허랑방탕한 일상 따위가 예술가의 참된 자질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그동안 그런 자질을 섬기는 예술가들을 적잖이 만났고, 나는 그들과 속 깊은 우정은 나눌 수 없었다. 그들 중 몇몇은 예술가 행세를 하고 싶어 하는 예술가이거나 예술가 대접을 받고 싶어 하는 예술가 같았고, 내가 생각하는 예술가는 따로 있었다.

이참에 닮고 싶은 예술가를 꼽자면, 이중섭과 고흐 정도가 아닐까. 그들의 남다른 재능을 닮고 싶은 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고흐는 다른 화가들이 서로를 추켜세우며 어울리는 동안 물감이 마르기 전에 붓질 한 번을 더 하려고 했던 부지런한 사람이다. 또 주변을 끔찍이 아낄 줄 알았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나 생전에 가깝게 지냈던 우체부 조셉 룰랭과 조셉 룰랭 가족의 초상화에서 고흐의 애정을 느끼는 건 나뿐만 아닐 테니까.

재작년 이중섭 전시에서는 이중섭과 고흐가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이중섭은 아내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지 모서리마다 “뽀뽀”라는 작은 글자를 정성스럽게 가득 채웠고, 아내와 두 아들을 그 누구보다 사랑했다. 형편이 어려워 가족과 떨어져 있는 동안에는 가족을 늘 그리워했고, 두 아들에게는 “보고 싶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두 아들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동네 아이들을 수돗가로 불러 일일이 씻겼을까.(나는 그 대목에서 청승맞게 눈물을 줄줄 흘렸지)

VEX Collective via Getty Images

예술가는 남다른 재능의 소유자도, 누구나 감탄할 만한 작품을 남긴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가는 자기 주변을 아낄 줄 알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아무리 큰 영향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남에게 그 큰 영향력을 함부로 과시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성공에 누군가의 희생이 담보됐다면, 어떻게든 대갚음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물론 예술이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고, 예술가가 모순투성이인 자신의 작품을 굳이 닮을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그렇게 보자면 짧은 연휴 끝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자신의 일터로 어김없이 출근하는 사람들도 다 예술가다. 늦게 퇴근하면 그동안 배우자가 여러 뒤치다꺼리를 도맡을까봐 걱정하는 사람들도 다 예술가다. 그럴싸한 작품은 없지만, 지리멸렬한 일상을 굳건히 견디는 사람들도 다 예술가다. 자신이 무엇을 남겼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세상을 서둘러 떠난 이중섭과 고흐도 그건 아마 동의할걸?

다시 말해 나는 예술가가 아니다.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적도 없고, 예술가 대접을 바란 적도 없다. 매번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시며 “요새는 한 달에 을마씩 버노?”라고 물으시는 아부지한테만 예술가면 된다. 아부지한테 예술가는 돈 안 되는 직업에 불과하고, 그럼 나는 용돈을 못 챙겨드려도 그렇게 죄송하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