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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개가 아니다

  • 최황
  • 입력 2018.02.01 16:48
  • 수정 2018.02.02 17:07
ⓒhuffpost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공원 관리인이 “이 개는 입마개를 착용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자신이 데리고 나온 동물을 가리키며 “이건 개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이것이 개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한다.

사전적 의미의 개는 가축화된 늑대로부터 이어진 어떤 종, 학명으로는 카니스 라푸스 파밀리아리스(Canis Lapus Familiaris), 식육목 개과에 속하는 동물이다. 하지만 사전적 의미만으로 어떤 동물이 확실히 개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

우리가 개라는 종을 인지 할 때 시청각적 정보가 더 크게 작용할 것이다. 몸이 짧거나 긴 털로 덮여있고, 짧거나 긴 꼬리가 있으며, 짧거나 긴 주둥이가 있고, 짧거나 긴 다리를 가지고 있다. 늘어지거나 선 귀를 가졌고 사납거나 순한 인상을 가졌으며 검은색, 갈색, 크림색, 초코렛 색, 회색, 흰색, 금색, 은색 등의 털색을 가지고 있다. 왈, 월, 멍, 뭐, 멈, 엉, 왕 등의 소리를 내어 짖는다. 크기는 손바닥만 한 것부터 송아지만 한 것까지 다양하다. 송곳니가 있으며, 꽤 흔히 볼 수 있다. 전신에 땀구멍이 있지 않아 침을 흘리는 방법으로 수분 조절을 한다. 수컷의 경우 한쪽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누며, 냄새를 맡는 것을 좋아한다. 대충 이 정도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 그 동물을 ‘개’라고 인식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질 수 있다. 이 정보를 토대로 ‘개’라고 인식한 동물이 개가 아닐 확률은 얼마나 될까? 말장난 같지만 이건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규정하고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규정짓는 것’의 의미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해 개가 사람을 무는 사고가 유독 많이 보도됐고, 이런 유행성 보도가 문제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넘어 개와 개를 키우는 사람에 대한 혐오로까지 이어진 끝에 ‘강력한 처벌과 대책’을 요구하는 여론이 형성됐다. 그러자 얼마 전 정부는 맹견의 종류를 추가하는가 하면 발부터 어깨까지의 높이가 40cm를 넘는 개도 입마개 착용을 의무화한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위험하지 않다는 인증을 받은 경우 입마개 의무 착용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재미있는 조항도 있었다.

이 방안의 중심엔 ‘위험한 개에 관해 규정짓기’라는 아주 중요한 작업이 자리 잡고 있다. 아마도 이 작업을 위해 굉장히 많은 회의와 토론을 거쳤을 것이다. ‘위험한 개’와 그렇지 않은 개를 구분하기 위한 어떤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했을 것이고 그 기준이 바로 ‘발부터 어깨까지의 높이가 40cm’라는 것이다. 아마도 정부는 경건한 마음으로 이 중대한 발표를 했으리라. 이건 사실 꽤 우스운 일이다. “우리가 드디어 ‘위험한 개의 집합’을 규정했다”고 말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집합이란 어떤 조건에 따라 결정되는 요소의 모임을 말하며, 그 요소를 집합의 원소라고 한다. 어떤 원소가 그 집합에 속하는지 아닌지 식별할 수 있어야 하고, 집합에서 취한 두 원소가 서로 같은지, 같지 않은지를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안경을 착용한 사람의 집합’은 규정할 수 있지만 ‘무서운 사람의 집합’은 규정할 수 없다. 이번에 정부가 규정한 ‘위험한 개의 집합’은 후자에 가깝다.

집합과 명제는 논리학의 기본이며 논리학은 법률과 제도 설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구조를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위험한 개의 집합’이라는 논리적으로 존재 불가능한 집합을 토대로 법과 제도를 만든다면 구조 자체가 부실한 모양새가 될 것이다. 차라리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는 통계에 기댄 믿음이 더욱 논리적으로 들린다.

‘발부터 어깨까지의 높이가 40cm를 넘는 개는 위험하다’는 명제가 참이 되려면 그를 뒷받침하는 명확한 조건들이 반드시 따라붙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조건은 존재할 리가 없고 정부가 덧붙인 예외 조항은 더욱 공허하다. 역으로 ‘안전한 개라는 인증’ 역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개에게 약속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다면 말이다.

법과 제도는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논리적 결함 없이 만들어져야만 한다. 결함이 있는 논리로 만들어진 법과 제도가 초래하는 혼란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의 언어로 충분히 설명 가능한 인간의 행위에 관한 규칙이다. 어떤 사람이 개를 키우면 안 되는지, 어떤 사람이 동물과 접촉을 피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개를 키워야 학대라고 약속할 수 있는지와 같은 것들 말이다. 게다가 모든 문제는 사람의 문제 아닌가. 개를 키우는 사람의 태도 문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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