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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월 04일 18시 17분 KST

[단독] ‘김기덕 사건’ 피해 여배우 “성폭력 만연해도 일 끊길까봐…”

그는 “서지현 검사 인터뷰를 보고 많은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서지현 검사님의 인터뷰를 보고 많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저도 사회를 바꾸는 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싶어 인터뷰에 응한 겁니다. 한 편으론 당당하게 이름을 밝히고 사회적 공감을 얻는 서 검사님이 부럽기도 하더군요. 그래도 검사니까 사람들이 믿어주는구나 싶어서요….”

지난해 8월 영화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일명 ‘김기덕 감독 사건’ 피해자인 배우 ㄱ씨를 4일 마포구 서교동 한 카페에서 마주했다. 일간지와의 첫 인터뷰였다.

그는 얘기하는 도중 여러번 울먹였다.

“사건이 보도됐을 때, 저는 피해자임에도 엄청난 악플에 시달렸어요. ‘꽃뱀이다’, ‘뜨고 싶어서 안달 났다’, ‘돈을 노리고 저런다’ 등등. 내가 톱스타였어도 이런 말을 들었을까 싶어 자괴감도 많이 들었습니다.”

ㄱ씨는 지난 2013년 김기덕 감독의 영화 <뫼비우스>에 출연했다 촬영장에서 남자 배우의 성기를 잡으라는 등 곤혹스러운 연기를 강요받았다. 김 감독으로부터 수차례 뺨을 얻어맞는 등 폭행을 당하고 모욕적인 언사도 들어야 했다. 충격을 받은 ㄱ씨는 결국 촬영을 중단했다.

“처음에는 분노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20여년 동안 배우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지인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죠. 그런데 다들 ‘상대는 유명 감독인데 문제를 제기해 봐야 너만 다친다’, ‘감독이 연기지도 하느라 그랬다고 주장할 텐데 그러면 게임 끝이다’라는 등의 말을 하더라고요.

‘감독은 그래도 된다’, ‘어떻게 감히 배우가 감독을 고소하냐’는 의식이 깔린 거죠.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절망감에 죽고 싶은 심정이었죠.

왜 4년이나 지나서야 문제를 제기하냐며 의도를 의심하는데, 아뇨,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게 되기까지 4년이나 걸린 겁니다. 사회구조가 그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한 거예요.”

여성단체와 변호사 사무실, 국가인권위원회 등을 돌아다니며 도움을 청하던 ㄱ씨는 지난해 1월 전국영화산업노조가 영화인 고충을 접수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곳을 찾으면서 비로소 법적 대응에 나서게 됐다. 이 사건은 여성계, 법조계, 영화계 등 광범위한 직군이 대책위를 꾸려 영화계 내의 뿌리 깊은 성폭력과 인권침해 문제에 공동대응한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됐다.

“영화계에선 ‘여배우는 줄 듯 말 듯 해야 한다’거나 여배우를 여성 성기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부르는 식의 언어폭력은 일상이에요. 영화계 관계자가 어두운 주차장에서 갑자기 뽀뽀해서 항의를 했더니 오히려 동네방네 저를 욕하고 다닌 적도 있어요. 집에 데려다준다며 차에 태운 뒤 뜬금없이 ‘애인과 헤어졌다’며 성행위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제작사 대표도 있었고요. 말을 하자면 끝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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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배우는 지방 촬영을 갔다가 숙소에서 감독에게 성폭행을 당한 경우도 있다.

“어떤 감독은 여배우들을 성폭행한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떠들고 다니는데, 피해자들은 혹시라도 소문날까 숨을 죽이죠. 이게 영화계의 현실이에요”

그러나 피해자들은 사실을 알려봐야 ‘이미지를 망치고 일이 끊기는 피해’는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 될 거라는 두려움에 시달린다. 촬영장이나 사적인 공간에서 은밀히 벌어지는 ‘성폭력 사실’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것도 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다.

“저는 고 장자연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된 이유도 여기 있다고 봐요. 녹취 파일이나 시시티브이 등이 없으면 피해 사실을 증명하기 쉽지 않으니까요.”

용기 내어 대응에 나섰지만, ㄱ씨도 100% 승소를 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법원은 김기덕 감독에게 성폭력 혐의는 제외하고 폭행 혐의만을 인정해 벌금 500만원의 약식명령을 결정했다. ㄱ씨와 대책위는 항고한 상태다.

“저 혼자만의 한풀이를 위한 거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저는 이 사건을 통해 더 많은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털어놓고 동참하기를 원해요. 그래서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끝까지 갈 겁니다.”

ㄱ씨는 현재 드라마·영화 등의 일이 거의 다 끊긴 상태다. 실명과 얼굴을 드러내고 ‘미투 운동’에 동참하고 싶지만 익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것도 “생계 때문”이다.

“저는 미투 운동이 정말 훌륭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한편으론 피해자가 반드시 이름과 얼굴을 다 드러내고 문제를 제기해야 진정성을 인정받는 분위기가 될까 봐 두렵기도 해요. 가해자의 실명 아래 익명의 피해자가 연대하는 방법은 불가능할까요? 저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미투 운동의 방법도 다양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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