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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자, 조직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다

국정농단 사태는 악인들이 아니라 조직에의 맹목적 충성을 체화시킨 사람들의 합작품

  • 강준만
  • 입력 2018.02.12 15:26
  • 수정 2018.02.12 15:27
ⓒhuffpost
ⓒtvN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 이젠 유명해진 드라마 대사라곤 하지만, 회사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상식이었다. 회사 내에서 그 어떤 부당한 갑질을 당하더라도 참고 견디면 ‘지옥’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조직의 혜택과 보상을 누릴 수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어느 대기업 부정입사자는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영혼이라도 팔아 취직하고 싶었다”고 했고, 또 분신자살을 기도했던 어느 비정규직 노동자는 “우리도 정규직 드나드는 정문 앞에서 데모 한번 하고 싶다”고 절규했다.

조직의 보호막은 안전하고 따뜻할 뿐만 아니라 세상 사는 맛까지 느끼게 해준다.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직장에서 퇴직하고 나온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전에는 다니던 직장 이름을 먼저 대고 이름을 말하면, 이름을 채 말하기도 전에 상대방의 눈빛과 자세가 달라졌는데, 이젠 아무도 모르는 내 이름만으로 홀로 살아가야 하는 게 너무 힘들다.”

 

ⓒHenrik Sorensen via Getty Images

조직이 모든 구성원을 ‘가족’이라고 부르면서 수시로 회식을 하고, 단합대회를 열고, 퇴직자들에게까지 특전을 베푸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구성원들로 하여금 조직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숭배까지 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절대적 충성과 단결을 조직문화로 정착시키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윌리엄 화이트가 60여년 전 조직의, 조직에 의한, 조직을 위한 삶을 사는 인간형을 ‘조직인간’이라고 부른 건 폄하의 뜻이었지만, 오늘날 조직인간은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건 물론이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권력 또는 금력이 강해 세상이 우러러보는 조직일수록 조직에 대한 충성과 단결의 요구 수준이 높고, 그 구성원들이 그런 요구를 잘 따르는 건 물론이고 자신의 정체성으로까지 삼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 조직의 추한 면을 폭로하는 내부고발이 나오면 평소엔 선량하고 정의롭던 사람들마저 그 조직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이면 갑자기 바보 또는 악한으로 돌변해 내부고발자를 탄압하는 일에 직간접으로 가담하는 경향이 있다. 내부고발자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조직에서의 왕따라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더욱 기가 막힌 건 자신의 조직과는 무관한 내부고발임에도 조직에 대한 절대적 충성이라고 하는 조직인간의 보편 윤리를 내세워 내부고발자의 흠을 잡기 위해 안달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조직인간이 조직의 안전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조직에 대한 충성이 내부 견제나 감시를 무력화시킬 정도로 절대화되면 바로 그 이유로 조직이 망한 사례가 무수히 많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반대로 망하지 않고 더욱 발전하면 그런 조직은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좀먹기 마련이다.

우리는 절대적 충성을 요구하는 조직이나 집단의 문화를 가리켜 ‘조폭문화’라고 하지만, 이는 조폭에 대한 결례다. 진짜 조폭은 자신의 이익을 사회의 이익이라고 강변하는 위선은 저지르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엘리트라고 자부하고 남들도 그렇게 인정하는 사람들의 조폭문화가 훨씬 더 반사회적인 것이다. 우리는 어떤 조직이나 집단의 조폭문화가 사회적 스캔들로 비화하면 분노하지만, 우리 자신도 가담하고 있는 조직에 대한 충성 문화의 본질을 비켜가면서 이른바 ‘내로남불’의 심리적 위장 평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wildpixel via Getty Images

 

인정하자. 조직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다. 구성원의 자격에 엄격한 제한을 두면서, 조직의 무한성장을 추구

하고, 조직의 이익을 구성원만 독점하고, 조직 내외의 비판에 조직의 이름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격렬하게 대항한다는 점에서 ‘구조적 폭력’ 그 자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모든 조직을 없애야 한다는 유토피아로 나아갈 필요는 없다. 조직의 폭력적 속성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대처를 제도화하고 문화로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과 공적 기관은 물론 학교, 이익단체, 비영리단체 등 모든 조직과 집단은 조직과 집단에의 충성을 요구하거나 유도하는 의례와 행사부터 자제하고, 우리가 충성해야 할 대상은 나 아니면 사회 전체라는 걸 끊임없이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희대의 국정농단 사태는 악인들이 아니라 조직에의 맹목적 충성을 체화시킨 사람들의 합작품이었다는 걸 상기해야 한다.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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