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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36억 뇌물 유죄라며 ‘왜 줬나’ 설명 안한 항소심

이재용이 돈을 건넨 동기는 형량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정형식)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쪽에 36억여원의 뇌물이 건너간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 부회장이 왜 이 돈을 건넸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꼽히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뇌물공여자의 ‘동기’를 중요시하는 ‘부정 청탁’의 입증 수준에 대해 대법원이 나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겨레

 

이 부회장이 정유라씨 승마 지원을 위해 최씨 쪽에 건넨 36억원은 박 전 대통령의 직무와 대가관계만 있으면 뇌물로 인정되는 직접뇌물죄다. 최씨에게 건넨 돈이 박 전 대통령에게 건넨 것과 같다는 것을 이 부회장이 알고 있었고, 대통령의 직무범위가 상당히 넓은 이상 이 부회장이 특정 현안을 청탁하지 않아도 뇌물죄는 성립한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즉 직접뇌물죄에 한정해서 보면, 이 부회장이 돈을 건넨 이유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지 않고도 유죄를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동기는 형량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의 질책 뒤 수동적으로 돈을 준 것이라고 요약했다. 김남근 변호사는 “요구형 뇌물이라도 현안이나 정부의 ‘협조’에 대한 기대가 있다면 형이 달라지는데 재판부는 수위가 가장 낮은 ‘피해자’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이상훈 변호사도 “재판부가 이 부회장 동기를 ‘최소한의 불이익을 안받기 위함’이라면서도 불이익의 내용을 일절 설명하지 않아 공격받을 여지를 남겼다”고 했다. 앞서 1심은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작업’이라는 현안이 있었고, 이는 직접뇌물죄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직무범위에 속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재판부는 직접뇌물과 달리 이 부회장의 동기가 중요한 제3자 뇌물죄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한 기준을 들이댔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등 개별 현안에 대한 청탁은 물론이고 ‘승계작업’이라는 포괄 현안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결국 부정 청탁이 배제되고, 직접뇌물죄에서는 ‘강요의 피해자’라고 갈음함으로써 이 부회장의 동기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남긴 것이다. 삼성 쪽은 대법원에서 ‘직권남용 행위의 피해자’라는 주장을 밀어붙여 36억원에 대해서도 무죄를 얻어낸다는 계획이다.

판사들 사이에서는 부정 청탁 기준을 획일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제3자가 실질적으로 제 역할을 하는 경우와 허울에 불과한 경우는 달리 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르·케이스포츠재단처럼 설립 전에 지원을 요청한 경우 재단은 뇌물을 숨기기 위한 ‘알리바이’라고 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 경우 (개별·포괄) 현안의 존재만 인정되면 제3자 뇌물죄도 넓게 인정될 수 있다. 한 판사는 “박 전 대통령이나 최씨가 재단 수익을 독점하는 단계까지 이르지 않았더라도, 설립과 인선 등을 장악한 경우 재단은 뇌물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이 경우에도 부정 청탁을 엄격히 요구하면 앞으로 뇌물죄를 피하기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만들라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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