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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월 06일 12시 24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2월 06일 12시 24분 KST

청년 남성들이여, 정관수술을 하자

남성으로서 여성의 낙태 비범죄화 운동에 연대하는 방법

 

huffpost

작년 봄, 완벽한 피임을 하고 싶었고,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을 전면에서 비웃고 싶었고, 마지막으로는 여성들의 낙태 비범죄화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싶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고안했는데, 그게 바로 정관수술이었다. 단돈 30만 원 정도로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니, 이만큼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운동이 어디에 있겠나.

하지만 정관수술을 위해 비뇨기과 의사 앞에 앉은 나는 “이게 무슨 소리요?”라고 물어야만 했다. 비뇨기과 의사들이 ‘미혼-무자녀 남성’에게 이 간단한 수술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이유를 물어보니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애초에 정관수술은 90%의 확률로 복구 가능한 수술 아닌가. 이렇게 반문하니 “생명 윤리적 측면도 있다”고 대답했다. 인구가 폭발해 문제가 되던 때, 박정희는 정관수술을 하면 예비군도 면제해 주고 신축 아파트 우선 분양권도 주지 않았는가. 생명 윤리는 인구에 비례해 그 가치가 등락하는 종목이란 말인가. 이렇게 반문하니 의사 양반은 이제 어쩔 도리가 없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부모님과 전화 통화를 하게 해달라”고. 나는 당시 만 서른셋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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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꽤 길게 논쟁을 펼치던 의사는 “어느 병원에서도 해주지 않을 거다”라고 말했다. 이 말이 실제인지 알아보기 위해 다음 병원으로 향했다. 무작위로 고른 비뇨기과에서도 진료실에 앉자마자 물어보는 것이 결혼 여부와 자녀의 수였고, 사실대로 미혼이며 자녀가 없다고 말하면 수술을 거부했다. 결국, 나는 세 번째 병원에서 “결혼 했고 쌍둥이 자녀가 있다”고 거짓말을 한 후에 수술대 위에 누울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대한비뇨기과학회에 문의하자, 한 관계자는 본인의 말이 공식적 입장은 아니라면서도 “생명 윤리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한 의사들의 노력이 아니겠는가”라는 말을 사뭇 진지하게 수화기로 전했다. 낙태 논쟁에서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으며 전개하던 케케묵은 논리를 남성의 정자에게도 들이민다는 사실이 재미있지 않은가? 갑자기 내 고환 속에 평생 갇혀 살다 죽을 정자들이 불쌍해지기라도 했느냐면 전혀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내 몸에 대한 나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 당했다는 사실에 굉장히 불쾌했다.

불법으로 규정된 수술도 아니고, 이제는 포경수술도 하지 않는 시대에, 비뇨기과가 위기라고 비뇨기과 의사들이 스스로 말하는 시대에 의료보험 혜택도 적용되지 않는 정관수술을 자발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어딘가 수상쩍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나의 고환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나는 이제 낙태 비범죄화를 외치는 여성들의 입장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신체와 임신 안 할 자유를 쥐락펴락 하는 것의 부당함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이 운동은 불법으로 못 박은 낙태가 과연 무엇을 위해 작동하고 있는가의 질문부터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경유해 개인이라는 존재의 존엄한 자유에 관한 질문에 이르는 꽤 많은 질문을 한국 사회에 던지고 있다.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는 한국 사회의 강경한 태도에는 분명하게도 ‘이성애 중심적’ 가치관과 ‘정상적인 가족의 형태’라는 관념이 깔려 있다. 이 태도를 기준으로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고, 미혼 가정에 대한 선입견을 유통하기도 한다. 이런 국가의 가족관은 ‘굉장히 많은’ 소수자들을 배제하면서 출산장려 정책에도 영향을 끼친다.

그렇기 때문에 가부장적 남성 중심의 구조적 중추와 맞서는 여성들의 이 운동은 성소수자나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이 연대의 과정에서 낙태 비범죄화 요구는 가족의 형태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는 성소수자들의 주장이나 여성 임금 인상과 유리천장을 없애자는 여성 노동자들의 주장과도 맞물린다.

이렇게 낙태 비범죄화 운동은 전통적 가치관이 가지고 있던 보수적인 관점의 폐해로부터 탈피를 도모하는 동시에 가족의 형태소를 변화시키자고 사회에 요구한다. 이 중요한 운동에 대부분의 남성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당사자가 아니라서일까?

그런 의미에서 정관수술은 여성들의 낙태 비범죄화 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운동이다. 임신 가능성을 합법적으로 없애버리면서도 개인의 몸에 관여하는 국가와 사회의 태도에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포궁은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여성들의 그 당연한 목소리에 “내 고환도 국가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 여성의 몸도 국가의 것이 아니다”라고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