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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 김이 한국서 자랐다면 정말 '학원 뺑뺑이' 돌고 있었을까?

클로이의 성장과정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이야기다

  • 백승호
  • 입력 2018.02.14 18:12
  • 수정 2018.02.14 18:55
ⓒhuffpost

클로이 김의 아버지 김종진 씨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수학하기 위해 1982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클로이 킴이 태어난 것은 2000년의 일이다. 그는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나고 자란 재미교포 2세다.

클로이 김은 6살 때 주니어 대회에서 우승했다. 딸의 잠재력을 확인한 아버지는 자기 일을 그만두었다. 아버지가 일을 그만두면서 한 말은 인상적이다.

″이제 직장을 그만둘 때가 된 것 같아. 우리 딸을 올림픽 선수로 만들어야 하거든”

클로이 김은 이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한 번 꽂히면 끝장을 보는 사람이다.”

왜 아버지가 일을 그만두면서까지 딸의 성장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는지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클로이는 이어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가 스노보드를 타라고 강요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정말 스노보드가 좋았다. 나를 올림픽에 보내겠다는 아빠의 열정은 내게 도움이 되었다”

정리하자면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과 클로이의 재능이 합쳐져 ‘여자 하프파이프 최연소 금메달 획득’이라는 쾌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건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이야기다. 사례들을 살펴보자. 

세계적인 프로골퍼 박세리의 골프 스승이 그의 아버지였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6학년 때 처음 골프장을 찾은 박세리의 재능을 발견한 그의 아버지는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300개 이상의 퍼팅연습을 시킬 만큼 혹독한 훈련을 계속했다. 그는 MBC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남 같이 쉬고 같이 그렇게 하면 세계를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을 본인이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열심히 한 것 같다”

하지만 그 연습의 뒤에는 항상 그의 아버지가 있었다.

 

ⓒVCG via Getty Images

세계적인 피겨 스타 김연아의 경우도 비슷하다. 김연아의 어머니는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아이의 재능을 발견한 뒤 내 생활을 완전히 연아에게 맞췄다. 단순히 시간만 낸 것이 아니라 스케이팅 자체를 삶의 중심으로 이동시켰다”고 말한다.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 씨는 태릉선수촌과 과천실내링크를 오가며 살림은 물론 개인 생활 자체를 포기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축구선수 박지성의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사방을 뛰어다니며 개구리를 구해와 먹였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박지성의 아버지도 클로이 킴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며 뒷바라지에 매진했다. 박지성의 아버지는 아들의 열애설이 불거질 때마다 ”연예인 며느리는 탐탁지 않다”는 입장을 밝힐 정도로 아들의 생활에 깊게 개입했다.


클로이 김이 한국서 자랐다면‘학원 뺑뺑이’ 돌았을 것?

영국 BBC는 13일, 클로이 김에 대한 한국 포털사이트 댓글을 보도했다. ‘클로이가 한국에서 태어났어도 해낼 수 있었을까?’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쟤도 한국에 있었으면 학원 셔틀 타고 하루 종일 학원 뺑뺑이나 돌고 있었을 것”, ”한국에서 자랐다면 스키장 서빙알바나 했겠지” 같은 내용의 한국 포털사이트의 댓글을 보여주며 한국의 온라인 여론이 ”한국 메달을 딴 클로이에게 (한국계라는 이유만으로) 관심을 보이는 현상에 회의적”이라고 전했다.

 

ⓒNaver
ⓒNaver

BBC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클로이 김의 부모님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한국 출신 세계적인 스포츠스타와 클로이의 성장배경은, 비교하자면 큰 차이점이 없다.” 자식의 재능을 발견한 부모가 생업을 포기한 뒤 자식 뒷바라지에 매진한다”는 이야기는 한국에서 너무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다.

자식의 재능을 발견해 자원을 최대한 쏟아부어 계발하고픈 욕망은, 물론 전 세계 어디를 가나 비슷하겠지만, 한국에서 쉽게 발견된다. ‘학원 뺑뺑이를 돌려서라도 좋은 대학을 보내려는 부모‘의 이야기와 ‘스포츠 스타를 만들기 위해 회사를 때려치고 자식의 뒷바라지를 한 부모‘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한국적인’ 자식 교육방법이다. 다만 클로이 김은 ‘스노보드‘에 대한 재능이 일찍 발견되었을 뿐이고 그런 재능이 발견되지 않으면 보통 공부를 ‘시킬‘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란 자식은 다시 부모에게 종속된다. 그들은 ‘자식 뒷바라지에 모든 자원을 투입한 부모’에 대한 보상이기 때문이다.


‘학원 뺑뺑이 댓글’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

다만 몇 가지 시사점은 있다. 클로이가 미국에서 자란 게 그가 스노보드 선수가 된 것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한국은 생활체육 저변이 넓지 않다. 대한 체육회의 2017년 예산을 살펴보면 생활체육에 배정된 예산(1,133억 5,200만원)은 전문체육(엘리트 체육)에 배정된 예산(2,449억 2,700만 원)에 절반도 미치지 못한다. 심지어 2017년 생활체육 예산은 2016년에 비해 53%나 늘어났다.

 

ⓒCraig F. Walker via Getty Images

 

클로이 김이 학교에서부터 다양한 스포츠를 접할 수 있고 체육부 활동이 활발한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스노보드를 접할 확률은 그만큼 낮아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김연아도 피겨의 불모지에서 갑자기 등장한 신이다.)

한국은 체육 한 종목을 잘하면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고,  국가대표선수들과 예비선수들이 ‘태릉선수촌‘이라는 국가 시설에서 합숙훈련을 하는 나라다. 불과 몇 해 전까지 기대를 받던 선수가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국민에 사과‘하는 나라였다. ‘국제대회 톱 10 진입‘이라는 국가의 목표는 선수들을 과하게 압박하고 이는 때로 ‘대표팀 폭력 사건’ 같은 결과로 이어진다. 클로이가 이같은 한국의 스포츠 환경에서 스노보드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았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BBC가 소개한 그 댓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모습은 바로 ‘희망을 잃은 한국 청년들의 모습‘이다. 비범한 재능이 발견되지 않으면, 혹은 재능을 찾았다 하더라도 그걸 받쳐줄 부모가 없으면 ‘학원 뺑뺑이‘를 돌거나 ‘스키장 서빙알바‘를 해야하는게 현실이다. 기껏 학원 뺑뺑이를 돌고 대학까지 졸업해도 취업 문은 좁디좁다. 꽤나 영특해진 한국 청년들은 받을 것 없는 국가에 애국심을 갖다 바치려 하지 않는다. BBC는 이를 ‘한국의 특수한 교육문화‘로 해석하고 조명했겠지만 그것은 그 댓글에 담긴 문제의 ‘일부‘에 불과하다. 청년들은 몇 년 전부터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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