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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은 진정 통합과 평화를 바라는가?

진정한 의미의 하나 됨일까?

ⓒhuffpost

세계인의 축제 2018 동계올림픽이 대한민국 평창에서 펼쳐지고 있다. 갑작스러운 단일팀, 공동입장, 한반도기 등 논란과 잡음도 적지 않았지만 뚜껑이 열리고 본격적인 이벤트가 시작되면서 큰 방향은 올림픽이 궁극적으로 바라고 지향하는 평화를 가리키고 있는 듯 하다.

단일팀도 성적을 넘어선 하나됨의 의미를 세계에 전했고, 냉각되었던 남북의 분위기도 평화국면을 향하고 있다. 국민들도 메달을 딴 선수에게는 축하의 갈채를 그렇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그동안의 값진 노력과 시간들에 대한 존경과 위로의 박수를 보내주고 있다. 방송중계를 맡은 해설자와 캐스터들도 약속한듯이 올림픽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됨과 평화라고 강조하고 있다.

도전과 완주만으로도 뜨겁게 환호하는 몇몇 선수들의 아름다운 성취들을 마주할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보면 대회가 추구하는 진정한 의미가 바로 이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IOC가 말하는 대로 대한민국이 원하는 대로 세계가 표방하는 대로 진정 그 의미가 그런것이라면 뭔가 좀 이상한 것이 있다. 패럴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왜 분리된 공간 다른 시간 다른 관중들 안에서만 그들만의 축제를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Mike Blake / Reuters

신체적인 위대함을 뽐내는 극소수를 뽑는 것이 궁극적 가치가 아니라면 신체 일부가 불편한 그들도 올림픽의 축제 안에 함께 있을 자리가 있지 않을까? 스피드스케이팅의 팀추월 경기를 보면 가장 느린 선수의 역할이 너무도 중요하다. 그런 방법으로 착안하면 팀 스포츠로 장애와 비장애가 함께하는 종목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휠체어 농구와 테니스 혹은 시각장애인의 골볼과 축구 같은 경기는 모양이 조금 다를 뿐 도전의식을 보여주고 환호를 이끌어 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육상이나 수영스케이트나 썰매 같은 종목들은 남자부 여자부가 나뉜 것처럼 부문 몇 개만 추가하면 같은 경기장에서 같은 모습으로 경쟁하고 하나 될 수 있다. 화합과 평화 도전이라는 의미가 진심으로 외치는 구호이고 진실로 추구하는 가치라면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하나가 되는 것만큼 훌륭한 가치는 또 없을 것이다.

근대올림픽의 기원은 전쟁에 지친 병사들의 평화를 바라는 이벤트였다고 알고 있다. 서로를 향하던 창을 누가 더 멀리 던지는지 경쟁하고 마주 보고 돌진하던 것을 같은 방향을 보고 달리는 것으로 살짝 바꿔놓으면서 가장 잔인한 육체적 충돌을 가장 위대한 육체의 경쟁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잠시의 이벤트가 그들을 한번에 친구로 만들고 단번에 화해하게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평화를 향한 하나의 마음을 담은 이벤트는 결국 그들이 원하고 바라던 아름다운 결과로 지금까지 달려왔다. 장애인도 함께하는 올림픽이라고 하면 보여주기식 이벤트라고 당장 비판들이 쏟아질 것이다.

그렇지만 세계인의 축제도 지금의 올림픽도 작은 이벤트로 출발한 것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진정 하나 됨을 바라는 것이 올림픽 정신이라면 축제가 성대해지고 화려해질수록 점점 더 분리되고 제외되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으면 좋겠다. 1등과 몇 바퀴는 차이 나지만 웃으며 완주하는 의족 스케이터를 바란다. 두 눈이 보이지 않아도 소리나는 퍽을 드리블 하는 하키선수들의 치열한 경쟁을 바란다. 어떤 모양의 도전도 박수 받을 수 있는 진짜 올림픽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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