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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월 06일 21시 31분 KST

최영미 시인이 현실 속 ‘괴물’에 대해 밝힌 말

문단 내 성폭력 고발한 자신의 시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jtbc

시 ‘괴물’을 통해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한 최영미 시인이 인터뷰에 나와 심경을 밝혔다. 

최 시인은 여성 작가를 상대로 문단 안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으며, 그 피해 사례가 셀 수 없다고 폭로했다. 

최 시인은 6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시 ‘괴물’을 발표하게 된 경위를 자세히 소개했다. 

최 시인은 “작년 가을쯤 시 청탁을 받았으며, 오랜만에 메이저 잡지로부터 받았던 시 청탁이었다”라고 말했다. 성폭력에 대한 시를 쓴 이유에 대해서는 “(잡지사로부터)페미니즘 특집이니까 거기에 한정해서 시를 써달라고 했다”며 “고민을 하다가 이 문제(문단 내 성폭력)을 건드리지 않으면 내가 작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한국 문단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쓴 것이다”라고 답했다. 

시에서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원로 시인에 대해서는 “문학작품을 현실과 매치(match) 시키면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 시인은 문학작품의 창작 과정을 설명하면서 “특정인물을 생각하며 시를 쓰기 시작하지만 (창작의 중간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막 들어온다”며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쓰더라도 과장이 되기 마련이므로 그 결과물(문학작품)은 현실과는 별개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성폭력 가해자로 언급된 시인의 해명에 대해 최 시인은 “그 당사자 문인이 제가 처음 (시를 쓸 때) 떠오른 문인이라면 (그 해명은) 노추한 변명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해당 시인에 대해 “상습법으로 여러 차례 (그가 저지른) 너무나 많은 성추행·희롱을 목격했고 제가 피해를 보기도 했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최 시인은 문단 내 성폭력에 문제제기를 한 여성 작가들이 문단 권력자로부터 복수를 당하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최 시인은 문단 내 성폭력 사례에 대해 “문단 데뷔한 직후인 1993년 무렵부터 놀라울 정도로 충격적인 풍경을 목격했다”며 “(성폭력 사례는) 일일이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굉장히 많다”고 답했다. 

또 최 시인은 “(여성 작가가) 평론가·시인·소설가일 수 있는 이들의 성적인 요구를 거절하거나, 세련되지 못하고 거칠게 거절을 하게 되면 복수를 당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문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문집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는 남성 문인들에게 이른바 ‘찍히게’ 되면 제대로 된 평론을 받지 못하고 작가로서 알려질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 당한다는 뜻이다. 

최 시인은 “그래서 그런(성폭력에 대한) 문화를 방조하고 묵인하는 분위기가 이어져 왔다”며 “그들(가해자)은 한 두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문단 내 남성 작가뿐만 아니라 문학기자 등도 성폭력 가해자라고 지적했다. 

최 시인은 “문학 담당 기자들도 일부 성추행의 가해자”라며 “이들은 평론가의 말을 신뢰하면서 평론가와 마찬가지로 (문단에서 배제할 여성 작가에 대해) 무시를 한다”고 밝혔다. 

괴물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받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이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