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트럼프의 이유 없는 한국 철강규제는 사실 이유가 있다

'외교보복' 같은 게 아니다

  • 백승호
  • 입력 2018.02.20 11:52
  • 수정 2018.02.20 16:48

″사실상 수출하지 말라는 것”

지난 16일(현지시각), 미 상무부는 철강 수출국에 적용할 수입 규제안이 담긴 무역확장법 제232조 관련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 담긴 규제안은 총 세 가지이다.

  • 모든 국가에 일률적으로 24% 관세 부과
  • 브라질·중국·코스타리카·이집트·인도·말레이시아·한국·러시아·남아공·태국·터키·베트남 등 12개 국가에 53% 관세 부과
  • 국가별 대미 수출액을 2017년의 63%로 제한

모든 안이 한국에 불리하지만 특히 두 번째 안이 우리로서는 최악이다. 업계에서는 ”관세 53%를 부과하면 수출하지 말라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우리가 두번째 안에 포함된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미 상무부는 왜 12개국을 따로 선별해 두번째 안에 담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2011년 대비 대미 수출 증가율, 해당 국가의 중국 철강제품 수입량, 수출 품목의 특성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도 “미국이 대미 수출 증가율이 크고 중국산 철강 활용도가 높은 국가를 주요 규제 대상에 포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PhonlamaiPhoto via Getty Images

 

실제 보고서에는 ”제3국에 수출된 중국산 철강은 그 나라에서 강철 제품으로 가공돼 다시 미국으로 수출된다”는 미국철강협회 대표의 증언이 담겨있다. 동아일보는 ”미 상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16년 기준 중국산 철강 1422만t을 수입해 전 세계에서 중국산 철강을 가장 많이 수입한 국가로 미국은 한국을 중국산 철강 제품을 대신 수출하거나 중국산 제품의 빈자리를 차지하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설명하는 내용은 다르다. 산업부는 ”한국이 세계 1위의 중국산 철강 수입국이지만 미국으로 수출하는 철강 중 중국산 비중은 2.4%에 불과하다”고 봤다. 이어 ”아울러 지난해 한국의 중국산 철강재 수입량은 전년 대비 21% 감소했으며,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량도 2014년보다 38% 정도 줄었으며 특히 한국산 철강은 자동차용, 유정용 강관 제품 등 고부가가치 상품인 반면 중국산은 저가 제품 중심이어서 미국 내 소비시장 자체가 다르다”고 덧붙였다.

이유 없는, 하지만 이유 있는 통상압박

미국의 한국을 향한 통상 압박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은 지난 7일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했다. 추세를 볼 때 이같은 통상 압박이 철강에 이어 다른 제품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철강에 이어 자동차·기초소재·반도체 등 주력 제조업도 얼마든지 (미국의 수입 규제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이프가드는 특정품목의 수입이 급증하여 국내 업계에 중대한 손실이 발생하거나 그 우려가 있을 경우 GATT 가맹국이 발동하는 긴급 수입제한조치로 WTO는 세이프가드는 심각한 피해를 방지하거나 치유하고 구조조정을 용이하게 하는데 필요한 정도로만 취해져야 하며, 수입국은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할 경우 원산지에 관계없이 해당물품의 수출국에게 협의할 기회를 제공하고 적절한 보상을 해 줄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협의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당해 물품의 수출국이 수입국에 대해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ERIC THAYER / Reuters

 

실제로 반도체 분야에서도 미국 기업의 제소로 시작된 여러 건의 특허 침해 조사가 진행 중이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는 지난달 한국과 중국 등의 차세대 저장장치를 포함해 관세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반도체 분야는 삼성전자가 시장점유율 1위, SK하이닉스가 7위를 차지하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자동차 산업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한-미 FTA의 재협상을 거론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볼 때 앞서 한국이 미 상무부가 설명하지 않은 ‘철강 규제 12개국‘에 포함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내 일자리 확대‘와 ‘무역 적자 축소’ 등을 외치며 당선됐다. 한국에 대한 일련의 제재는 ‘외교 보복’같은 것으로 설명될 게 아니다. 자국 산업을 지키기 위한 트럼프의 자구책일 뿐이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지난해 4월 트럼프는 상무부에 무역확장법 232조 부활을 지시하는 행정각서에 서명하면서 “미국 근로자와 미국산 철강을 위해 싸우겠다. 우리 경제와 안보에 중요한 철강은 외국에 의존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고 말했다. ‘자국법을 동원해 국제사회가 약속한 자유무역 질서를 깨뜨린다’는 비판에도 트럼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발언은 10개월 뒤 우리에게 현실이 되었다.

다만 문제는 트럼프의 제재가 상식선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점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컷뉴스에 “80년대 일본 제조업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미국 시장에 진출을 확대한 결과 미국의 통상압력을 받은 반면, 이번에는 우리 제조업의 경쟁력이 저하되는 상황에서 통상압력이 가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부정적 영향은 더욱 크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강도 높은 대책

트럼프발 통상제재에 한국은 지속적으로 대응했다. 지난해 6월 워싱턴에서의 첫 한ㆍ미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에게 ”중국의 철강 덤핑 수출을 허용하지 말아 달라”고 촉구했다. 여기에 대해 문 대통령은 해당 물량은 (대미) 수출의 2%에 불과하다는 팩트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고 한다. 한국산 세탁기 등의 세이프가드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지난 8일 방한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에게 ‘이를 풀어달라’고 직접 요청하기도 했다.

 

ⓒ뉴스1

 

그리고 한국을 콕 짚은 철강제재안이 이어졌다. 청와대는 여기에 대한 강도 높은 대책을 내놓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처에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및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여부 검토 등 당당하고 결연한 대응”을 촉구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WTO 제소 검토는 미국의 일방적인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 국제 사회와 공동대응하자는 취지”라며 ”만약 한국산 철강에 대해 미국 정부가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면 대미 철강 수출이 사실상 중단된다”며 발언의 취지를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강도 높은 이번 발언은 미 상무부의 ‘두 번째 안’을 피하기 위한 압박카드로 해석할 수도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제2안이 현실화되면 우리 철강의 대미 수출에 매우 큰 타격이 예상된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21조에 국가 안보 사항은 수입규제를 인정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있긴 하지만, 특정 12개국에만 차별적으로 53% 관세 부과를 적용하게 되면 이 예외조항도 인정될 수 없다고 본다”며 “제2안으로 결정하면 세계무역기구 제소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문재인 #트럼프 #무역 #통상 #w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