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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07일 12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2월 07일 14시 12분 KST

'Deep Sea'로 가는 길

사람들은 "어쩌면 내일 당장 불도저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게 내일일지도, 다음 주일지도, 언제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공포는 묘하게도, 그리고 안타깝게도 '불안한 기다림'이라는 모습으로 일상에 스며든다. 나는 이곳에서 차라리 난민이었으면 이보다 낫지 않겠냐고도 말하고, 우리는 쓰레기 취급을 받는 존재(rubbish)인지도 모른다며 한탄하는 이들을 만난다. 사람보다 개발이 먼저인 것은 이미 너무나 많은 곳에서 비판받았던 일인데, 어째서인지 장소를 불문하고 반복된다.

11A와 오디온

내가 처음 11A 마타투(Matatu: 케냐의 대표적인 대중교통 수단으로 주로 14인용이나 33인용으로 운행)를 타기 위해 더듬더듬 찾아갔던 곳은 보통 사람들에게 "오디온(Odeon)"이라고 불리는 정류장이었다. 이곳은 나이로비 톰 음보야 스트릿(Tom Mboya Street)과 오디온 시네마 건물이 있는 라테마 로드(Latema Road)가 만나는 곳에서 시작하는데, 그 길의 시작부터 끝까지 수많은 마타투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출발 순서를 기다리는 마타투 엔진의 거친 소음, 호객꾼들이 손님을 부르는 소리, 그리고 여기저기서 틀어놓은 유행가의 빠른 리듬 속에서 11A라고 쓰인 표지판을 찾아 자리가 남아 있는 마타투에 올라탄다.

마타투가 출발하면 라테마 로드를 벗어나서 인도 상인들의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복잡한 리버 로드(River Road)로 나가는데 4년 전에 처음 이곳에 왔을 때에 비해 요즘에는 중국 상인들의 가게들이 부쩍 눈에 띈다. 리버 로드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마타투, 음코코테니(Mkokoteni: 리어카 종류의 수레), 그리고 오토바이 택시들을 뚫고 나오면 응가라(Ngara)를 끼고 티카 로드(Thika Road)로 나갈 수 있는 고가도로가 나온다. 이 주변은 길가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많은 곳인데, 단속을 피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의 일상이 마타투 창 밖으로 비치고는 한다. 또 교통체증에 차들이 멈춰 서면 길가에서 바나나나 사탕을 파는 사람들과 본드를 담은 통을 입에 물고 다니는 거리의 아이들이 맨발로 쏟아져 나와서 배가 고프다는 바디랭귀지로 차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의사전달을 하려고 애쓴다.

파크랜즈(Parklands), 그리고 케냐의 인도 사회

11A가 응가라를 지나 목적지인 파크랜즈를 향해서 달리면 빨간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는 시리 스와미나라얀(Shri Swaminarayan) 힌두 사원의 거대한 몸통이 눈에 들어온다. 거기서부터는 세계 최대의 홍차 생산지인 리무르로 이어지는 리무르 로드(Limuru Road)가 시작되는데, 그 초입에 있는 지역이 성공한 인도계의 사람들이 사는 파크랜즈 지역이다.

케냐에서 보통 아시안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20세기 초 영국 식민 정부가 끌고 온 인도 출신의 철도 노동자들의 후손들이다. 식민지 시대 이들이 주로 모여 살았던 곳은 지금은 소말리 사람들의 리틀 모가디슈(Little Mogadishu)라고 불리는 '이스틀리(Eastleigh)'인데, 중산층으로 성장한 인도계 사람들이 이스틀리를 떠나 도시의 남쪽에 있는 사우스씨(South C)나 사우스비(South B)로 이동했고, 거기서 또 부유층으로 성장한 사람들이 파크랜즈로 이동해서 살고 있다. 파크랜즈에서 아시안 사람들이 많이 사는 거주지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아가 칸(Aga Khan) 대학병원이 있는데, 아가 칸은 이슬람 시아파에서 두 번째로 큰 니자리 그룹의 세습 지도자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현 아가 칸은 어린 시절을 나이로비에서 보낸 사람으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가지고 학교, 병원, 호텔 및 사회사업 등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이리지(Highridge) 그리고 딥씨(Deep Sea)

아가 칸 대학 병원을 지난 11A 마타투 안에는 빈자리가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병원과 병원 주변에 있는 인도계 사람들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주변에 볼일이 있는 사람들이 다 내리면 다음으로 마타투가 향하는 종점은 파크랜즈 안에서도 더 부유한 지역으로 여겨지는 하이리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점이 가까워질수록 승객의 숫자는 거의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보통은 몇 사람밖에 남지 않은 마타투를 운영하는 것이 시간낭비이기 때문에 차장들과 기사들은 하나의 마타투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그 한 대만 종점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다시 시내로 가는 사람들을 태워서 돌아가기 위해서 멈춘다.

어느 날, 내가 탄 마타투에는 나와 어떤 아저씨 한 사람밖에 남지 않았는데, 나는 왠지 직감적으로 아저씨와 내가 같은 곳을 향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종점에서 마타투에서 내려 걸어가면서 쭈뼛거리면서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어디가세요?"

"나 요 앞에 키지지(Kijiji: 작은 마을)에 가는데."

"딥씨(Deep Sea)에 가세요?"

"응, 혹시 너도?"

"저도 딥씨에 가는 중이에요."

주변을 지나다니는 고급 승용차들을 피해 약간의 내리막을 거쳐서 내려가면, 이슬람 사원 하나와 새로 올라가는 고급 호텔 등의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최근까지 이 주변에도 수스와(Suswa)라는 가난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있었지만, 땅의 소유자들이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공동체는 철거되었다. 이 지역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여기에 키지지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있을 것이라고는 잘 알지 못하는데, 사원 앞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틀어서 몸을 돌리면 그곳이 바로 딥씨(Deep Sea), 수십년 전부터 부유한 사람들의 가정부, 운전사, 정원사 등으로 일을 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동체가 시작되는 곳이다.

딥씨는 길쭉하고 또 깊숙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데, 지도자 한 사람의 말을 빌리면 "부자 중의 부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뭔가 섬처럼 두둥실 떠 있는 그런 땅이다. 이 공간의 중간을 관통하는 비포장 도로는 지형이 울퉁불퉁 불규칙하기 때문에 걷기도 힘들고 중간중간 고여 있는 오수와 오물들을 피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하는 이야기고, 이곳의 아이들은 그들의 근육과 몸이 기억하는 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그 지형을 이용하면서 걷고, 뛰고, 또 놀이를 한다. 커다란 플라스틱 뚜껑 같은 것을 굴렁쇠처럼 굴리면서 놀기도 하고, 못 쓰는 통에 줄을 연결해서 울퉁불퉁한 길 위에서 끌고 다니기도 하는데, 주로 몸집이 작은 아이들이 그 안에 타고, 큰 아이들이 달리면서 끌어주는 모습을 많이 본다.

딥씨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기다리는' 공포

그 길 한복판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새로 올라가는 건물들의 콘크리트 몸체가 보이는데 다시 눈을 내리면 얄팍하고 녹슨 양철들을 덧댄 집들이 끝도 없이 양옆으로 길게, 그리고 깊숙이 이어진다. 토요일이라 길목에서 아주머니들이 큰 플라스틱 대야에 비누를 풀어 줄을 지어 빨래를 하고, 학교에 가지 않은 아이들은 바람 빠진 축구공이나 새끼줄, 부서진 플라스틱 조각들을 장난감 삼아서 논다. 양철집 사이사이에 할 일이 없는 젊은이들이 낡은 당구대를 들여다가 당구를 치기도 하고, 무리를 지어 앉아서 잡담을 하기도 하는데, 나 같은 외국인이 들어오면 손을 흔들어 인사 정도는 해주는 여유가 있다. 또 토요일에도 일을 하는 주변 공사장 인부들에게 가져다줄 점심을 하는 아줌마들도 있는데 이들이 만드는 우갈리(Ugali: 옥수수 가루를 찐 주식)와 수쿠마 위키(Sukuma Wiki: 케일의 일종으로 케냐에서 가장 흔히 먹는 채소)가 커다란 대야에 산과 같은 모양으로 수북하게 쌓인다.

나와 함께 걸어들어온 아저씨의 이름은 캄바(Kamba) 사람들의 땅인 우캄바니(Ukambani)에서 많이 쓰는 이름이라 내가 아는 캄바 인사를 했더니, 아저씨는 그게 반가우셨는지 내가 친구를 만날 때까지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잠시 멈추고 기다리신다. 그래서 잠시 아저씨가 무슨 일을 하시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눈길을 돌리니 보랏빛 치마를 입고 내게 웃으면서 걸어오는 유니스(실명 아님)의 얼굴이 보인다.

그날은 유니스의 집에 두 번째로 방문하던 날이었는데, 딥씨의 지리가 익숙하지 않았던 내가 혼자 찾아가는 것은 무리였다. 지금은 요령을 터득해서 혼자서도 그 집을 찾을 수 있는데, 일단 도착해서 확인하는 것이 대문 앞에 붙은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mnesty International: 국제사면위원회)의 커다란 스티커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딥씨를 위해서 여러 가지 지원을 하고 있는데, 특히 불안정한 주거상태로 인해 강제로 시행될 수 있는 철거에 대비하여 사람들의 권익을 지키고자 애쓰는 공동체의 지도자들에게 여러 가지 정보나 교육을 통해서 도움을 주고 있다.

나이로비에는 총 200군데가 넘는 informal settlements, 주로 슬럼이라고 불리는 곳들이 있다. 그 중에서 키베라(Kibera 또는 Kibra)나 마타레(Mathare) 같은 유명 슬럼들은 해외원조나 NGO들에 상당히 인기가 많은 곳들이라서 알고 보면 슬럼 안에 다국적 의료, 교육, 종교 프로젝트들이 활성화되어 있다. 반면, 이보다 소규모의 수많은 작은 슬럼들은 그 어떤 지원도 기대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공간에 마치 섬처럼 자리 잡은 슬럼들은 언제 어떻게 퇴거당할지 모를 불안이 일상처럼 스며들어 있다. 쉽게 말하면 정부 입장에서는 키베라 같은 슬럼에는 외부의 시선 때문에 불도저를 보낼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이름도 알려져 있지 않은, 그리고 심지어 부자 동네 사이에 끼여서 형성된 자그만 공간은 예상할 수 없는 철거에 대해서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딥씨에는 2007년 정도부터는 매해 큰 불이 났었고, 사람들이 죽고 다친 일이 많았다. 주변에서 이름난 사업가가 이 땅에 자기가 짓는 호텔의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어쩌면 그가 이곳의 만 이천여 명의 사람들을 쫓아내려고 불을 질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다시 또 양철판을 이어 삶을 이어갔고, 아이들은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그 사업가에 이어 나타난 것은 바로 정부였다. 딥씨가 자리하고 있는 땅의 절반 정도는 보통 Road Reserve라고 불리는 도로용지이다. 저 멀리 도시의 동쪽에서 시작해서 이 서쪽까지 이어지는 Missing Links(도로 계획상에는 있지만 실제로 지어지지 않은 도로)를 건설하는 계획이 진행되고 있는데, 교통체증을 해소하기 위한 이 미래의 도로의 끄트머리가 이어지는 곳이 바로 이곳의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살아온 땅이다. 몇 년 전 처음 측량 기사들이 나타나서 도로용지를 측량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은 "어쩌면 내일 당장 불도저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게 내일일지도, 다음 주일지도, 언제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공포는 묘하게도, 그리고 안타깝게도 '불안한 기다림'이라는 모습으로 일상에 스며든다. 나는 이곳에서 차라리 난민이었으면 이보다 낫지 않겠냐고도 말하고, 우리는 쓰레기 취급을 받는 존재(rubbish)인지도 모른다며 한탄하는 이들을 만난다. 사람보다 개발이 먼저인 것은 이미 너무나 많은 곳에서 비판받았던 일인데, 어째서인지 장소를 불문하고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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