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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월 19일 16시 34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2월 19일 16시 34분 KST

뻔뻔한 비명을 응원합니다

사람들의 입에 재갈이 물려 있다

huffpost

친척들이 오가는 명절 없이 명절을 지낸 지 오래다. 이번 설에는 365일 24시간 열리는 만화방을 찾아갔다. 칸막이가 설치된 다닥다닥 붙은 침대에서 만화책을 읽거나 잠을 자는 사람들이 많았다. 금세 피로해지는 내게 뒹굴거릴 수 있는 만화방은 쉬면서 놀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다. 12시간 동안 만화책을 읽으며 뒹굴거리다가 해가 밝을 때쯤 밖으로 나왔다.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려 문을 닫을 때였다. 왼손 검지가 문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을 때 문을 닫았다. 짧은 비명도 없이 손가락을 서둘러 빼냈다. 2초간 감각이 없다가 곧 무시무시한 통증이 올라왔다.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질렀더니 눈물이 나왔다. 손가락이 붙어 있는 게 맞나 확인했다. 다행히 붙어는 있다. 문지방에 발가락을 찧거나 책상 모서리에 무릎을 박으면 1분 후 통증이 가라앉는다.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는데 검지손가락 끝에 심장이 달린 것처럼 계속 욱신거렸다.

잠에 들 수 없는 진통이 오전까지 계속됐다. 손톱이 보라색으로 물들고 손톱 밑이 부어올랐다. 설날이고 주말이라 정형외과는 문을 닫았다. 빠른 진통주사라도 맞고 싶어 근처 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걸었다. “지금 가면 진료비가 대략 얼마나 될까요.” 전화가 몇 번 돌고 돌다가 의사가 전화를 받았다. “네. 무슨 일이죠?” 잠시 대답하기가 망설여졌다. 손가락 찧인 걸로 유난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손가락을 찧었는데 진료비가 어느 정도 될까요.” “아아. 와보셔야 알죠. 접수비는 5만원이고요.” 고작 접수비를 물어보느냐는 말투다. 문득 아픈 와중에도 돈을 걱정하게 되고 아프다고 말하는 걸 눈치 보는 게 이상하고 서러워서 눈물이 나왔다.

내 몸은 잔병이 많다. 큰 병은 없지만 감기몸살, 편두통, 실신과 타박상 등 자잘한 통증으로 응급실을 자주 오갔다. 천식이 있어 체력장을 할 수 없던 중학교 때 운동장 구석에 앉아 있는 내게 선생님이 다가와 “쟤는 몸이 아픈데도 끝까지 뛰었어”라며 한 친구를 가리켰다. 아파서 수업 중간에 조퇴하는 내게 대학 선배는 “굉장히 자주 아프네”라고 빈정거렸다. ‘애걔, 이 정도 가지고. 너보다 아픈 사람도 이 정도는 참아. 시간이 약이니 호들갑 떨지 말아라’라는 속말이다.

 

michaklootwijk via Getty Images

아프다고 말하는 걸 유별나게 보는 시선 속에서 정말 내가 너무 뻔뻔하고 예민한 걸까 고민했다. 사람마다 통증을 느끼는 강도가 다른데 내가 유난히 크게 느끼는 걸까. 아니면 통증을 표현하는 강도가 다른 걸까. 적어도 비명을 지르는 순간엔 통증이 덜하다. 지금은 내 몸이 유별나게 허술하거나 예민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의 입에 재갈이 물려 있다고 느낀다. 아픈 몸으로 운동장을 말없이 뛰던 친구를 칭찬하던 선생님의 말처럼, 아픈 걸 숨기고 견디는 게 미덕이 되는 사회다. 모두가 천하무적 슈퍼맨 같은 몸이 되라고, 될 수 있다고 주문받는다. 아픔은 자기관리의 실패고 비명은 뻔뻔한 투정이 된다. 병을 초월한 삶이 가능하다는 듯.

멀지만 365일 열린 병원이 있어 찾아갔다. 뼈가 부러지진 않은 것 같은데 상태를 지켜봐야 한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은 고생했다면서 손가락에 붕대를 감아주셨다. “건강하자.” 설날마다 주고받는 기원에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그런데 아파도 돼. 네 잘못이 아니니까. 그리고 아프면 아프다고 꼭 말해줘.”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