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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0일 05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2월 10일 14시 12분 KST

흥행사는 위를 본다

코크란은 그의 자서전에서 젊고 야망 있는 제작자들에게 이렇게 충고하고 있다. "절대로 관객을 위해 쇼를 올리지 마라. 오히려 항상 너 자신을 위해 올리되 최선을 다해서 제작해라. 그러면 아마 관객이 보러 올 것이다." 이 말은 매킨토시가 일생 동안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좌우명이기도 했다.

한국 공연계가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투정 투성이다. 스스로의 혁신보다 정부의 지원과 작은 시장 탓만 하고 있다. 세상은 늘 기발한 상상이 바꾼다. 혁신은 죽여주는 생각으로 가능하다. 이 글을 잠시나마 몸담았고, 아직도 사랑하는 한국 공연계를 위해 바친다.

내 심장이 멈출 뻔했던 한 편의 공연.

2011년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하 '팬텀'>이 초연한지 25년이 되는 해다. 2004년 영화로도 만들어진 팬텀은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의 대표작이다. 초연 당시 주연을 맡은 마이클 크로포드와 사라 브라이트만은 이후 스타덤에 오른다. 이후 팬텀은 올리비에상과 토니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며 뮤지컬의 표준으로 자리 잡는다.

탄생 25주년을 맡아 영국 로얄 알버트 홀에서 열린 기념 공연은 그야말로 죽여주는 예술이었다. 공연 실황을 영화로 관람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25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명곡과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이어지는 화려한 커튼콜 때문만은 아니었다. 25년간 숨겨져 있던 팬텀의 진짜 주인공, 프로듀서 캐머런 매킨토시 때문이었다.

2시간 30분의 공연이 끝나고 난 후,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커튼콜이 시작됐다. 백미는 팬텀의 여신이라 불리는 사라 브라이트만의 등장. 그녀를 둘러싸고 역대 최강급 팬텀들이 부르는 주제가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커튼콜이 끝나고 작곡가 웨버가 등장한다. 마이크를 잡은 웨버는 25년간 팬텀을 함께 만든 모든 사람을 소개한다. 여기까지는 웨버가 주인공 같았다.

웨버는 말한다. 이 작품은 캐머런 매킨토시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이어서 매킨토시를 무대로 부른다. 커튼이 열리고 매킨토시가 나오는가 싶었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다! 양옆에 이번 공연의 연출가, 안무가 그리고 주연배우들과 손을 잡고 나온다. 매킨토시에게 마이크를 건네는 웨버, 하지만 매킨토시는 마이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 그리고 유령처럼 뒤로 사라진다.

무대의 그림자가 되어 세상을 바꾼 프로듀서.

웨버와 매킨토시는 20대 초반에 만난다. 이후 그들은 세계 뮤지컬의 지형도를 바꾸었다. 약관 20세의 나이에 <요셉과 어메이징 테크닉컬러 드림코트>로 데뷔한 웨버는 이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에비타>, <캐츠>, <오페라의 유령>,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 <뷰티풀 게임>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뮤지컬의 황제로 군림한다. 그런데 그의 뒤에는 늘 매킨토시가 있었다.

캐머런 매킨토시, 그는 세계 4대 뮤지컬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이다. 1946년생인 매킨토시는 웨버와 마찬가지로 20세의 나이에 뮤지컬 프로듀서로 데뷔했다. 흔히 세계 4대 뮤지컬이라 불리는 <캐츠>, <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 <미스 사이공>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성공의 반열에 오른 작품들이다. 그는 현재 영국에 7개의 극장을 소유하고 있다.

매킨토시는 수백 편의 뮤지컬을 제작했고, 그중 단 4편(4대 뮤지컬)만으로 지금까지 10조 원 가까운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1995년 문화수출의 공로를 인정받아 퀸즈 어워드를 수상하였고, 1996년에는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다. 하지만 매킨토시와 웨버의 만남이 위대한 이유는 단지 돈과 명예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뮤지컬의 기존 질서를 바꾸는 기적을 창조했다.

1970년대, 당시의 영국은 뮤지컬을 상당히 가벼운 예술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나라 영국은 연극이라는 전통예술에 심취해 있었고, 새롭게 등장한 뮤지컬을 예술의 영역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영국의 뮤지컬 작곡가들이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졌고, 이후 1981년까지 영국 뮤지컬은 길고 긴 휴경(休耕) 기에 접어들기에 이른다.

이런 시기에 웨버와 매킨토시가 만났다. 둘의 만남은 뮤지컬 <캐츠>의 성공신화로 이어진다. 이후 세계 뮤지컬의 본좌라 불리는 미국 브로드웨이는 영국 뮤지컬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영국 뮤지컬은 브로드웨이를 거쳐 전 세계 140여 개 국으로 팔려나가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영국 뮤지컬의 황금시대가 열린 것이다. 무려 30년 넘게 이어지는 뮤지컬의 르네상스였다.

약관의 청년 둘을 바꾼 죽여주는 생각.

매킨토시는 이러한 결과의 원인을 코크란(Cochran)의 자서전 『흥행사는 위를 본다(A Showman Looks On)』를 통해 설명한다. 코크란은 그의 자서전에서 젊고 야망 있는 제작자들에게 이렇게 충고하고 있다.

절대로 관객을 위해 쇼를 올리지 마라. 오히려 항상 너 자신을 위해 올리되 최선을 다해서 제작해라. 그러면 아마 관객이 보러 올 것이다.

이 말은 매킨토시가 일생 동안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좌우명이기도 했다. 이 말을 오늘을 사는 우리 공연인들에게 해준다면 이렇지 않을까? 당신이 만족하지 못하는 공연은 만들지도 팔지도 말아라. 당신의 심장을 터지게 만드는 공연을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라. 그러면 아마 관객들이 미어터지게 몰려올 것이다. 돈 몇 푼 더 벌 것인가? 세상을 바꿀 것인가? 선택하라!

* 이 글은 디지털 마케팅 매거진 <월간 IM> 8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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