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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온한 일탈의 문화

폭로를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게 정말 문화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 김재령
  • 입력 2018.02.09 14:40
  • 수정 2018.02.09 14:46

폭로를 할 생각은 없다. 자신도 없다. 다만 누군가가 나쁜 사람이라 문단 내 성폭력이 만연한 게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이게 정말 문화라는 생각이 들어서 죄책감에 몇 자 적기로 했다.

처음 ‘그 동네’에 발을 디뎠을 때 놀랐던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선생님‘의 품에 몸을 던지고, 선생님과 손을 잡고, 팔짱을 끼는 선배 여성들의 모습이었다. 너무 그들에겐 당연한 상황인 것 같았다. 어색하게도 ‘선생님’은 서른 명 남짓 되는 사람들 중에서 나를 유난히 어여삐 여기기 시작했다. 이번 학번에서는 네가 내 마음을 훔쳐갔다는 얘기도 하셨다. 어딜 가건 내 이름을 먼저 찾았고, 내가 안 오면 데리고 오라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선배들은 ‘선생님 얘가 어디가 예쁘다고’ 깔깔대면서도, 유난히 나를 더 챙기고 예뻐하는 게 느껴졌다. 고마웠고 기뻤다.

누군가는 네가 시를 잘 쓰니까 그렇게 예뻐하시는 거라고 했다. 선생님의 총애를 받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단숨에 인사이더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선생님의 남제자 중 누군가가 내게 플러팅 시도를 하자, 선생님은 그 남제자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선생님은 그때 “어딜 네가 내 사람을 건드리냐”고 성질을 냈는데, 그건 솔직한 감상으로 무리를 지배하는 무파사가 자기 암사자를 넘보는 스카에게 내지르는 호령 같은 느낌이었다. 나중에는 그게 “재령이는 남친도 있는데 누가 집적거려서 선생님이 화냈대” 정도의 소문으로 변질되어 있어서 웃었던 적도 있다.

 

ⓒst_lux via Getty Images

그 당시, 나는 어딜 가건 불려나가는 사람이었다. 내게는 남자선생님만 있는 게 아니라, 여자선생님도 있었다. 나는 여자선생님도 무척 좋아했다. 여자선생님은 수업 뒤풀이 자리에서 술에 취해 내 다리를 계속 쓰다듬다가, 결국에는 스타킹을 북북 찢었다. 나는 처음엔 난감했지만 술에 취해 있다보니 그 상황이 웃겨서 같이 웃었다. 여자선생님과 나는 꼭 끌어안고 같이 웃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선배들도 같이 웃었다. 우리가 모두 거나하게 술이 취한 자리에 남자선생님이 오자 여자선생님은 남자선생님 품에 안겨 울었다. 남자선생님은 영문도 모르고 여자선생님을 다독였다. ‘여긴 그냥 그런 곳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분명 처음엔 껄끄러웠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선생님의 손길이 전혀 껄끄럽지 않게 되었다. 선배들은 그런 말을 자주 했다. 선생님이 우리한테 흑심이 있고 이래서 그러시는 건 아니잖아. 아니지, 당연히 나도 알지. 선배들은 선생님한테 맞은 얘기도 웃으면서 했다. “아, 너무 아팠다고!” 나도 웃으면서 들었다. 그 선배들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나의 우울함 때문에 슬퍼하면 선배들은 날 끌어안고 “그 나이 땐 다 미친년이야, 너 시 쓰는 애잖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 라고 말해주었다. 이상할 수도 있어, 예민할 수도 있어. 평생을 그런 이상한 정서들을 계속 억눌러야 한다고 배워왔던 나에게는 그런 말들이 큰 위로가 되었다. 선생님은 내가 상처받은 이야기들을 듣고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리고는 또 나를 붙잡고 울었다. 나는 선생님을 좋아도 했고 안쓰러워도 했고 귀여워도 했고 몹시 불편해도 했다.

어느 시인은 술만 취하면 어린 자신의 여자 제자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나오라고 불러댔다고 폭로당했다. 선생님도 다르지 않았다. 선생님이 하도 불러서 가 보면, 그 자리엔 다른 선배들도 와 있었고, 무슨 영화감독이 있을 때도 있었고, 무슨 배우나 작가가 있을 때도 있었다. 선생님은 내가 도착하면 어린애처럼 좋아했고, 나보다 한참 나이도 많은 사람이 내가 오면 저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면 나도 기뻤다. 나는 선생님이 나를 귀여워하는 것이 조금은 불안하면서도 기분 좋았다. 여하간 우리는 늘 다 같이 있었으니까.

 

ⓒwundervisuals via Getty Images

 선생님이 ‘도를 넘어선’ 적이 없었나? 물론 있었다. 내 전 남자친구는 선생님이 내 눈꺼풀에 뽀뽀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불쾌해했다. 나는 당시에는 그런 생각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게 불쾌할만한 문제인지, 내가 불쾌해해야 할 문제인지 다시 곱씹어보았다. 그럴 만한 문제인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제기를 하지는 않았다. 그곳의 분위기는 다들 너무 아무렇지 않아하는 분위기였으니까. 선생님은 내 뺨에 입을 맞춘 적도 있다. 한 번은 술 마시자고 호텔에서 방을 잡고 연락을 하신 적도 있다. 나는 선생님한테 ”선생님, 내일 아침이면 민망해 하실 거예요. 그냥 거기서 주무세요.” 라고 대답하고 그 이후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음 날 선생님은 나한테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냈다.

어느 출판사의 송년회 자리에 갔을 때, 누군가 내게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새끼손가락을 세워보였다. “선생님 걸프렌드세요?” 나는 아니라고 학을 떼고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 말이 내포하는 바는 분명했다. 어떤 ‘선생님’들은 나이 어린 ‘걸프렌드’를 데리고 이런 자리에 참석하고, 이 판에서는 그것이 그리 흠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분위기라는 것.

또 다른 출판사의 송년회 자리에서, 어떤 유명 작가가 나이 어린 편집자들이 아니라 편집장 격인 여성의 어깨를 만지며 “나는 햇병아리들은 싫다”고 하는 걸 보았다. 대체 저게 무슨 소린가 싶었고, 편집장은 난감한 기색이 완연했지만 그 자리를 뜨지는 않았다. 아무도 소리를 지르거나 누군가의 뺨을 때리는 일은 없었고, 문학의 안온한 일탈 속에서 다함께 즐거워 보였다.

그런 자리들에서 사람들은 내게 어디에서 등단했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고,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내 손을 꼭 붙잡고 얘는 내 제자고 앞으로 크게 성공할 시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의 ‘걸프렌드세요?’ 표정을 짓고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나는 그런 게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딱히 변명할 말도 없었다. 그런 오해를 받은 어느 밤들 중 하루, 선생님은 돌아오는 택시에서 내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다. 이 택시기사는 우리를 대체 어떤 사이로 볼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나는 선생님을 놀린 적도 많다. 선생님이 정치를 하게 되면 국무총리가 될 거라고 하시기에, “선생님 국무총리하면 3개월 만에 성추문으로 쫓겨나요, 그런 거 하지 마세요.” 라고 했더니 좌중 모두가 왁자하게 웃었다. 선생님도 웃었다. “어, 그렇겠네, 난 쫓겨나겠네.” 선배들은 우리가 고발해 버릴 거라고, 청문회 기대하시라고 깔깔댔다. 그 농담은 우리의 모든 스킨십은 서로 ‘합의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만 성립할 수 있는 농담이었다. 어쩌면 그랬을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어느 날은 술에 취해 선생님 팔을 베고 잠이 든 적도 있다. 그런데 정말로 그런 합의가 ‘처음부터’ 있었던가?

어느 날은 남자 후배에게 여자 선배들이 장난치는 술자리에 있었다. 여자 선배들은 무릎 위에 앉아보라고 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데 허리를 확 안아버리기도 하고, 그 남자 후배의 허벅지를 쓰다듬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장난’이었고, 남자 후배도 웃었다. 나는 잠깐 화장실에 와서 기분이 싸해졌다. 이거 혹시 성추행이 아닐까. 자리에 돌아가서, “싫어하는데 하지 말아요.” 정도의 의견을 개진했다. 뭐 그 의견이 딱히 받아들여졌다기보다는 그냥 즐거운 분위기에서 그 행동들이 멈췄다. 지속적인 것이 아니고 단발적인 것이었다.

위에서 말한 여자선생님과는 다른 여자선생님이 너무 술이 취해서 후배인 남자 작가에게 키스하려는 모습도 본 적이 있다. 우리는 깜짝 놀라서 여자 선생님을 택시에 태워 보냈다. 선생님이 좀 취하시면 그럴 수도 있지 뭐. 라고 모두가 말할 때 나는 또 혼자 고민했다. 우리가 늘 보고 있는 것을 따라하게 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쩌면 내가 선생님이 손을 잡아도 아무렇지 않아하는 모습을 보고, 내 후배들은 아무렇지 않아야 한다고 느끼진 않았을까. 불편해도 참게 하지는 않았을까. 혹은 그런 문화니까 자연스럽게 젖어들지 않았을까. 선생님은 살면서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어보았을까. 거의 듣지 않지는 않았을까.

‘그때는 그런 문화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알고 있다. 그게 일종의 문화‘였다면 당연히 불편함이 도드라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둔해지고, 편해지고, 자연스러워지는 것. 이 ‘문화’를 공고히 하는데 한 역할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마음을 몹시 짓누른다. 하지만 동시에 “그건 그래도 ‘그런’ 건 아니었는데.” 하는 오기도 함께 든다. 세간에서 정의하는 성폭력의 범주란 때로 매우 넓으면서 또 매우 좁기 때문이다. 이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문화의 양상이 어떠한지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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