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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09일 06시 24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2월 09일 14시 12분 KST

한글, 최고의 자산

스마트폰 자판을 칠 때마다 천지인(天地人) 사상을 생각하고, 컴퓨터 자판에 모음과 자음이 완벽하게 분리되어 좌우의 손이 교대로 글을 완성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글에 담긴 창의력과 예지력에 감탄하곤 합니다. 한글의 기본 구성 원리인 천지인 사상이 현대의 스마트폰 자판의 구성 원리로 그대로 적용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동안 이 공간에서 지식, 정보, 사상의 흐름, 중요성에 대해 자주 말해왔습니다. 한글날을 맞아 오늘은 우리가 가진 최고의 지식자산이자 정보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한글'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정보는 나눌수록 커집니다. 나눈 정보는 지식으로 축적됩니다. 정보 교환이 많을수록, 지식이 축적될수록 그 사회는 힘이 커집니다. 문자는 정보와 지식 유통의 매개체입니다. 그래서 문자의 힘은 강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글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15세기 금속활자인쇄술이 보급되면서 정보 유통이 활발해졌고, 그 후 특정 계층에만 허락되던 다양한 정보가 대중에까지 급속하게 확산되었습니다. 유럽 대중은 성경, 소설, 시, 철학과 같은 활자화된 지식을 접할 수 있었고, 그때부터 유럽 사회는 세계의 중심에 설 수 있었습니다.

중국이 여러 민족과 지배권 다툼을 하면서 꾸준히 영토를 넓힐 수 있었던 것은 한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자로 역사를 기록하고 문화를 퍼뜨리며 이민족을 한족으로 동화시켜 왔습니다.

여러 민족이 섞여 살면서도 미국이 하나의 나라로 인식될 수 있는 이유 역시 미국 사람들이 하나의 언어와 통일된 문자를 쓰기 때문입니다.

패망 후 일본이 단시간에 세계 경제의 선봉에 설 수 있었던 이유도 그네들만의 경제적이고 단출한 문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학적인 문자인 한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본(人本)과 인애(人愛)의 깊은 뜻도 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인문과 과학이 한글 속에 어우러져 있습니다. 스마트폰 자판을 칠 때마다 천지인(天地人) 사상을 생각하고, 컴퓨터 자판에 모음과 자음이 완벽하게 분리되어 좌우의 손이 교대로 글을 완성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글에 담긴 창의력과 예지력에 감탄하곤 합니다. 한글의 기본 구성 원리인 천지인 사상이 현대의 스마트폰 자판의 구성 원리로 그대로 적용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한글은 가장 젊은 문자이기도 합니다. 창제된 지 600년이 넘었지만 실제로 한반도에서 널리 사용된 기간은 100년 남짓합니다. 표음문자 가운데 제일 덜 알려진 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한글을 사용하려는 곳이 점차 늘어갈 것이라고 감히 예상합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이 근면하고 똑똑해서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다른 민족이라고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근면과 똑똑함의 차이는 막연하고 검증할 수 없습니다. 이런 민족의 근성만으로 급성장의 배경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뭔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그 중요한 차이가 '한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에 다니지 않고 공부를 하지 않아도 누구나 거리의 간판을 읽을 줄 압니다. 극장에서 자막을 보며 외국 영화를 즐깁니다. 손에 든 스마트폰만 열면 시사기사, 문학작품에 각종 사전까지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정보 유통의 창구가 열려 있고 기반이 잘 갖춰진 셈입니다.

우리가 전후 50년 남짓한 동안에 폐허 속에서 일어서서 초고속으로 성장해 세계 8위의 무역교역국이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근면과 성실을 넘어서는 정보 유통, 지식 축적의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한글에 인터넷이 더해지면서 정보 유통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어떤 곳보다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15세기부터 유럽이 혁신적인 정보 유통의 기반을 다졌던 것처럼 우리도 지금 혁신의 시절을 살고 있습니다. 세계 유수의 학자들이 우리의 행동양식과 미래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전쟁의 와중에 다른 보물들 다 놔두고 훈민정음해례본만 챙겨서 다닌 뜻을 새겨봐야 합니다. 전 자판을 치는 이 순간에도 한글의 맛과 그 고마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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