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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건 춥고 성폭력은 잘못이다

원래부터 옳지 않은 것이었다

ⓒhuffpost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고,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국민교육헌장이 사라지고 국기에 대한 맹세문이 바뀌기는 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는 국기법 시행령을 가지고 있다.

이 시행령을 두고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그 시대마저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자유롭고 정의로운가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만,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사람들은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한반도기를 보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전쟁의 고통, 이산가족의 아픔, 동포로서의 언어적·역사적 동질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다. 그러나 국가나 민족 같은 개인을 초월하는 집단에 대한 정체성은 세대가 거듭될수록 약화되고 있다. 따로 잘 살 수만 있다면 그것도 얼마든지 좋다는 생각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다.

평창올림픽을 치르면서 우리는 국가와 민족이 자동적으로 사람들에게 감격과 희생을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을 점점 명확히 깨닫게 될 것이다. 설령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어떤 희생이 필요하다는 데에 합의하더라도, 그것을 감당해야 할 사람을 정하는 방식은 충분히 공정해야 하고 당사자의 직접적인 동의를 필요로 한다. 대의명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평등하고 공정한 과정, 이해와 동의라는 절차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빙상연맹이나 스키협회의 실수에 항의하는 선수들에게, 본인들의 이기심으로 국가적, 민족적 축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식의 비판이 가능했을지 모른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조직위의 잘못으로 자원봉사자들이 겪는 추위는 국가나 민족이 녹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체감온도 영하 22도의 강추위 속에서도 자원봉사자들은 마냥 행복한 얼굴로 세계인의 대축제에 참여한다는 사실에 그저 감격할 뿐입니다’라는 리포트는 실은 원래부터 옳지 않은 것이었다.

개인보다 절대적으로 우선하는 인간 집단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가 속한 어떤 집단이 한 개인보다 우선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충분한 동의를 얻고 결과가 구성원 개개인의 행복에 도움이 될 때만 가능하다.

 

ⓒhyejin kang via Getty Images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발언으로 누구도 말하지 못했던 검찰 내부의 추악한 실체가 드러났다. 검찰이라는 ‘조직’의 특성상 상급자의 권위, 명령, 무시, 협박 등이 그러한 오랜 침묵의 직접적 원인이었음은 명확하다. 그러나 동시에 불법적이고 비인권적인 침묵의 강요가, ‘자잘한 일로 검찰의 명예를 실추시키면 안 된다’는 허울로 그럴듯하게 포장되었으리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그리하여 법무부와 검찰에서는 이 사건을 대하면서, 어디까지나 얼룩진 검찰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최종적인 목표를 둘 것이라는 점도 우리는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한 목표를 상정한다면 서지현이라는 개인은 물론 ‘검찰 내의 모든 여성 검사보다는 검찰이 더 중요하지’라는 식의 망상도 가능하다.

아니다. 틀렸다. 검찰이라는 조직이 어떤 명예를 가져야 하는지는 서지현 개인의 인권에 비하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런 종류의 일에서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사실과 진실이지 명예가 아니다.

추운 것은 추운 것이고 성폭력은 잘못된 것이다. 그뿐이다.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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