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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나이지리아 봅슬레이팀의 이야기다

불가능은 이렇게 현실이 됐다.

  • 허완
  • 입력 2018.02.20 17:26
  • 수정 2018.02.21 09:21
ⓒMOHD RASFAN via Getty Images

″우리는 얼음 위를 시속 80~90마일(129~145km/h)로 달린다는 걸 상상할 수도 없는 대륙에서 왔다. 이것 자체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 만으로도 힘을 불어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이지리아 여자 봅슬레이 대표팀의 ‘파일럿’ 세운 아디군은 지난해 4월 BBC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때만 해도 평창동계올림픽 출전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들은 그해 11월 출전자격을 따냄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썼다. 썰매는 커녕 눈조차 구경하기 힘든 나이지리아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봅슬레이 대표팀이 탄생한 것이다. 남녀를 통틀어 아프리카 최초의 봅슬레이팀이자, 나이지리아 최초의 동계올림픽 대표팀이기도 하다.

 

이민자 부모를 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이지리아계 미국인 3명이 이 역사적인 봅슬레이팀을 꾸리게 된 사연은 한 편의 영화와도 같다. 

모든 건 주장을 맡고 있는 아디군의 구상에서 시작됐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온 나이지리아 태생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디군은 원래 단거리 육상선수였다. 100m 허들과 400m 계주가 주종목이었다. 나이지리아 대표팀으로 2012년 런던올림픽에도 출전했다. 나이지리아 챔피언 세 번, 아프리카 챔피언 두 번을 차지했다.

올림픽 공식사이트에 따르면, 아디군은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을 보고 봅슬레이에 흥미를 갖게 됐다. 지난해 3월 BBC 인터뷰에서 밝힌, 그가 ”봅슬레이에 대해 들어본 것 중 최고의 설명”은 이랬다. ”언덕 꼭대기에서 누군가가 너를 쓰레기통에 밀어넣고 밑으로 굴려버리는 것.” 

ⓒDavid Gray / Reuters

처음에는 미국 대표팀으로 뛰었다. 생애 처음으로 봅슬레이를 알게된지 8개월이 되던 어느날, 댈러스에서 미국 대표팀 트라이아웃이 있다는 걸 발견한 게 마침 계기가 됐다. 댈러스는 ”내가 살고 있던 휴스턴에서 차로 몇 시간 밖에 안 되는 거리”였고, ”이건 신호라고 생각했다”고 그는 훗날 회상했다.

트라이아웃은 성공적이었다. 그는 곧 미국 대표팀과 함께 훈련을 시작했다. 이어 2016년 1월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펼쳐진 2015-16시즌 봅슬레이 월드컵 등에서 미국 대표팀 브레이크우먼으로 출전했다

그러나 아디군은 곧 새로운 사실을 알게된다. 고국 나이지리아에서는 물론, 아프리카 전체에서도 남녀 봅슬레이팀은 존재했던 적이 없다는 것. 그가 고국 나이지리아를 대표하는 봅슬레이 선수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였다. 

ⓒSTEFAN HEUNIS via Getty Images

아쿠오마 오메오가가 아디군을 처음 만난 건 2016년 어느날이었다. 미네소타대에서 육상선수로 활약했던 오메오가는 졸업 후 지역의 한 회사에서 인사부 직원으로 일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고민 끝에 ‘따뜻하고 생활비도 비교적 저렴한’ 휴스턴으로 이주했다. 휴스턴에는 친구도, 직장도 없었다.

그에게는 가족의 지인이 건네준 전화번호가 있었다. 휴스턴에 살고 있는, 나이지리아계 미국인 친구라고 했다. 두 사람은 문자를 주고받은 끝에 저녁을 먹게 됐다. 식사 도중 아디군은 별다른 자세한 설명 없이 그저 자신이 ‘큰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몇개월 뒤, 오메오가는 아디군의 전화를 받게 된다. 봅슬레이팀을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아무래도 다시 ‘활동적인’ 걸 해야할 것 같아 성인 축구팀 입단을 고려하고 있던 오메오가는 봅슬레이면 어떠냐는 생각에 ”큰 고민 없이” 제안을 덜컥 받아들였다. 나이지리아 봅슬레이팀의 브레이크우먼이 된 것이다.

댈러스에서 태어난 은고지 오누메레도 어린시절부터 육상선수로 활약했다. 휴스턴대 재학중에는 100m, 200m, 400m 등의 경기에 나섰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에서 나이지리아 대표로 뛰기도 했다. 그 역시도 같은 도시에 살던 아디군으로부터 봅슬레이팀 합류 제안을 받았다. ‘아프리카 대륙을 대표해보자’는 말에 딱히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팀이 그렇게 완성됐다.  

 

2016년 10월, 아디군의 집에서 첫 만남이 이뤄졌다. 아디군은 영상과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어 봅슬레이라는 종목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어 그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출전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아디군은 매우 진지했다.  

아디군은 이제 브레이크우먼이 아니라 드라이버이자 팀의 주장이 됐다. 그는 나무를 깎고 바퀴를 달아 ‘봅슬레이와 비슷한’ 썰매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이 나무썰매에 ‘메이플라워(Maeflower)’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동차 사고로 숨진 의붓자매의 별명 ‘메이 메이(Mae Mae)’를 땄다.

이들은 휴스턴대 실내 체육관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평소에는 육상훈련장으로 쓰이는 곳이다. 딱딱한 바닥에서 나무썰매로 스타트 훈련을 거듭했다. 훈련은 만만치 않았다. 오메오가는 미네소타 지역언론 ‘스타트리뷴’ 인터뷰에서 ”메이플라워라고 부르는 이 사악한 나무”가 ”나는 정말 싫었다”고 말했다.

훈련이 끝이 아니었다. 동계올림픽에는 상대적으로 돈이 많이 드는 종목이 많다. 상당수 경기장도 부유한 국가에 몰려있다. 봅슬레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장 썰매가 필요했다. 썰매를 구하는 데만 적어도 5만달러(약 5400만원)이 필요했다.

이들은 크라우드펀딩사이트 ‘고펀드미(GoFundMe)’에 자신들의 사연을 올렸다. 11개월 만에 7만5000달러가 모였다. 이들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나중에는 글로벌 카드회사인 비자(Visa)와 스포츠용품 업체인 언더아머가 후원을 자처하고 나섰다. 

 

아디군은 나이지리아 정부 스포츠 관계자에게 봅슬레이협회를 만들자고 했다. 그들은 당혹스러워했다. 그들은 ”텍사스에 사는 나이지리아인 3명이 왜 굳이 봅슬레이라는 스포츠를 하려고 하는지”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결국 그의 꿈은 현실이 됐다. 나이지리아는 물론 아프리카 최초의 봅슬레이·스켈레톤협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데뷔전은 2017년 1월에 있었다. 미국 파크시티에서 열린 북아메리카컵 대회였다. 첫번째 연습주행에 나섰던 1월4일은 이들이 팀 결성후 처음으로 얼음으로 된 ‘진짜’ 봅슬레이 트랙을 밟은 순간이기도 했다. 오메오가는 ”나는 즐겁고 재밌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주행을 마치고 나는 완전 쇼크를 받았다. 주행은 끔찍했다.” 

올림픽 출전자격을 따내기 위해 이들은 ‘5·3·2 법칙’으로 알려진 기준을 충족해야만 했다. 2시즌 동안 적어도 3개의 각기 다른 트랙에서 5번의 공식경기를 완주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지난해 11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북아메리카컵 대회 출전으로 이들은 마침내 평창동계올림픽 출전 자격을 확보하게 됐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들은 고국 나이지리아는 물론, 아프리카를 대표해 경기에 나선다. 아디군은 자신들의 도전이 아프리카인들에게 큰 영감을 불어넣기를 바란다. 눈이 없는 나라에서 태어났어도 동계스포츠에 도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 한다. ”사람들이 반드시 오직 한가지 길에만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 인생에 한계라는 건 없다.”

이들은 또 아프리카 여성들을 대표하고 있기도 하다. 오누메레는 뉴욕타임스에 ”젋은 여성들, 그리고 보통의 여성들이 스크린으로 우리를 볼 수 있게 되고, 우리가 이걸 해냈고 이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봅슬레이에는 다른 스포츠 종목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남녀 장벽이 존재한다.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봅슬레이 경기가 열리기 시작한 건 겨우 2002년의 일이다. 남자 경기와는 달리, 여자 봅슬레이에는 4인승 종목이 없다. 원칙적으로는 2014년부터 여자 선수들도 4인승에 나설 수 있게 됐지만 아직은 전례가 없다. 

평창에서 6번의 공식 연습주행을 마친 나이지리아 봅슬레이팀은 20일 밤 1·2차 주행에 나선다. 올림픽 데뷔 경기다. 냉정하게 따지자면, 메달을 따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열정에는 순위가 없다. 이들의 도전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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