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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09일 11시 00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0월 13일 06시 39분 KST

1인가구 공동거주 함께주택의 신나는 실험

flickr

지난 9월20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한 다가구 주택 문이 활짝 열렸다. 마당과 현관, 길가로 향한 거실 창틀에까지 손님들이 빼곡히 앉았다.

이날 집들이를 치른 이곳은 싱글들 10명이 함께 사는 ‘함께주택’이다. 오래된 집을 1인가구 공동주택으로 고쳐 지은 함께주택은 성미산 공동주택 실험을 해오던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 식구들과 동네 주민들이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 만든 주택협동조합의 실험 결과물 1호다.

이 집이 생긴 이유를 먼저 물리적으로 헤아려 볼 수 있다. 1990년 112.4㎡(34평) 넓이 땅에 빨간 벽돌 건물로 지어진 이 집은 원래는 층마다 59.01㎡(17.9평) 넓이에 각각 방 3개와 욕실이 있는 똑같은 구조로 지하층, 지상 1층, 2층에 3가구가 살 수 있었다. 1인가구 전용주택으로 고치면서 9.43㎡ 넓이의 큰방 5개와 5.74㎡의 작은방 5개에다 층마다 공동 거실과 주방을, 1층엔 마을 사랑방까지 만들었으니 같은 집이 더 많은 가족을 품게 된 셈이다. 게다가 서울 원룸 전세 시세는 평균 9000만원인데 이곳에 살게 된 싱글들은 보통 보증금 1000만원에 30만원 정도 월세를 내니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다.

여럿이 모여 땅을 구입하고 집을 짓는 소행주 프로젝트는 오르는 땅값과 복잡한 설계로 빨리 만들어지기 어려웠던 것에 비해 ‘함께주택’은 올해 1월 오래된 집을 사서 8월에 첫 입주자가 들어왔으니 속도도 빠르다. 협동조합이 집을 소유하고 필요한 1인가구에게 임대를 하는 식으로 소유와 임대를 분리하면서 집에 대한 여러 번거로운 과정과 그 돈으로는 불가능하다는 편견이 걷혔다.

땅값과 공사비는 성미산 마을 생협 커뮤니티, 소행주, 주거 문제에 관심 있는 동네 주민들과 입주자 33명이 모여 만든 조합이 우선 종잣돈을 마련하고 부족한 돈은 서울시 사회투자기금인 ‘소셜 하우징’에서 대출을 받아 충당했다. 매달 받는 월세로 대출금 이자와 원금까지 조금씩 갚아 나간다.

한 지붕 열 가족의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마당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지하 1층 공동 거실에선 카페처럼 따뜻한 불빛이 흘러나온다. 원래는 지나는 사람들 눈을 타기 쉬운 반지하 집을 반쯤 가리기 위해 계단 난간과 담이 둘러 있었지만 모두 헐어내고 계단은 오른쪽으로 정비했다. 지하엔 방 3개, 지상 1층과 2층엔 각각 4개의 방이 있어서 10명의 독립생활자가 쓰고 남는 방 1개는 손님방 겸 마을 사랑방이다. 얼핏 평범한 빨간 벽돌 주택이지만 방마다 달린 1.2㎡의 작은 베란다와 옥상 계단 난간을 모두 흰색으로 둘러 통일감이 느껴진다. 셰어하우스엔 방마다 베란다가 필수다. 좁은 방에 숨통을 트이고 독립공간을 넓힐 목적이다.

이 집을 설계한 생활건축연구소 홍윤주 소장은 “지난해 11월 처음 함께주택협동조합과 회의를 시작했을 땐 구현해야 할 것은 많고 가진 돈은 적어서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인가구의 독립공간을 철저히 지키면서도 밖으로 열린 공간, 그들끼리 소통하는 공간도 꼭 있어야 하니 공사 과정도 변화무쌍했다”고 돌아본다. 그래도 끝까지 지켜진 원칙은 “원래 있던 집에서 쓸 수 있는 것은 계속 쓴다”는 것과 “10명의 독립생활을 보장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함께 주택의 공동 주방

손대면 가장자리가 부서져 버리던 1, 2층 사이 낡은 대리석 계단엔 쇠를 덧댔다. 2층 계단은 나무로 둘러쌌다. 도배는 하지 않고 페인트로 벽과 천장을 칠했다. 단열재가 보강된 3층 천장은 나무로 마감했다. 거실 바닥엔 장판이나 마루 대신 수성 코팅제를 썼다. 천장과 바닥에서 집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지만 누추하진 않다.

시공을 맡은 공간공방미용실 김원일 실장은 “보통은 천장에 석고 보드, 퍼티, 페인트칠 등 3단계 공정을 밟는다. 그런데 우리는 시간도 돈도 없으니까 대신 친환경 합판을 붙였다. 관습적으로 마감재에 공을 들이는데 그게 없으면 정말 불편한지, 보기 싫은지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우리나라는 벽돌 건물 수명을 40~50년 정도로 보지만, 외국에선 100~200년 정도, 길게는 반영구적으로 함께 갈 집이라고 생각하고 늘 관리한다. 실제로 얼마나 쓸 수 있을지도 모르면서 굳이 왜 다 부수고 새로 만들어야 할까, 그런 질문 끝에 태어난 집”이라고 설명했다.

마감재는 줄였지만 대신 공간에는 아낌이 없다. 욕실 앞에는 파우더룸을 두고, 화장실도 더 늘렸다. 10명의 독립생활자라는 점을 고려해서 방방마다 두꺼운 벽을 세워 소리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했다. 문 열고 나오면 다른 식구가 있지만 문 닫으면 나만의 집이다. 김 실장은 “보통 집을 고치려면 새로 짓는 비용의 3분의 2 정도가 든다고 한다. 이 집은 그보다 좀 더 들었다. 나무를 재단할 시간이 없어서 원판 그대로 붙이고, 옥상 가림막을 만들 돈이 없어서 유리처럼 보이는 투명한 방수천을 댔다. 부족한 시간과 예산을 아이디어와 손으로 메꾼 이 집의 콘셉트는 ‘손맛’”이라며 웃었다.

손맛으로 가꾸어진 집에는 여자 여덟, 남자 둘이 함께 산다. 23살 고시준비생부터 48살 요리사까지 직업도 다양하지만 대부분은 회사원이다. 다른 원룸 주택처럼 낮에는 조용하다가 밤이나 주말이면 하나둘씩 공용거실에 모여든다.

“혼자 살 땐 고인 물이 되는 것 같았어요.”(별명 갱구·30·2층 입주자), “혼자 사니 자신을 방치하는 느낌? 옆방에서 사람 기척을 듣고 싶었어요.”(황자양·33·1층 입주자), “이보다 좋은 조건으로 혼자 살 곳을 찾긴 어렵죠.”(별명 젠·44·2층 입주자) 이유도 다양한 이들이 같이 살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됐다. “이젠 삭막하지는 않을 거야, 그치?” 요리를 해서 다른 식구들을 먹이기 좋아한다는 오아시스(별명·48·지하 1층 입주자)가 저녁 식탁에서 이렇게 속삭이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원룸에서, 고시원에서, 늘 닫힌 집에서, 햇볕이 비치는 이곳으로 온 싱글들은 2주에 한번씩 입주자 회의를 하며 청소와 장보기를 나누고 마음과 생활방식을 맞춘다. 일본 사회학자 우치다 다쓰루는 “자립이란 나 없인 살 수 없는 사람들을 늘리는 것”이라고 했다. 함께주택에 사는 10명의 1인가구 생활자들은 자립을 익히는 중이다.

함께주택 2호, 3호를 준비중이라는 함께주택협동조합 대표 박종숙씨는 “이번엔 1인가구 10집이지만 나중엔 가족이 있는 10집을 모으고 싶다. 굳이 내 집을 가지지 않더라도 거주한 만큼 적정한 사용료를 내면 되는 그런 집을 계속 만들고 싶다. 땅값이 오르내리면 민간이 하기엔 버거운 일이라서 공공이 함께 투자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